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 정원사 Dec 03. 2024

나와의 작은 약속의 시간(2)

*병실에서 배운 것


20년 전, 엄마가 지방의 대학병원에 입원하셨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그땐 내가 30대 초반이었으니, 인생의 한창일 때였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엄마가 병상에 누워 계신다는 사실은 모든 걸 내려놓게 만들었다. 다니던 직장에 잠시 휴가를 내고, 지방으로 내려가 엄마의 병간호를 시작했다. 엄마와 나, 둘 다 처음 겪는 낯선 병원 생활이었다. 병실의 하얀 벽과 차가운 바닥, 주기적으로 울려 퍼지는 삐삐 거리는 기계음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몸도 마음도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엄마가 나아지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혹여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가슴 한편이 늘 불안했다. 의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으며 하루를 보내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 아픈 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참으로 고된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엄마 옆에서 손과 발이 되어주는 것뿐, 실제로 고통을 덜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마음을 힘들게 했던 날들이었다.




병실은 6인실이었다. 다른 환자들은 가족이나 지인들이 자주 찾아와 음식을 챙겨주곤 했다. 식사 시간이 되면 병실 안은 가족들이 싸 온 반찬들로 풍성했다. 여기저기 맛있는 냄새가 병실에 가득해, 병실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게 할 정도였다. 특히 점심시간이 되면 고기 반찬에 쌈을 싸먹는 환자와 보호자가 있었는데 그땐 우리를 음식으로 고문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괴롭게 했다. 그들이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 곁에는 주변에 친척이 없어 누군가 정성껏 음식을 챙겨줄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병원에서 나오는 병원 음식으로 생활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보호자인 내가 가까운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반찬이나 즉석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사와서 먹으면 되었는데 그땐 그런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던 철부지 애기 엄마였다. 엄마는 평소에 입맛이 까다로우신 편이었고, 특히 비위가 약한 분이셨다. 그런 엄마가 소금기 없는 병원 음식을 먹는 건 마치 돌덩이를 씹는 것 과도 같다고 하셨다. 음식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며 먹는 걸 포기하는 엄마를 바라보는 일이 참 괴로웠다.


우리 엄마도 다른 환자들처럼 잘 드실 수만 있다면, 금세 건강을 회복하실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날 무너지게 했다.그땐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만으로도 기운을 차리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속상했고, 안타까웠다. 병원 주변에 집이 있는 사람들, 언제든지 찾아와 줄 친척이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부러웠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입맛을 돋워줄 한 끼, 건강을 되찾는 데 작은 힘이 될 그 음식이 우리에게는 늘 부족함으로 남아 있었다.그때부터 결심하게 되었다. 나중에 내 손길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아야겠다고 엄마와의 그 시간은 내가 음식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꿨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이유를 일깨워준 시간이었다.




*음식 보호자가 된다는 것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 중에, 혹시라도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음식 보호자’가 되어 주겠다는 다짐이었다. 사람이 병원에 입원하면, 몸이 아픈 것만큼이나 마음이 지쳐간다. 그럴 때 누군가가 정성 어린 음식을 건네준다면, 단지 배고픔을 채우는 것을 넘어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 것이다. 주위를 살펴보면 멀리서 온 환자들이나 보호자들은 병원 근처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로운 싸움을 견디며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는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음식을 통해 따뜻함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있어 일종의 큰 깨달음이자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가을이 오면 떠오르는 그리운 사람들처럼, 내가 만든 음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 오늘도 부엌에 서서 뭔가를 만들게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쩌면 이 모든 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가끔 그런 말을 한다.

 

“자기, 칭찬받고 싶어서 사람들 자꾸 부르는 거 아니야?”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누군가가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고맙다고 말해주는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 사람들의 따뜻한 반응에 기대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그게 뭐 어때서? 내가 이 시간을 즐기 고, 그로 인해 행복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닐까?


어느새 11월이 되었다. 시장에는 김장철이 다가왔다는 소식처럼 배추와 무우등, 김장 재료들이 넘쳐나고 있다. 푸릇푸릇한 배추를 보니 괜히 마음이 들뜬다. 배추 몇 포기라도 사서 김치를 담궈 사람들을 불러 모아 보쌈과 굴, 홍어회를 같이 먹을까? 이런 생각들이 설레게 한다. 평소 아끼는 사람들과 음식을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배가 불러온다. 사람들 속에서 음식을 나누고, 그로 인해 존재를 다시 확인받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뿌듯함이 살아가는 큰 힘을 얻고 있는 것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