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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정원사 Dec 03. 2024

나와의 작은 약속의 시간(1)

*내가 좋아하는 것들


가을은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어 깨우는 묘한 계절인가 보다. 그동안 조용히 잠들고 있던 마음을 쓰다듬어, 꽁꽁 감춰두었던 추억을 끄집어낸다. 창가에 앉아 떠오르는 햇살 샤워를 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랑했던 사람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빈자리와 공허함이 살포시 날 안아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신기하게도 그 슬픔이 아프기보다는 따뜻한 한잔의 차처럼 조금씩 줄어들고 내 안에 스며드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가을의 깊은 감성에 빠져들다 보면, 문득 삶에 대한 고민이 고개를 들곤 한다. 생각을 해보니 세상은 참 대단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어떤 사람은 무대 위에서 반짝이고, 누군가는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 비해 내 삶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심지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생각은 날 자책에 빠져들게 하고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지나온 삶을 되짚어 보니, 나에게도 뭔가 특별함이 하나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음식 만드는 일이었다.

 




음식은 단순히 먹고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도구이자, 마음을 담아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선물이었다. 신선한 재료를 고르기 위해 아침 일찍 농수산물 시장을 찾고, 그 재료로 요리를 준비하는 일은 흔한 일상이면서도 행복한 놀이였다. 특히, 주위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 줄 때 내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해 줘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혼자 있을 때조차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시장을 봐 나만을 위한 요리를 한다. 아무도 보지 않고, 굳이 안 해도 되는데도 차려먹는 걸 보면 '나'라는 사람은 어지간히 먹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덕분에 우리 집은 늘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되고 있다. 평소 아끼는 동생은 우리 집을 자주 드나들며 차려놓은 음식을 먹고 간다.


때로는 "매일 이런 집밥을 먹고 싶다"는 농담도 하기도 하는데, 그저 빈말처럼 느껴지진 않는 건 어쩌면 평소 맛있다는 표현을 많이 해주기 때문이다. 음식으로 서로의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사실이 나를 설레게 해 주며 행복하게 한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넌 왜 귀찮게 사람들을 부르고 챙겨? 굳이 오지랖 넓게 그러지 않아도 되잖아."


그럴 땐 그냥 가볍게 웃고 말지만, 사실 이렇게 음식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살아가면서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따뜻한 국 한 그릇, 정성 들여 만든 반찬 몇 가지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경험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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