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내가 자란 고향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산골 마을이었다. 사방이 푸른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 마을에는 버스는 하루에 딱 두 번 아침과 저녁에만 다녔고, TV와 전화기가 있는 집도 몇 되지 않았다. 그런 산골에서 나와 친구들은 자연 속에서 뛰놀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낮에는 소꿉놀이를 하고, 밤에는 라디오를 켜놓고 세상과 연결된 기분을 느끼며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여름이면 동네 아이들과 계곡에서 멱을 감고, 돌아다니며 수박과 참외를 서리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때로는 빈 집에 몰래 들어가 라디오를 크게 틀고 배워본 적도 없던 디스코 춤을 추며 깔깔거리곤 했다. 특히 보름달이 떠오르는 밤이면 친구들과 동네 어귀의 작은 계곡으로 모여들었다. 계곡의 물소리는 밤하늘의 고요함을 깨우고,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라디오를 틀어놓고 한참을 떠들다 보면 별들도 우리와 함께 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 시절의 라디오는 지금 보면 초라하고 낡아 보이지만 당시 우리에게는 그 세상의 모든 음악과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법 같은 상자였다. 작은 방에서 동생과 이불을 뒤집어쓰고 라디오를 듣던 그 시간은 너무나 특별했다. 밤이면 라디오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가 흘러나오고 이 종환 아저씨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듣는 신청자의 사연은 어린 마음을 설레게 했다. 때로는 슬픈 사연을 들으며 눈물이 터져 밤새 많이 울었고, 가끔 잘 나오던 라디오 소리가 지지직거릴 때면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애태우며 소리가 잘 나오는 위치를 찾으려 다니기도 했다.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지금도 생각해 보면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시골 밤하늘은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해 주었다.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산골의 밤은 너무 어두워 무서울 때도 많았지만, 반딧불과 달빛이 우리에게 길을 밝혀주었다. 여름밤이면 동생과 평상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자리를 찾아보곤 했다. 하늘 가득 빛나던 별들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별자리를 하나씩 찾아가며 밤이 깊어가는 것도 잊었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날엔 누군가 죽어서 별이 떨어진다고 믿으며 가슴 아파했던 우리들의 순수한 모습이 떠오른다.
이제는 도시에서 살아가며 그 시절의 별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그 기억들은 여전히 나를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밤하늘에서 반짝이던 별빛과 어린 시절의 추억은 내가 앞으로도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보물 같은 이야기다.
별을 보며 꿈꾸던 시절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내 가족을 생각하게 된다. 별들이 어둠 속에서 길을 밝혀주던 것처럼, 가족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가족들이 힘들 때나 어려움을 겪을 때 내가 별처럼 조용히 곁에서 빛을 비춰주고, 그들을 안심시켜 주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별은 누군가를 위해 항상 그 자리에 있고, 조용히 세상을 비춘다. 그런 별처럼 가족들에게 은은한 빛을 전하며 살아가고 싶다.
삶이 힘들어질 때도 어린 시절 밤하늘을 가득 채웠던 별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따뜻한 음악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밝고 따뜻한 위로를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어린 시절 내게 힘이 되어줬던 그 별들이 지금은 하늘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계속 반짝이고 있다. 그 별을 잊지 않고, 내 삶의 길을 밝혀주는 나침반이 되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