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부자인 이유

by 이영희


아침까지만 해도 텅 비어 있을 것 같았던 오늘 하루가 동생의 전화 한 통으로 따뜻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평소에는 늘 내가 먼저 전화를 걸곤 했던 터라, 동생이 먼저 전화를 주는 날은 내게 더없이 특별한 날이 된다.


"언니! 오늘 뭐 해, 점심 같이 할래?"


그 한마디가 마치 겨울 찬바람 속에서 내미는 따뜻한 손 같았다. 바쁜 직장 생활로 늘 시간을 쪼개 살아가는 동생이 먼저 나를 챙겨주는 날이면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며칠 동안 마음속에서 맴돌던 동태탕. 드디어 오늘 먹고 싶음을 해소할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동생이 점심을 먹자고 하길래, 망설임 없이 그동안 계속 생각해 왔던 '세숫대야 동태탕' 집을 추천했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엄마가 끓여주시던 담백하고 시원한 동태탕이 더욱 그리워진다. 집에서 몇 번이나 흉내 내 보았지만, 어린 시절 그 맛을 재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끔 이 집을 찾아가는 것은 아마도 고향의 맛이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11시 오픈과 동시에 첫 손님으로 들어섰다.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 덕분에 여유롭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평소에는 겨울철 긴 대기 줄로 인해 정신없이 먹어야 하는 곳이지만, 오늘만큼은 따뜻한 국물의 깊은 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즐길 수 있었다.


무, 파, 두부, 동태, 곤, 알이 가득 담긴 양은냄비 속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국물 한 숟가락을 떠먹을 때마다, 고향의 겨울이 눈앞에 펼쳐졌다. 엄마가 부엌에서 불을 지피며 끓이던 모습, 식탁에 둘러앉아 뜨끈한 국물로 몸을 녹이며 맛있게 먹던 우리 가족의 모습이 스쳐갔다. 한 모금 한 모금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녹아들어, 온몸은 물론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워졌다. 동생과 마주 앉아 국물 속에 담긴 이야기를 떠올리며 웃고 떠들었다. 국물 한 숟가락에 추억 한 자락을 꺼내어 나누듯, 우리는 함께 과거의 시간으로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이야기 꽃을 피우며 즐거운 점심시간을 보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숍에서 커피를 한 잔씩 손에 들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바람 끝이 여전히 차가웠지만, 어제와는 다르게 햇살이 너무나 따스했다. 그 볕은 우리가 걷는 시간을 더 즐겁게 해 주었다. 손에 들린 커피잔에서 전해지는 온기와 동생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가 우리의 마음을 한결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때 갑자기 사촌 동생이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들 뭐 해? 작은 언니 오늘 쉬는 날이야?"


뜬금없는 물음에 우리는 깜짝 놀라 답을 보냈다.


"응, 둘째 언니 쉬는 날인데. 너는? 오늘 월차 냈어?"
"아니야, 나 직장이야. 부탁하려고 톡 했지."
"무슨 부탁?"
"우리 집 냉장고에 소고기 덩어리가 있을 거야. 적당히 나눠서 가져가."


그렇게 동생은 사촌 동생의 집으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소고기 덩어리를 찾아 우리 집으로 가져왔고, 우리는 식탁에 자리를 잡고 고기 손질을 시작했다. 살면서 이렇게 큰 고깃덩이를 직접 다뤄볼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정육점에서 가끔 고기 손질하는 모습을 힐끗 본 기억을 더듬어 대충 흉내를 내 봤는데, 생각보다 제법 그럴싸하게 잘려 나갔다. 고기의 결을 따라 칼을 대고, 적당히 나누어 놓으니 마음 한구석이 뿌듯했다.

"우리도 꽤 잘하지 않나?" 라며 농담을 나무며 동생과 눈을 맞추며 웃었다.


콩 한쪽도 나눠 먹는다는 말처럼, 우리 가족은 늘 작은 것이라도 서로 나누며 살고 있다. 시골에 살고 계신 작은엄마는 매번 사촌 동생 편으로 쌀, 배추, 김장 김치, 곶감, 떡국 떡 같은 것들을 보내주시며 우리를 챙겨주신다. 머나먼 객지에서,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세 자매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든든하고도 감사한 일이다. 나를 챙겨주는 동생들과, 작은 정성을 나누는 가족들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한 사람임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




어릴 적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외모도 성격도 달랐지만 두 분은 늘 실과 바늘처럼 함께하셨다. 시골 5일장에 가실 때도, 경로당에 가실 때도 항상 나란히 걸어가셨다. 작은아버지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 홀로 남은 아버지를 걱정하며 끼니마다 불러내 함께 식사하셨다.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도 작은아버지는 아버지가 홀로 설 수 있도록 도우셨고, 결국 몇 해가 지나 아버지가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가시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돌아가신 친정엄마처럼 우리 자매를 보살피고 사랑을 나눠주신 작은엄마의 손길 덕분에 우리는 아직도 엄마의 빈자리를 덜 느낄 수 있었다.


오늘 하루도 그런 가족의 따뜻함에 행복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마음을 나누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우리 가족. 그 속에서 오늘도 깊은 가족간의 사랑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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