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의 작은 흉터가 내게 준 것

by 이영희

어린 시절, 나에게는 선명한 추억이 하나 있다. 바로 오른손 둘째 손가락에 새겨진 흉터다. 이 흉터는 그 시절의 한순간의 기억을 불러내 생각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면서 주름 속에 묻혀 이젠 그다지 눈에 띄지 않지만, 그 상처의 기억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내 머리에 박혀 있다. 흉터는 내게 한 시절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문장이 되어 버린 듯하다.


내가 아주 어릴 때, 그날도 할머니는 평소처럼 마루에 앉아 고추를 따고 계셨다. 뒷집 동생과 난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소 마구간으로 몰래 들어갔다. 그곳엔 볏짚 더미가 있었고, 볏짚을 자르는 무서운 작두도 있었다. 작두는 우리 집에서 철저히 숨겨진 물건이었다. 부모님과 오빠 외에는 누구도 함부로 손대지 못했다. 아니, 손을 댈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깊숙한 곳에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 그 물건에 대한 호기심이 우릴 더 궁금하게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감추는 것을 꼭 들춰보며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법이니까.


뒷집 동생과 어른들처럼 흉내를 내보고 싶었다. 때마침 볏짚이 너 부르져 있어 소가 먹기 좋게 작두로 자르기로 한 것이다. 동생은 발로 작두를 밟고, 나는 손으로 작두 안에 짚을 넣어 주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어설픈 둘의 호흡은 끝내 무서운 비극을 만들었다. 동생의 힘 무거운 작두 날을 버티지 못해 순식간에 짚과 함께 들어간 손가락 위로 내려와 버렸다.





덜컥 소리와 함께 내 둘째 손가락이 칼에 베인 종이처럼 달랑거리고 있었다. 너무 놀란 나는 비명을 지르며 손가락을 붙잡고 마구간 밖으로 뛰어나갔다. 피가 뚝뚝 떨어지며 바닥을 적셨지만, 아프다는 생각보다 손가락이 잘린다는 공포가 더 크게 밀려들었다. 왜냐하면 그때 가장 두려웠던 것은 동네의 어떤 언니처럼 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작두에 손가락이 잘려나간 그 언니의 손은 늘 주머니 속에 감춰져 있었다. 나도 그렇게 되어, 친구들이 놀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픔보다는 그게 더 무서웠다.


할머니는 놀랄 새도 없이 된장 단지를 열어 덩어리째 손가락에 얹고는 담뱃가루를 뿌렸다. 된장 냄새와 담뱃가루 냄새가 섞여 코끝을 찔렀다. 그런데도 손가락의 통증은 멈추지 않았고, 나는 손가락이 정말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갈까 봐 울며 떨었다. 다행히 손가락 뼈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아 병원에서 꿰매고 몇 달을 고생했다.




난생처음으로 내 몸속의 흰 뼈를 보았던 그 하얀 풍경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겨우 그 정도로?"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내게는 너무도 오래도록 아픈 기억이었다. 내 몸속 하얀 뼈를 처음 마주했던 순간, 그것은 단순히 상처 이상이었다. 호기심이 불러온 결과였지만, 그것은 곧 두려움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고, 평생 '겁쟁이'라는 큰 예방주사를 놓아준 계기가 되었다.


그때의 두려움은 내 성격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날 이후로 뭘 하더라도 조심성이 많아졌고, 무언가를 시도하기 전에 망설이는 일이 많아졌다. 친구들이 위험한 장난을 즐길 때,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는 아이가 되었으며 몸 사리는 소심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그 경험은 나를 더 신중하고, 섬세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와 주변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법을 배웠고, 행동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도 생기게 해 줬다. 그날의 작은 흉터는 내 마음속에 남아 여전히 나를 이끌고 있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법을 배우게 한, 내 인생의 소중한 교훈으로.


어쩌면 내가 흉터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 안에 두려움만이 아니라, 따뜻했던 사랑과 위로도 함께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내게 말해준다. 성장이라는 것은 때로 아픔과 함께 찾아오며, 그 아픔을 이겨낼 때마다 우리는 조금 더 강해지고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내 곁에 머물고 있는 공기처럼, 고향집의 모든 것들 또한, 늘 내 곁에 남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동네 사정이 생겨 어느 날 갑자기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 사라진 모든 것들이 문득문득 손가락의 상처를 보면 흐릿하게 떠오른다. 그때는 너무 아프고 힘들었던 순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가끔 살면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흉터가 있는 손가락을 습관적으로 보게 되며 다짐을 하게 된다. ‘뭐든 시간이 지나면 손가락 상처처럼 잘 될 거야.’ 라며 나 자신에게 체면을 걸며 뭐든 지금까지 살아온 듯하다. 내가 세상을 알아가며 배우고, 넘어지고, 성장했지만 오래된 책갈피처럼 과거를 우리에게 펼쳐 보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들이 부자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