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관희 Feb 07. 2024

그 아이를 만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충동조절장애 학생을 만나다.

 2021년도 2월은 나에게 너무나 추운 겨울이었다. 초등임용고시에 낙방하고 말았다. 최종점수 1.4점 차이였다. 한 문제만 더 맞췄으면 붙을 점수였다. 솔직히 떨어질 줄 몰랐다. 초등 임용고시는 크게 시험이 두 번 있다. 1차 지필고사와 2차 면접이 있다. 지필고사는 80점 만점이고 면접은 2박3일동안 진행되어 100점 만점이다. 최종합격은 이 두개의 점수를 합산하여 계산한다. 어찌 됐든 나는 떨어졌다. 대학도 늦은 나이에 들어왔는데 임용도 떨어지니까 자존감이 매우 낮아졌다. 


 이래서는 안될 거 같아 돈이라도 벌자는 심정으로 기간제 교사에 지원했고 이내 곧 붙었다. 나의 담당 과목은 영어와 체육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의 첫 교직인생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달만에 도망가고 싶었다. 

 

 충동조절 장애 학생을 만났다.


 어느 날 체육 시간에 그 친구가 매우 늦게 체육관에 왔다. 아마 다른 친구와 싸워 교실에서 혼이 나고 내 수업에 늦게 들어온 모양이었다. 표정부터가 매우 섬뜩했고 그 아이의 존재는 나로 하여금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미 정말 다양한 문제를 일으켰고 나에게 반말하고 또 수업 중에 다른 아이들을 때리고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는 등 굉장히 힘든 아이였다. 그 날 그 아이는 뒤에 학생들이 줄 서는 곳에 앉아 있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가 수업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아이들 줄 서는데 위험하니까 잠깐 뒤로 가서 앉아 있자고 했다. 그리고 돌아온 답변은


지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짜증나게


 나는 처음에 이 아이를 만났을 때 수업에 참여시키고 또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 않도록 정말 많은 노력을 했었다. 체육 부장을 시켜서 나름 수업에 있어서 자기 효능감을 느끼게 만들었고 아이들과 있으면 계속 부딪혀 혼자할 수 있는 활동을 하게 하는 등 나름 신규교사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노력들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안좋아지고 나중에는 그 아이가 있는 반에 들어가는 것이 꺼려졌었다. 그렇게 나도 지쳤고 안좋은 감정들이 쌓여가고 있었는데 그 날 그 아이가 나의 도화선에 불을 지폈다.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나의 수업에서 나가라고 했고 그 아이는 문을 닫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딴 개쓰레기 같은 수업 다신 안들어와 씨X 


 4학년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수 있는가? 이런 생각에 잠시 벙쪘던 것 같다. 결국 그 아이를 쫓아가서 나 역시 감정적으로 굉장히 고조된 상태로 대응을 했고 결국 담임 선생님에게 그 학생을 인도하도록 요청했다. 그날 퇴근 직전 학부모님의 사과 전화를 받았다. 본인이 잘못키워 애가 이렇게 되었으니 미안하다고 말씀 하시는데 전혀 들어오질 않았다. 


 이것이 뭘까. 나는 정말 친절하게 그리고 그 학생을 바꾸려고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 어떤 보람도 없었다. 나 역시 학생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아서 마음이 너덜해졌다. 포기하고 관둘까 수십번 고민했다. 유튜브에 초등교사 관두는 방법, 혹은 선생님의 고통 이런 것들을 검색하고 무너진 내 마음을 위로 받으려고 했다. 그 중 하나의 댓글을 보았다.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본인을 바꾸는게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댓글을 보고 나는 한 가지 깨달았다. 상대방에게 무언가 바라지 말고 나를 먼저 바꾸자. 어떻게 보면 일종의 자기 방어책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나 자신의 마음을 돌보면서 동시에 상대방을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 공부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공부가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공부였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거기에 맞는 반응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내 마음속에 그렇게 할 여유가 있는지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내 마음의 여유를 만들어야지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반응 할 수 있었다. 즉 내 마음에 다른 사람이 들어 올 수 있는 여러 개의 방을 만들어야 했다. 그 당시에는 사실 그렇게 해야지만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알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실 나는 극 F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