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아버지는 교회에 다니는 걸 싫어하셨고 아들들에게도 단호히 그걸 금지시켰다. 아버지 개인적인 가치관과 주관이시니 우리가 뭐라고 할 수는 없었고, 어차피 우리도 종교에 관심이 없었으니 우리 생활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도 않을 것만 같았다. 문제는 큰형의 결혼 시점에 터졌다. 모태 기독교 신자였던 형수를 사귀고 결국 부모님께 소개시켜드리고 결혼 허락을 받으려고 하니, 아버지가 노발대발하실 건 안봐도 눈에 선했던 것이었다. 고향에 내려온 큰형과 형수를 반갑게 맞이해주시고, 키도 크고 참하다면서 웃으시는 아버지 앞에서 큰형은 형수가 교회에 다닌다는 말을 끝내 꺼내지 못했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소심하게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그 사실을 알려드릴 수 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실을 전해들은 아버지는 한숨만 푹푹 내쉬면서 일주일간 거의 식음을 전폐하셨고, 결국 3가지 조건을 지킨다는 전제 하에 결혼을 허락하셨다. 남편과 자식을 교회에 같이 다니자고 하지 말 것, 집안 일을 교회 일보다 우선시 할 것, 그리고 조상 제사를 잘 지낼 것이 조건이었다. 참고로 그 중에 한가지는 벌써 어겼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버지께 따로 말씀드리지는 않았다.
필자가 창업을 할 때 아내도 비슷한 조건을 내걸었다. 본인이 불안한 마음도 컸을 테지만 그래도 믿고 응원해주면서, 대신 사업을 하는 동안에는 스트레스가 생기더라도 그걸 풀려고 친구 등을 부르는 사적인 술자리는 되도록 하지 말라는 조건이었다. 안그래도 사업 때문에 협력사나 파트너사의 담당자와 술자리, 저녁자리 할 일이 많아 집에 늦게 들어올텐데 사적인 술자리까지 가지면 매일 늦게 들어오면서 집안일을 소홀히 할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도 그 약속을 지켜가면서 집에 돌아와서 맥주 한잔 마시며 아내와 회사에서 일어났던 얘기를 나누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경영자의 스트레스 요인>
흔히들 경영자의 위치에 있으면 외롭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는 대부분 올바른 의사 결정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이를 같이 고민해줄 수 있는 든든한 협력자의 부재를 뜻하는 경우라고 생각된다. 필자에게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외로움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원초적인 "스트레스 해소"의 문제가 더 크게 다가왔다. 사실 경영자라면 누구나 다 공감하겠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파도처럼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밀려오게 된다.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일거리에 대한 파악, 좋은 인재를 모셔오기 위한 설득 작업과 실패, in vivo 효능 결과가 나오는 시점의 두근거림, 투자받는 시기에 잠못 이루는 밤들, 임직원이 개인적으로 면담을 요청하는 카톡을 받았을 때의 불안감 등등.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칫 정신줄을 놓았다가는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훌쩍 떠나버리겠다고 마음먹을 만큼 극도로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창업 초기에는 일단 집에 돌아와서는 머리 속에서 회사 일을 모두 차단시켜버리고 여유를 가지겠다는 전략으로 버티는 것부터 스트레스 관리를 시작했다. 물론 나중에는 그것도 결국 통하지 않았고, 화장실에 한시간을 앉아 있으면서 회사의 당면한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기는 했지만 말이다.
결국 극한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줄이는데 큰 기여를 했던 것은 운동이었다. 다행이 회사 창업 전에 헬스장에서 PT를 받으며 몸도 만들어보고 운동기구를 쓸 줄 알았던 덕분에, 힘들 때면 1~2시간 땀을 흘리고 샤워를 하고나면 머리도 맑아지고 쓸데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을 피할 수도 있었다. 사실 경영자들이 사업에 도움이 된다면서 골프를 많이 권유하지만 필자는 부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굳이 연구개발을 업으로 하는 바이오벤처에서 골프를 치면서 사업에 도움이 될만한 게 뭐가 있을지도 몰랐고, 배우는데 공을 들일 만한 시간 여유를 내기도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스트레스 관리 측면에서는 골프도 좋은 수단이라는 생각이 이제 든다. 골치 아픈 업무와는 단절되어 오롯이 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할당해준다면 헬스, 골프 등등 그 어떤 것이라도 좋은 수단이 될 수 있고, 자신 만의 건전한 수단을 일찌감치 찾아내는 것도 경영자가 필수적으로 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된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소망하는 스트레스 관리법>
어쨌든 회사가 지속되고 사업이 전개됨에 따라 그래도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작은 스트레스의 대처부터 시작해서 점차 내성이 생기고 커지더라는 것이었다. 작은 것들, 중간 크기만한 것들을 버티다 보면, 큼지막한 스트레스 요인이 발생하더라도 다시 한번 버틸 힘이 생기는 식이다. 며칠전 자문해주는 교수와 전화통화를 하던 와중에 본인은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존경스럽다면서, 그 많은 스트레스를 버티면서 꾸준히 밀어붙이면서 생존하는 것 자체가 크나큰 자산이고 능력이라는 것이었다. 비단 회사 만이 아니라 어떤 조직의 장을 맡고 있다면 공통적으로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제련될 수 있는 기회가 필연적으로 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본인이 그러한 시기들마다 어떻게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낙관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가 사업의 성공에 대한 숨어있는 요소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