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취준 대신 세계일주
아침은 나빈 가게 앞 노점에서 먹었다. 아침을 판매하는 가게였다. 계란에 토스트를 싸서 주는 오믈렛에 짜이를 곁들였다. 다 녹슬다 못해 검은색이 되어버린 펜에 조리해 주는 요리였다. 모든 메뉴를 그 한 펜으로 만드는 사장님. 요리가 바뀔 때마다 드럼통에 떠놓은 정체 모를 물로 대충 설거지를 하신다. 이제는 이 정도 위생은 익숙해졌다. 요리는 역시 맛있었고 손을 이용해 맛있게 먹었다.
나빈 가게는 참 똑똑하다. 정당한 가격을 받는다는 당연한 태도로 모든 한국 여행자를 사로잡았다. 대부분 관광객을 상대하는 인도인들은 바가지를 씌울 생각뿐이다. 정보가 없던 예전이라면 먹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21세기 세상에 대한민국 여행자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모든 사기 유형을 미리 알고 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당할까. 결국 전혀 의미 없는 행동이다. 돈 몇 푼 욕심에 한 푼도 벌지 못하게 된다. 이런 나빈 가게를 모방하는 가게는 이 넓은 델리에 한 군데도 없다. 나빈 가게를 가장 먼저 따라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호스텔 옆 침대에서 우연히 인연이 닿은 현민이와 스파이스 마켓에서 만났다. 현민이는 23살이고 군 전역 후 6개월짜리 세계일주 중이다. 중학생 때부터 꿈꾸던 여행이라는 점도,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도, 군대에서 돈을 마련 한 점도, 3월에 전역하고 바로 나왔다는 환경도 나와 비슷한 여행자였다.
사실 한국인 여행자와 동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늘 동행도 영상 재미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너무 필요한 동행이 되었다.
스파이스 마켓 곳곳을 누볐다. 정말 로컬들만 있는 장소인데, 남자 둘에 낮이라 겁 없이 골목골목 돌아다녔다. 흙먼지 가득 한 도로에 오토바이와 수레, 소, 릭샤, 사람이 얽혀 한 발 한 발 내딛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했다. 우리는 요리조리 피해 가며 발 닫는 대로 시장을 여행했다.
흙먼지 날리는 도로에 사람이 가득하다. 이들은 현대 사회 기준으로 청결하지 않다. 땀에 절어 거뭇한 옷을 입고 수레를 끌고 물건을 판다. 거리에는 파리가 가득하고 하늘에는 전신주가 얽혀있다. 도로 옆에 틈 없이 붙어있는 건물들은 100년은 되어 보인다. 식민지 시대 은행이었던 걸로 추정되는 몇 백 년 된 건물도 종종 보였다. 거리마다 소, 양, 원숭이, 개까지 섞여있다. 마치 백 년 전 거리에 와있는 기분이다.
인도에서 보낸 4일 간’ 완전한 자유’를 느꼈다. 이 나라에는 규칙이 없다. 거리에서 크게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울리는 경적 소리에 묻혀버린다. 질그릇에 담아주는 짜이를 먹고 바닥에 던져 깨트려 버려도 괜찮다. 모두가 그렇게 한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npc처럼 내게 관심을 보인다. 어떤 말을 해도 웃으면서 넘긴다. 그냥 말이 안 통해도 웃어넘긴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걱정이 많았다. 내 카메라에 담기는 불특정 다수가 느낄 불편함에 대한 우려였다. 하지만 인도 사람들은 카메라에 담기고 싶어 안달이다.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이런 낙천적이고 무던한 수 천만명 인도인들과 함께 하다 보면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된다.
이들이 사는 삶은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나보다 훨 신 못한 환경에 놓여있다. 임금, 위생, 문화생활 등등. 하지만 전부 즐겁게 지낸다. 좁은 골목에 들어찬 가게에 손님이 많건 적건 걸터앉아 건너 가게 사람들과 농담을 던지고 있다. 물론 뉴델리 사람들은 다르다. 툭툭 기사들은 절반이 화나있고, 직장인들도 바쁘게 움직인다. 표정도 우리네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 (그럼에도 대체로 나이스 하다)
무엇이 우리와 그들을 다르게 할까. 내 소결은 ‘종교’이다.
방글라데시던 인도건 사람들에게 웨얼 알유 프럼 다음으로 듣는 질문은 왓스 유얼 릴리전이다. 너는 어떤 종교를 믿니? 종교가 삶에서 중요한 가치이며 대부분이 종교를 가진 이 나라에서 종교는 국적만큼이나 중요한 정체성이 된다. 내가 노 릴리전이라고 대답하면 사람들이 휘둥그레진다. 종교를 안 믿는 녀석이 있다고? 농담하지 마! 와 같은 표정이다. 그런 반응을 몇 번 받다가 생각해 낸 답은 “코리안 빌리브 머니”, ‘머니 이스 코리안 가드”.
우리는 돈을 믿는다. 자본주의를 믿는다. 그게 곳 우리가 믿는 종교이다. 무신론자이며 모든 종교를 존중하는 내 입장에서 종교와 자본주의 모두 사람이 만들어낸 상호주관적 진실이다. 중력과 같이 우리가 발견한 진실이 아니다. 여러 사람들이 믿기에 진실이 된 진실이다. 이 능력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사람만이 문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원숭이들은 100명이 무리를 지어 살아갈 수 있겠지만 만 명은 절대 협력할 수 없다. 같은 걸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상호주관적 진실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가족이 아닌 자들과도 협력할 수 있으며, 피라미드 같이 말도 안 되는 건축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방글라데시 무슬림과 이집트 무슬림 사우디 무슬림은 인종과 전통문화가 다르지만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협력할 수 있다.
이런 종교는 사람들을 착하게 만든다. 인도에 퍼진 힌두교는 이민족이 선주민을 잘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카스트 제도 또한 같은 맥락에서 고안되었다. 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진 제도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신을 믿는 우리 입장에서는 얼토당토않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믿게만 만든다면 사람을 순응하게 한다. 저항할 생각조차 못하게 만든다.
이슬람 율법에서 규정하는 돼지를 먹는 걸 금하고, 여성에게 히잡을 씌우고,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 문화 또한 당시 시대상에서 과부를 보호하고, 날씨로부터 여성을 지키고, 식중독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배가 고파도 살 수 있다. 모든 게 신의 뜻이고 내가 신을 믿는다면 나는 선택받은 사람이기에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천국에 갈 건데 현생에 배고픈 게 뭐가 중요한가.
자본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돈을 믿는다. 능력주의를 결합해 성장을 믿는다. 돈을 많이 벌고 빠르게 성장하는 게 우리에게는 당연한 절대선이며 당연한 진리이다.
우리가 믿는 신은 시간을 칼같이 지키라고 채찍질한다. 하루를 1440 조각으로 분해해서 삶을 욱여넣는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가난한 건 당연하다. 돈은 세상 만물과 교환 가능하다. 우리가 믿는 신은 우리를 기계로 만든다.
그들이 믿는 신은 너무 옛날 사람이다. 시계도 없던 시절에 태어나서 하루를 딱히 나누지 않는다. 빈자를 가엾이 여겨 적선하는 게 선이며, 이방인은 손님으로 환대하여야 한다(물론 힌두교는 아님).
무튼 이런 무질서함이 만들어 내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다 보면. 나를 묶고 있던 모든 게 무가치해 보인다. 우리가 대양 앞에서 모든 고민들 던져버리듯.
인류가 만들어내는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삶의 형태 속에서 내 고민은 티클만큼 작아져 버린다.
맘대로 살아도 될 거 같다고. 내가 정답이라고 믿어왔던 모든 게 산산조각 난다.
그리고 교과서에 있는 지식은 현장과 결합해야 함을 다시 느꼈다. 분명 인도인들은 소를 신성시한다고 했는데. 때리는 놈들도 있다. (이슬람인가)
무튼 시장을 누비다가 20분 거리에 시크교 사원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혹시 하고 리뷰를 봤는데 공짜 밥을 제공한다고 했다. 너무 궁금해서 바로 발길을 틀었다.
사실 될 거라고 생각하고 간 건 아닌데, 사원 앞에서 쿠키를 나눠주고 있는 시크교도 성직자? 들에게 말을 건넸고 그들이 안내해 주며 일이 술술 풀렸다. 시크교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고 머리를 가려야 하는데. 머리를 가릴 손수건을 우리에게 둘러주고 사원으로 안내했다.
빠니보틀 형님 영상에서 본 그대로 거대한 사원에서 단체 급식을 먹고 있었다. 식판을 하나씩 쥐고 바닥에 앉아 있으면 봉사자들이 직접 와서 콩으로 만든 달과 난을 함께 주었다.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는 구조로 보였다. 빈자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깔끔한 사람들과 시크교도들이 섞여서 받을 먹고 있었다.
델리 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빈자들은 왜 이곳을 찾지 않는지 의야했다. 크고 웅장한 사원에서 먹는 밥이라니 정말 모헙하는 것 같아서 신났다. 분명 외국인은 들어가기 어렵다고 했는데. 신발도 부자종교라 그런지 이슬람 사원과 달리 코인을 받고 락커에 맡기는 시스템이었다.
밥은 공짜 난이라 그런지 퍽퍽하긴 했지만 즐겁게 먹었다. 엄마라고 부르는 시크교 아주머니가 계속 안내해 주었다. 밥을 먹고 짜이를 사줬고 짜이를 먹으니 본 예배당으로 안내했다. 황금빛으로 꾸며놓은 사원 중앙에 구루라고 불리는 아저씨가 않아서 예배를 하고 있었다. 시크교도들은 예배당 바깥까지 모여 귀담아듣고 있었지.
구루 주위를 돌면서 구루가 앉은 곳을 손으로 훑고 온몸에 묻히는 아저씨도 있었다. 구루 뒤를 지나면 꽃을 주고 계단을 내려가면 이상한 식혜 밥알 뭉침 같은 음식을 나눠 준다. 사람들이 신성하게 받아먹으며 바깥으로 나가는 구조이다.
지하에는 성수가 고인 우물이 있다. 그 물을 머리에 껸지고 얼굴을 닦고 마지막에는 마신다. 배탈이 걱정됐는데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그들을 거절할 수 없어 마셔버렸다. 별 탈이 안 나는 거 보면 성수일지도. 성수라면 내게 힘을 주세요,,,!!
시크교도들은 신은 하나라고 생각하며 모든 사람들 존중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는 게 단체 식사이다. 그곳에서 이방인인 내게 따뜻하게 대해준 신자들을 떠올려 본다. 나는 시크교도가 될 확률이 없다. 그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자애롭게 대해주었다. 마치 부모처럼. 그들과 언어는 잘 통하지 않아도 눈빛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추구하던 좋은 직장, 좋은 임금, 좋은 주거환경이 없어도 그들은 행복하다. 이방인인 내게도 내어줄 사랑이 있으니 말이다. 생각이 많아지는 공짜 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