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취준 대신 세계일주
순박한 사람들과 강렬한 도시의 색감이 인상적인 나라. 다 찢어진 버스 사이를 가로지르는 화려한 릭샤.
그 사이를 지나는 사람들. 살구색 건물들 철근에 자생하는 듯 뭉쳐 엉켜있는 전선들.
히잡을 쓴 여성들이 만드는 도시 정경이 생경하고 강렬했다.
수천만 인구가 혼돈 속에서 뿜어내는 에너지에 하루 종일 압도 당했다.
오늘 하루 종일 나처럼 외모가 튀는 외국인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이 복잡하고 넓은 도시에 외국인은 나뿐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나를 부끄러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손 인사를 건넨다. 내가 인사를 받아주면 짧은 영어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다. 이 나라사람 모두가 한국을 알고 있다. 부유층 마트에서는 한국 가공식품도 꽤 많이 팔고 있다. 새삼 신기했다.
[방글라데시 여성들]
방글라데시는 수니파 이슬람이 대부분인 국가이다. 종교에 대한 편견 탓에 보수적인 여성들만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내렸다. 하지만 이곳 여성들도 우리네 여성들과 다를 게 없었다. 기차역에서 히잡을 살짝 내리고 전면 카메라에 예쁜 표정을 지어보며 깔깔대는 소녀들. 젊은 마트 캐셔와 내가 대화를 나누자 하나 둘 몰려들어 재잘대는 내 나이쯤 돼 보이는 여성들. 내게 handsome! 을 외치고 자기네들끼리 놀리면서 까르르 웃는다. 대화를 나누다가 셀피를 제안하니 신나서 쪼르르 몰려왔다. 사진을 왓츠앱으로 받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귀여웠다.
[방글라데시 남성들]
주로 일을 하고 있는 남성들을 마주쳤다. 릭샤 기사나 택시 기사들. 릭샤 필요하냐고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웃으면서 쓱 간다. 자전거, 오토릭샤, 택시 어떤 수단을 이용해도 꼭 목적지 바로 앞에까지 데려다준다. 숙소면 숙소 주차장까지, 길 건너에 있으면 유턴을 하서 내려준다. 한 기사님은 잔돈이 없자 그냥 10 다카를 안 받고 가버렸다. 길에서 마주치는 청년들은 전부 나를 못 도와줘서 안달이다. 카메라를 보면 신나게 손을 흔든다.
필리핀 마닐라 거리를 걸을 때는 아침에도 위협적이었다.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도, 사람들의 눈빛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적극적으로 구걸하는 사람들도 조금 무서웠다. 두 나라는 어떤 차이가 있길래. 종교의 문제일까? 성경과 쿠란에는 좋은 말이 가득하다. 그 가르침을 철저히 따르면 빈자를 돕고 이웃을 사랑할 테다. 라마단이라고 밥과 물을 멀리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이 가르침을 잘 따르고 있지 않을까?
방글라데시는 지난 10년 간 매년 6프로식 성장했다. 한때는 인도 국민소득을 추월하기도 했으니, 체감할 정도의 성장이었을 것이다. 성장하고 있다는 건 더 나은 미래가 그려진 다는 것이다. 혹시 이들을 웃게 만다는 건 그런 희망이 아닐까. 훨씬 좋은 환경에 사는 한국 사람들 만큼 관대한 이들이 궁금해졌다.
한편으로 공기가 매우 좋지 않다. 폐가 쓰릴 정도이다. 입과 코를 티슈로 닦으면 검정이 묻어 나온다.
[여행 일지 1일 차]
공항에 내려서 도착 비자를 받았다.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경찰 아저씨는 무표정으로 응대하며 쌀쌀맞게 굴었다. 하지만 과정이 완료되자 살짝 웃으며 ‘웰컴 방글라데시’를 외쳤다.
시작부터 이 나라 사람들의 순박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여행자가 세계에서 가장 적은 도시 중 하나라 잔뜩 긴장했다. 여행 경보 3단계 지역이기도 하고, 정보도 없어서 무서웠다. 공항 입구를 총을 들고 지키는 군인들도 위협적이었다. 공항에서 택시를 불러서 숙소로 향했다. 택시를 잡는데 20분 택시가 공항까지 오는데 40분이 걸렸다. 1km도 안 되는 거리였는데, 비까지 와서 길이 두 배로 막혔다. 공항에서 숙소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었다. 늦은 시간인데도 택시 기사님이 숙소를 찾아주려 애썼다. 숙소 주인도 늦은 시간에 전화를 받고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와 나를 안내해 주었다. 숙소 준비에 시간이 걸려 2시에 잠에 들었다. 숙소도 좁고, 더럽고 아직 긴장이 덜 풀린 상태로 5시간을 자고 아침이 되었다.
이날은 이드 알 피트르 연휴가 시작하는 날이었다. 한 달간의 라마단 단식이 끝남을 기념하는 무슬림 명절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우리네 추석 같이 2대 명절 중 하나이다. 이 시기에는 고향에 가기 위해 기차 위에 사람들이 잔뜩 매달린다. 인구가 폭증한 다카에는 교통인프라가 부족한데, 모든 사람이 고향에 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출국을 2일 앞당겼다. 전날 장시간 비행에 부족한 수면시간 탓에 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 앞당긴 출국 탓에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공향역에서 9시에 기차가 출발한다고 전날 택시기사님이 알려주신 덕분에 잘 갈 수 있었다. 공항역에 도착하자 역에 들어가는 걸 감시하는 직원들과 암표를 파는 상인들로 북적였다. 공항역은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긴장되는 마음을 가다듬고 막무가내로 공항역 진입을 시도했다.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다행히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역사에 들어가서 잠시 기다리자. 지붕 위에 사람이 가득한 열차가 도착했다. 말도 안 되는 풍경이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니 정말 충격이었다. 이미 지붕 위에는 사람으로 가득해 자리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역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기차 위 사람들에게 본인 가방을 성급히 던지고 기차로 빠르게 올라탔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아는지 철도경찰들도 제지하지 않았다. 기차를 3대 정도 구경하다가 옆에 있던 방글라데시 형님이 나에게도 올라가 보라고 제안을 했다. 기차가 보통 10분 정도 멈춰있으니 빠르게 올라갔다 내려오면 위험할 일도 없을 것 같았다. 방글라데시 형들이 도와줘서 기차 위에 올라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더 있으면 위험해질 것 같아서 빠르게 내려왔다.
공항역에서 나와 굴산으로 향했다. 굴산은 방글라데시 최대 부촌이다. 방글라데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며 외국 자본 투자도 늘었다. 한국도 상당액을 투자해준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다. 방글라데시에서 살면서 가장 많은 청년들을 보았다. 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와 열정에 압도되었다. 이런 젊음이 들끓는 나라에는 미래가 있다. 굴산에서 마트에 가서 배탈대비 포카리스웨트를 사고 다시 나와서 kfc를 먹으러 갔다. 방글라데시는 라마단 기간이라 해가 떠있을 때는 먹거나 마실 수 없다. 대부분 식당이 문을 열어놓지만 음식을 팔지 않고, 그래서 패스트푸드 체인이나 호텔에서 식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kfc에 가는 길에 길거리를 구경했다. 도로를 크게 크게 채운 버스들. 여기저기 철판이 다 찢기고 창문도 깨져서 물류 컨테이너에 바퀴를 달아놓은 듯했다. 매연을 뿜어내며 무겁게 달리는 버스 사이로 릭샤들이 겁도 없이 유영했다. 이 미친 혼란 속에 그 사이사이를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걸어 다닌다. 잘 안 맞는 톱니바퀴 수백 개가 더듬더듬 꾸역꾸역 굴러가는 도시였다. 한참을 그 광경을 구경했다. 스모그에 분산되는 햇빛마저 다닥다닥 무너져가는 건물들과 질병처럼 뭉쳐있는 전선들과 어우러져 이 도시를 만들었다.
나와서 선착장으로 갔다. 명절 기간에 페리를 타고 고향에 가는 수요도 많다고 해서, 그 장면을 구경하고 싶었다. 선착장도 혼돈 그 자체였다. 큰 트럭이 시장에 물건을 내리고 시장에서는 정신없는 흥정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사이를 짐을 잔뜩 매고 아이들을 줄줄이 단 가족들이 지나고 있었다. 선착장에는 5층 넘는 큰 페리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선원이 확성기에 대고 끊임없이 목적지를 외쳤다. 버스 사이사이를 지나는 릭샤들처럼 페리 사이를 나룻배들이 채우고 있었다. 나룻배가 끊임없이 강을 오가며 반대편으로 사람을 나르고 있었다. 이 강은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70%가 흘러나오는 강이다. 남부 의류 공장 지대에서 발생하는 폐수도 전부 여기에 버려진다. 그래서인지 강이라기보다는 거대한 하수구처럼 느껴졌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면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은은히 역겨운 냄새가 났고, 강 물은 그냥 검은색이었다. 실제로 이 강에는 어떤 생명체도 살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한번 이 공간이 외계행성처럼 느껴졌다. ai로 생성된 영상 속 세상처럼 생경한 풍경이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이 강도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가득했다. 페리에 정신없이 오르는 사람들, 나룻배에 가득 차서 반대편 강으로 건너는 사람들 까지.
정신없는 일정을 마치고 시장에서 밥을 먹으려 릭샤를 흥정헀다. 릭샤 기사가 영어를 못해서 애먹고 있을 때 누가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본인을 가이드 일을 한다고 소개한 형님이 나를 30분 넘게 가이드해주며 식당으로 데려다주었다. 모험을 하다 만난 npc 같아서 즐거웠다. 식당은 라마단이라 영업 중이 아니었고, 현지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간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현지인이 도움을 주어야 한다. 버스에 번호판이 눈에 띄게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그마저도 아랍어 혹은 아랍 숫자로 적혀있어 전혀 알아볼 수가 없다. 담배를 피우며 휴식하는 버스기사 아저씨들한테 질문을 하자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알려주었다. 버스가 반대편에서 오자 나한테 알려주고 같이 뛰어서 버스를 멈췄다. 버스는 멈추지 않았고 나는 달리는 버스에 올라타야 했다.
진 빠지는 모험을 마치고 버스에서 1시간 30분 넘는 트래픽에 갇혀있었다. 그제야 내가 즐겁게 경험한 이 삶이 이곳 사람들에게는 절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실감이 났다. 그 와중에도 사랑과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어느 시절과 상황에도 역사를 피어온 인류가 이해됐다. 우린 어디서도 살 수 있는 존재이구나. 당연한 건 없구나. 숙소에 가서 대충 씻고 다시 밖으로 나가서 저녁을 먹으러 이동했다.
한 달짜리 라마단 기간에 해가 지고 게시하는 첫 식사를 구경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사람이 아잔이 울리길 기다린다. 식 탄에 음식을 시켜놓고 바라만 보고 있다. 그러다 아잔이 울리면 허겁지겁 식사를 시작하는 진 풍경이 펼쳐진다. 거리에 있는 모든 식당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첫 번째 식당에서 퇴짜를 맞았다. 4층짜리 두 번째 식당에도 자리가 없었다. 주인이 애를 쓰며 나를 5명이 앉아있는 6명짜리 테이블에 앉쳐 주었다. 방글라데시 형님들. 한 명은 대학교수, 한 명은 클럽직원 등등인 아저씨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었다. 한 형님이 밑에 내려가서 디저트도 사줬다. 뱅골식 요구르트 00 미스티? 였는데 정말 맛있었다. 형님들을 조금은 경계했는데, 내 식사 금액까지 지불에 주어 무척 고마웠다. 이 고마운 마음과 즐거움을 잃으면 안 되니 바로 숙소로 복귀했다. 한국 지인들과 통화를 하고 가계부를 작성하니 밤늦은 시간이 되었다. 바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