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내 상식을 전부 깨부순 하루 방글라데시 다카

스물여섯 취준대신 세계일주

by 여행가 민식

방글라데시에서 단 하루를 보냈다. 그 하루가 내 모든 당연함을 비웃듯 부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상식이라고 부르는 모든 지식이 이곳에서는 무용 지물이 된다. 규칙 없는 도로, 폐가 쓰린 매연, 라마단.. 그런데, 그 무너진 상식 속에 수 천만명 사람들이 살고 있다. 웃음과 사랑을 잃지 않고 열정을 다해 살고 있다. 이 혼란스러운 도시에서 내가 강렬함을 느낀 건 도시 곳곳에 사용된 원색 때문이 아니라. 폭주 기관차처럼 열정을 뿜어내는 터질 듯이 많은 사람들 때문일지 모른다.


하루 만원 외진 골목에 위치한 숙소를 잡았다. 여기 물로 양치를 하면 배탈이 날 수 있다. 생수를 사서 양치와 세안에 사용했다. kfc에 갔는데 사람이 없다. 라마단이라 해가 떠있을 때에는 그 어떤 것도 마시고 먹을 수 없다고 한다. 시장을 구경하는데 웬 사이렌이 울린다. 알고 보니 아잔이라는 기도였다. 하루 5번 매일 라이브로 전국에 울리는 기도이다. 도로에는 신호는 무슨 어떠한 규칙도 없다. 이미 전부 부서진 버스는 매캐한 연기를 뿜으며 달린다. 버스에는 에어컨도 하차벨도 자동문도 없다. 아, 애초에 문이 없다. 문이 달려있어야 할 자리에 문 대신 사람이 매달려 크게 소리를 지른다. 이 버스는 어디로 간다고 얼른 타라고. 달리는 버스에 사람들이 구겨져 올라탄다. 기차역은 또 어떤가. 기차 지붕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있다. 내부에 더해 지붕까지 사람을 가득 채운 디젤 기차는 느리게 움직인다. 저 상태로 열 시간 넘게 목숨을 걸고 고향에 간다. 강물은 더러운 수준을 넘어 거대한 하수구처럼 보였다. 실제로 다카 쓰레기 70%가 유입되는 이 강은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다고 한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자 역겨운 냄새가 들어와 구역질을 했다.


한국에서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든 상식이 무너져 내리는 풍경이다. 우리나라 수돗물은 배탈은커녕 원래 마셔도 되는 물이다. 마시고 배탈이 나면 정부가 배상을 해주는 게 당연하다. 우리 엄마는 내가 아침을 거르면 길에서 객사하는 줄 알고 계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밥은 잘 챙겨 먹어야 하는 게 내 상식이다. 어머니 아버지 세대에는 당연했던 국민의례, 거리에 국민의례가 울려 퍼지면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올려야 했더랬다. 우리 세대에게는 남자들이나 군대에서 배우는 어색한 문화가 되었다. 오늘 내가 탓 던 오토바이나 릭샤처럼 운전을 하는 기사가 있다면 벌금으로 백만 원 넘는 돈을 몰고 몇 년간 면허가 정지될 것이다. 에어컨이 고장 나거나 하차벨 소리를 놓친 버스기사는 민원 폭탄을 받을 수도 있다. 기차 지붕에 사람이 올라간 건 그냥 살면서 처음 봤다. 우리 할머니한테 물어봤는데 1940년 대에는 종종 그랬다고 하더라. 수질이 조금만 오염되어 봐라 환경단체가 정부기관 앞에서 몰려들어 시위를 할 것이다. 이게 내가 사는 세계의 당연함이다. 이 모든 당연함이 깨진 하루였다.


어딜 가도 난 생 처음 보는 풍경. 외계행성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도파민으로 가득 찬 하루. 신난 강아지처럼 열정을 다해 도시를 탐험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중신지인 올드 다카에서 부촌인 굴산으로 넘어오는 버스를 탔다. 한 시간 반 동안 버스에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거리를 관찰했다.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다가 아차 싶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들지만, 그냥 산다는 그녀에 말에 눈이 뜨였다. 나는 여행자이다. 이 낯선 환경이 고되게 느껴져도 일주일이 지나면 좋은 환경으로 간다. 하루 만에 못 버틸 정도라면 그냥 귀국해 버려도 그만이다. 하지만 여기서 오늘 나를 스친 수백만 명에게는 이 혼란스럽고 사람으로 가득 찬 거리가 일상이다. 아무리 힘들고 싫어도 이 환경이 개선될 여지가 거의 없다. 1970년대 대한민국이 내가 태어난 2000년대 대한민국이 되기까지 30년이 걸렸듯. 기적이 일어나도 청년이 중년이 되는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들의 당연함 속에서 사랑을 잃지 않고 살고 있다. 어딜 가나 순박한 눈빛으로 나를 관찰한다. 수줍게 말을 걸고 내가 대답해 주면 크게 즐거워한다.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타나 도움을 준다. 릭샤 기사에게 120원을 덜 내게 해주려고 나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릭샤 기사들도 릭샤?를 한번 외치고, 내가 “노노”로 답하면 싱긋 웃어보고 갈 길을 간다. 관광객이라고 사기를 치는 경우도 없다. 한 오토바이 기사님은 잔돈이 없다고 돈을 덜 받고 가버렸다. 길에서 휴대폰을 사용하는 내게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고, 영어가 유창한 아저씨가 나타나 한 시간을 가이드해주고 사라진다. 식당 주인은 라마단 첫 저녁 식사로 꽉 찬 4층 짜리 식당에서 내 자리를 마련해 주려 애쓴다. 합석하게 된 방글라데시 형님들은 내게 디저트를 시켜주고 이내 내 밥값을 전부 계산해 주고 떠났다.


이 하루가 내 당연함을 비웃었다. “너 그거 당연한 거 아니야. 세상에 당연한 게 어딨 냐”.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이토록 찬란하게 피어나 사랑을 한다. 살아보지 못한 시대에도 사람들이 역사를 써내려 갔다는 게 좀 더 와닿은 하루였다. ’ 사람이 대자연을 만나면 마음속 근심이 사라진다고 한다. 우리가 바다를 찾는 이유이다. 넓은 바다를 보면 나를 지배하던 고민과 걱정들이 작아진다. “바다가 이렇게 넓은데 너 그거 고민해서 뭐 하냐”. 다카에서 보낸 첫날을 가슴에 깊이 담아두려 한다. 내가 지치고 힘든 날이 올 때마다. 한 점 펼쳐보고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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