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취준대신 세계일주
인도 델리에 도착했다.
방글라데시와 같은 역사, 종교, 민족정체성을 공유하는 나라. 그래서인지 묘하게 닮아있다.
동아시아인이 아닌 사람들도 일본과 한국을 보고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 싶다.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5일을 보낸 후라 다른 나라가 아니라 미래로 온 시간 여행처럼 느껴졌다. 분명 같은 사람들인데 전통 의상대신 현대 복식을 갖추어 입고, 자전거 릭샤가 가득 채우던 자리를 오토릭샤가 채우고 있다. 지하철이 다니고 있고, 글로벌 프랜차이즈 간판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사람들이 풍기는 분위기도 보다 현대스러워졌다. 어른들이 해주는 이야기와 미디어를 통해 접한 1980년스러운 방글라데시였다면, 인도는 여느 동남아 국가 같았다. 순박함을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들 똑같이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도 썩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사기를 치려고 달라붙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호의도 거절하게 된다. 좋은 사람이 주는 마음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쓰렸다. 오늘 나빈 가게에서도 주인이 주는 짜이를 한참 그대로 뒀다. 내 앞에 여 점원이 한 입을 마시고 나서야 나도 한 입 마셨다.
한편으로는 편안함을 느꼈다. 8인 도미토리에 묵고 있는데, 방글라데시 3만 원짜리 호텔보다 편하다. 여기저기 익숙한 글로벌프랜차이즈 간판에 마음이 놓인다. 인터넷에 정보가 널려 있어서 여기저기 다니기에도 편하다. 한 편으로 이런 편안함이 여행 몰입을 떨어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 다녀온 후마윤의 묘지, 레드 포트, 자마 맛지드 전부 살면서 본 유적지 중 가장 인상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 방글라데시는 여행보다는 모험에 가까웠다. 매일매일이 가슴이 뛰게 즐거웠다.
요즘 세상에서 여행은 80%가 출국 전에 이루어진다. 어느 장소에, 식당에, 도시에.. 어떤 장소든 직접 밟기 전에 모든 정보를 습득한다. 그 장소가 어떻게 생겼고 분위기는 어떠하며, 먼저 방문한 사람들은 어떤 감상을 받았는지를 면밀히 검토한다. 마치 직장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계획을 세우는 과정처럼 여행을 하게 된다. 이런 여행에서 실제 여행지에 도착한 나에게 주어진 공간은 내가 보고 온 사진과 실물이 일치하는지, 사람들이 남긴 감상에 내가 동의할 수 있는지 정도이다. 예상 밖에 깨달음이나 놀라움 감동이 들어올 여지가 적다. 물론 나도 이런 여행을 하고 있다. 전부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무엇이 유명한지 정도 훑고 구글맵에 찍어두고 있다. 각 도시별로 방문자들이 대체로 어떤 후기를 남겼는지 또한 여러 번 검토하고 있다.
여행지에서 기억에 남는 건 찬란한 유적도, 탄식이 나올만한 자연환경도 아니다. 예상 밖에 상황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길을 잃거나, 짐을 도둑맞았던 경험. 길을 걷다가 만난 만족스러운 상점. 우연히 인연이 겹쳐졌던 여행자들까지.
오늘 탄식이 나올 만큼 웅장한 델리의 유적들을 보며 지난 여행에서 보았던 유적들을 떠올렸다. 당연하게도 대부분 이미 흐려져 버렸다. 성인 첫 여행지였던 베트남 다낭. 그곳에서 관람한 왕궁과 고대 유적은 휘발되었지만, 길을 걷다가 우연히 끼게 된 풋살 경기만은 생생하다. 오사카와 도쿄, 후쿠오카는 흐릿해졌지만. 아버지와 길을 헤매다 겨우 찾은 미야자키 민박은 생생하다. 베트남에서 방문한 어떤 여행지 보다도 무작정 현지벤을 타고 떠났던 봉따우가 생생하다.
앞으로 내가 평생 살면서 방문한 나라들보다 더 많은 나라를 밟게 된다. 인터넷에 꼭 가보라는 관광지들 좀 안 가면 어떤가? 어차피 잊힐 텐데. 이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일상을 더 많이 담아가자.
실망에 대한 걱정을 받아들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