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할 수도 없는 상사가 더 무섭다. ‘멍부’와 ‘똑부’ 사이에서 살아남기
직장인의 생태계는 크게 네 가지 종으로 분류된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똑부’, 똑똑하고 게으른 ‘똑게’, 멍청하고 게으른 ‘멍게’, 그리고 조직의 재앙이라 불리는 멍청하고 부지런한 ‘멍부’.
사실 임원급 이상에 오른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부지런함'을 장착하고 있다. 그것이 업무 역량이든 정치적 감각이든, 일정 수준 이상의 성실함은 그 자리에 가기 위한 생존 기본값이기 때문이다. 결국 조직문화와 성과를 결정짓는 결정적 한 끗은 그 부지런함이 '똑똑함'과 만나느냐, '멍청함'과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
시간을 거꾸로 걷는 회사판 금쪽이
임원의 결정은 아래로 내려올수록 눈덩이처럼 커진다. 위에서 던진 "한번 알아봐", "한번 해봐"라는 가벼운 한마디가 실무자에겐 며칠 밤을 새워야 하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되는 것이 직장 생활의 생리다.
내가 만난 임원 A 씨는 전래동화 속 우산 장수와 소금 장수를 둔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날씨가 맑으면 우산이 안 팔릴까 직원들을 닦달하고, 비가 오면 소금이 젖을까 또다시 몰아세웠다. 그는 상황을 분석하기보다 산만하게 “문제없냐?”를 반복하며 조직에 불안을 전염시켰다.
이 불안은 아래로 갈수록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고, 여기에 비난과 화가 더해지면 결국 조직 전체를 집어삼키는 집중호우로 변했다. 감정은 계곡물과 같아서, 위에서 아래로 흐를수록 더 많은 불순물을 머금고 거세지는 법이니까.
A 씨는 실무자들의 고충에 무지했다. 그리고는 이내 감정을 배설했다.
“나는 마음이 급해!! 빨리빨리!! "
"대답해!! 큰소리로 대답해!! 대답!!"
"왜 이렇게 가만히 있는 거야? 나만 급해?”
A 씨는 열정을 가장하려 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자기 연민에 빠진 채 나이만 먹은 직장인에 가까웠다. 나는 동료들 사이에서 그를 '벤자민'이라 불렀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주인공처럼, 겉모습은 오십 대지만 인내심만큼은 점점 어려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는, 나이만 어른인 ‘어른이’였다.
이런 ‘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한)’ 상사를 상대하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그의 실수나 오류를 바로잡으려 애쓰기보다, 그의 불안을 가라앉히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결국 그가 원하는 것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 '안전하다는 확신'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어느 순간, 그를 '회사판 금쪽이'처럼 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오은영 박사가 금쪽이를 대하듯, 세상 다정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해줘야 한다.
“문제없습니다”
“현재 상황은 안정적입니다.”
"지금 상황 통제되고 있습니다. 리스크는 관리 범위 안에 있습니다."
이런 차분한 보고가 그를 안심시킨다. 그리고 그 안심은 조직을 잠시나마 평온하게 만든다. 그의 불안을 잠재우는 일. 그것이 때로는 가장 현실적인 방어가 된다.
인품이라는 창살 없는 감옥, 똑부
반면 똑똑하고 부지런한 관리자 B는 공포의 결이 달랐다. 그는 세종대왕이나 방송인 유재석 같은 부류였다. 존경받아 마땅하고 대중적 호감을 사는 인물이었지만, 과연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마냥 행복했을까?
B는 기억력이 비정상적으로 좋았고, 그보다 더 무서운 건 그의 '경청' 능력이었다. 상대의 말을 완벽히 이해하고 기억하기에 어설픈 블러핑이나 변명은 씨도 안 먹혔다. 내가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지 못하면, 그는 인자한 얼굴로 더 치밀한 질문과 과제를 정중하게 건네주었다.
인품까지 훌륭한 그는 차마 욕할 수도 없는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그를 욕하는 순간, 내가 속 좁고 무능한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멍부'보다 이 '똑부' 상사를 견디는 것이 훨씬 힘들었다. 보고서를 쓸 때면 답 없는 주관식 수학 문제를 풀듯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고, 스트레스는 퇴근 후 꿈속까지 이어졌다. 나는 꿈속에서도 같은 문제를 풀고 있었고, 휴식은 더 이상 휴식이 아니었다.
B의 칭찬 한마디에 어깨를 누르던 모래주머니가 두두둑 끊어지는 쾌감을 느꼈지만, 그 기쁨은 찰나였다. 그의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내 모습에, 설명하기 어려운 자괴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정신적, 체력적 고통은 극에 달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의 지독한 지원 사격 덕분에 그해 승진을 거머쥐었다.
결국, 나를 지키며 성장하는 법
직장 상사나 선배를 무조건 존경할 필요는 없다. 능력 있는 척하며 가스라이팅으로 충성심만 요구하는 이들은 결국 조직을 무능하게 만든다. 하지만 다행히 '멍부' 관리자의 유통기한은 길지 않다. 한계가 명확하기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진다. 그때까지만 '금쪽이' 달래듯 버티면 된다.
문제는 똑똑한 관리자를 만났을 때다. 이때는 자세를 고쳐 앉고 정신력을 보강해야 한다. 그것은 시련인 동시에 기회이기 때문이다. 신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고 했던가. 그 치밀한 과정을 통과하면 우리는 반드시 한 단계 진화한다.
조직에서 관리자의 성향은 직원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상사가 ‘금쪽이’든 ‘세종대왕’이든, 나라는 존재의 중심축만큼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
멍부 상사에게 영혼을 털리지 말고, 똑부 상사에게 내 삶의 주도권을 통째로 넘겨주지 말자. 조직에서의 시련은 결국 지나가지만, 그 시간을 견디며 단단해진 근육은 오롯이 내 것이 된다.
그가 누구든 당신의 밤까지 망치게 두지는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