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을 겪어 본 사람만이 느낄수 있는 것이 조의금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겪지 않고 무엇을 판단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한다는 것을 이번에 뼈져리게 생각했다.
큰일을 치루기 전에 축조의금에 대해 왜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직장이나 친구간에 어느 정도를 얼마나 할지를 고민했었다. 오히려 없으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내가 주는 사람과 받게 되는 사람은 다른 경우가 많다. 내가 했는데 퇴직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가끔 인터넷에 축조의금 관련 글이 나오면 다양한 리뷰가 나오지만 다수는 부정적인 내용이 많다.
일본의 경우 결혼식에 초대를 받는 사람만이 참석할 수 있고, 가까운 가족에게 초대장을 보내는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결혼식이나 상을 치를때 본인이 속한 조직 전체에 알린다. 친하든 친하지 않든 구분하지 않고 보내는 것에 비하면 큰 차이가 있다. 개인적인 생각은 친분이 가까운 사람에게만 알리는 쪽을 선호한다.
그 많던 생각이 내가 상을 치르며 조의금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졌다. 조의금과 조문 오시는 분들에 대한 감사는 생각했던 이상으로 느껴진다. 이전에 내가 조의를 넘긴 분이 조의를 하는 경우는 마음의 빚의 무게가 버겁게 느꼈고, 내가 했는데 하지 않는 분은 실망스럽지만 가볍게 넘길수 있었다. 별것 아닌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인생을 이 정도로 살았구나 하는 평가까지 하게 되었다.
4명의 형제가 있는데, 어떤 사람은 조의가 한명도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마음이 더 짠했다. 이럴수도 있구나.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하면서도 복잡한 마음은 설명되지 않았다.
돈은 단순히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조의금은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 엄마를 보내는 큰 수업료로 보이지 않는 많은 수업이 있었다.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한 줌으로 떠나는게 인생이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게 되었다. 요즘은 장묘 문화가 바껴서 대부분 무덤보다는 화장을 한다. 짧은 시간에 한 줌으로 떠나는 것을 보며, 인생이 덧없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내가 살아 있는 날이 얼마나 될지 그 누군도 나도 모르지만 사는 동안 좀더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수반될때 평화도 함께 올 수 있으므로 지금부터라도 좀더 건강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번에 큰일을 치루고, 앞으로는 나와 함께 했던 이들에게는 고민없이 조의를 해야한다는 기준이 생겼다. 실제로 가지 못한다면 짧게 나마 위로의 문자라도 하는 것이 옳다라는 생각을 했다.
세상이 AI로 넘쳐나지만 AI에게서는 바랄수 없는 것이 이런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 따뜻함을 느낄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