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영이 검지 손가락을 출입문 인식기에 올리기 무섭게 문이 스르르 열린다. 그녀는 정시보다 늘 30분가량 일찍 출근해서 일을 시작한다. 눈치가 빠르고 남에게 지기 싫어한다. 김도연팀장이 이 부서로 발령 나기 3년 전부터 일을 했다. 그 덕에 사원이지만 여러 가지 돌아가는 일을 잘 안다.
잘 안다고 김팀장을 패싱하고 과장에게 서류를 보고한다. 송태만이 발령 나기 전에 근무했던 진수철 대리도 선택적으로 보고를 했다. 본인 편의대로 선택적으로 김도연에게 보고를 했다. 김도연은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지만 언제까지 그럴까 지켜보았다.
작년 12월까지 정민구 이전에 근무했던 박민철은 강미영과 진수철과는 달랐다. 세 명이 친하기는 했으나 상사에 대한 예의는 지켰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심현실 과장은 패싱 한 서류를 열심히 수정했다. 김도연은 과장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것이 짜증 났지만 지켜보기만 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김도연의 상황을 지켜보던 박지수와 손미자가 진수철과 강미영의 기본이 되지 않는 업무 형태에 대해 문제를 말해 줬다. 이전부터 문제 되는 상황이었다. 김도연 팀장 오기 전의 이기영 팀장은 일을 하지 않고 모두 직원들에게 일을 시켰다.
그래서 그들은 패싱이 익숙했다. 그 영향으로 김도연 팀장은 익숙하지 않은 패싱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박지수와 손미자에게 들은 이야기를 듣고서 진수철과 강미영의 업무방식에 이해를 하면서도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사람이 바뀌면 그들도 변해야 하는데 변화지 않기 때문에 김도연은 날이 갈수록 더 화가 났다. 말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바뀌지 않고 날이 갈수록 더 심해져 갔다. 김도연이 발령받고 6개월이 되는 날을 기점으로 김도연은 할 말을 하기로 결심했다.
김도연은 여느 때처럼 8시 전에 사무실에 도착한다. 전날 새벽까지 계속 어떻게 말할까 생각하다가 아침이 왔다. 잠을 못 잤지만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전쟁터를 참전하는 준비된 용사 같았다.
잠시뒤 오른쪽 옆자리에 진수철이 앉았고, 5분 뒤 맞은편에 박민철이 도착했다. 김도연은 컴퓨터의 조직도에서 강미영을 검색했다. 그녀는 병가로 표시되어 있다. 김도연은 진수철에게 강미영은 왜 근태를 사전에 보고하지 않는지를 물었다. 6개월간 한 번도 사전보고하지 않고 과장, 사장에게 보고하는 것이 맞는지를 물었다.
차분하지만 강하고 명료하게 말했다. 박민철은 눈치만 보고 숨을 죽이고 있다. 진수철은 바짝 긴장하며 저희에게 말하는 건가를 물었다. 김도연은 진수철에게 강미영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으나, 진수철과 박민철은 긴장하며 뱀처럼 스르르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들의 대화는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이후 박지수에게 강미영의 근태를 확인해 달라고 했다. 강미영의 잦은 조퇴, 병가를 확인하고 본인에게 팀장은 어떤 존재인가를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전 11시 즈음 나타난 강미영은 사무실에서의 일들을 진수철과 박민철에게 들었는지 김도연에게 면담요청을 했다.
김도연은 짧고 명확하게 단독으로 업무체계를 바꾸라고 했다. 문제가 될 때만 김도연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지금 방식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강미영은 눈물을 흘리며 잘못했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며 일은 마무리되었다.
세상에 바뀌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사람의 성격이다. 일과 성격은 깊은 관계가 있다. 가끔 사람에 따라 변화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노력하겠다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수도 없다. 이런 게 다 조직 생활의 어려움이 아닐까. 강미영의 달라진 모습을 바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