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18.
예고했던 것처럼 오늘은 특별편으로 대신합니다 :) 고3 가을에 블로그에 써둔 글인데, 정세랑 작가님 책을 읽고 몇몇 부분을 인용하면서 썼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 저는 그동안의 글에서 쭉 이야기했던 것처럼 대입 체제에 대한 나름의 저항의 일환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것에 여전히 빠져 있었고, 평생 좋아해 본 적 없었던 아이돌 중에서도 좋아하는 그룹이 생기기도 했었습니다. 콘서트를 따라다닐 정도로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발매되던 세븐틴의 노래 속 가사들은 수험생이었던 저에게 너무 큰 위로로 다가왔었거든요. 여전히 산책하면서 예쁜 하늘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참 많았고, 수능이나 입시라는 틀 밖에서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들을 만난 덕분에 그래도 숨을 쉬면서 살았습니다. 오늘 특별편은 그런 마음들이 담긴 기록 하나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그저 소설 한 편 읽고 사랑에 대한 감상만 구구절절 써둔 것 같지만 이것이 당시 제가 입시 준비 과정에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다루는 방식이었고 수동적으로 살아가지 않으려 애쓰는 노력의 모양 중 하나였으니까요!
그럼 시—작!
어떤 특별한 사람은 행성 하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어요.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저한텐 엄청 분명한 문제예요.
-정세랑, '지구에서 한아뿐' 中-
정세랑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 이상하다 싶을 만큼 글을 쓰고 싶어집니다. 항상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작가님의 다른 책을 다시 집어 들고나서도, 정말이지 무엇이라도 쓰고 싶은 마음이 주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특별한 사람은 하나의 행성보다도 의미가 크다는 말이 좋았습니다. 사실 틀린 말이 전혀 아니더라고요. 당신도 나도, 각자만의 세계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우리 모두 저마다의 우주를 가지고 있지 않나요. 형형색색의 마음을 한 행성들을 품고 있고, 수많은 감정이 모여 만들어진 운석들이 우리 각자만의 우주 속에서 날아다니죠. 운석을 마음이라 일컫는다면, 당신의 우주를 가로질러 나의 우주로 도달한 어떤 운석 하나가 내 안의 이름 모를 별에 닿았기에 당신이 나에게 유의미한 존재가 되고, 이 모든 게 다시 내게서 당신에게로도 이루어짐으로써 나도 당신에게 아주 조금은 유의미한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운석이 처음부터 좋은 마음이었든 아니었든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건 나와 최소한 나쁜 관계는 아니라는 뜻일 테니까.
막상 말해놓으니까 좀 지나치게 이상한 소리를 한 건가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나한테는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한 내가 맞닥뜨린 새로운 우주일 거예요. 당신의 세계를 존중합니다. 당신이 지향하는 바와, 당신의 꿈과, 신념, 가치관, 이런저런 마음들 모두 당신을 빛나게 해주는 것들이니까, 나도 그런 당신의 작은 부분들을 좋아합니다. 그 작은 조각들이 모여 이루어진 당신이라는 사람 하나를, 아마도 나는 당신의 생각보다 꽤 소중하게 여기고 있을 거예요. 그렇게 나도 누군가에게는 행성 하나 이상의 의미를 가진 사람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오늘을 열심히 살고, 이 한 주를 열심히 살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죠!
"...... 너야."
언제나 너야. 널 만나기 전에도 너였어. 자연스레 전이된 마음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틀렸어. 이건 아주 온전하고 새롭고 다른 거야. 그러니까 너야. 앞으로도 영원히 너일 거야.
-정세랑, '지구에서 한아뿐' 中-
사실 마지막 문장은 ‘……’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나는 말끝을 흐리는 것 같아 별로더라고요. 확신의 온점 하나였으면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너일 것이라는 확신, 주인공 한아가 자신의 연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어떤 단단하고 뿌리 깊은 마음이니까요.
'앞으로도 영원히 너일 거야.'
되게 다정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대를 향한 마음이 영원할 마음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니. 언젠가 나도 이런 확신에 찬 말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올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완전한 타인이었던 이에게 확신에 확신을 거듭한 마음을 내어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더라고요. 내가 느끼는 감정들, 어떤 마음들에 대해서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당당하고 멋진 모습이었으면. 여전히 나는 움츠러들지 않고 스스로에게, 또 타인에게 솔직할 수 있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나도 그런 사람이었으면 싶습니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어떤 관계들이 오래 남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이런 마음들이 나에게 강박으로 돌아오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멋지다고 말해주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오래오래 붙잡아두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습니다. 꿈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아요.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그래도 나의 기도가 '좋은 대학에 가게 해주세요'가 끝은 아니었으면 합니다. 내가 원하는 분야를 공부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곳에서, 내가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행복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이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글도 오래 쓰고 싶어요. 오래도록 읽어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주었으면 좋겠어요. 내 글이 시간이 지날수록 깊이가 더 생겼으면 좋겠어요. 내 말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해요.
이야기가 약간 딴 길로 샌 것 같은데. 뭐 아무튼 그냥 조용히 넘어갑시다.
흔하지 않지만 어떤 사랑은 항상성을 가지고, 요동치지 않고, 요철 없이 랄랄라 하고 계속되기도 한다.
-정세랑, '지구에서 한아뿐' 中-
한 때 내 모토는 '사랑받은 만큼 사랑하자'였는데, 뭐 지금도 딱히 달라진 건 없지만. 위에 저 글을 보고 나서 오랜만에 떠올랐어요, 내가 붙잡고 있었던 목표가. 사랑받은 만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가능하다면 더 많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아,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에 크리스토퍼가 나온 영상을 봤는데.. 진짜 마인드가 너무 멋지더라고요. 사랑받기 위해서 스스로를 바꿀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라는 말..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그냥 갑자기 떠올라서 덧붙여봅니다ㅎㅎ
https://youtu.be/cKB1rK5dJS8?si=dY1z-oHNM3COb9rn
언젠가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가요? 상처받을 용기가 필요하다고. 인간관계에서도, 학업과 입시 가운데에서도 조금은 힘들고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하고 모든 것을 쏟아부을 용기가 필요하다고. 내가 걷는 길들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해요. 그 사랑이 요동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너무 흔들리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묵묵하게 내 선택들을 사랑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그리고 내가 걷는 길의 과정 하나하나 가운데에서 만나는 소중한 인연들을 흔들림 없는 사랑으로 꼭 안아주고 싶어요. 사랑이 더없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해요, 서로를 조금 더 아껴줄 때라고. 누군가를 미워하기에는 사랑할 시간도 부족하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오늘의 시간은 아무리 후회해도 되돌아오지 않으니까. 물론 모든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 나의 일차적인 목표는, 그런 이들에게 줄 감정과 마음을 아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쏟는 거예요. 지금 나는 아직 어른과 아이의 과도기에 있는 사람이니까, 조금은 더 서툴러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의 나는, 내가 마음을 쏟을 가치가 있는 곳에, 그런 사람들에게 마음을 온전히 쓰고 싶어요. 편파적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그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 마음이 조금 넓어지면, 미운 마음이 들던 사람들마저도 이해할 수 있는 날들이 오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 끝없이 마음의 공간을 키워놓을 거고.
물론 그 모든 것 이전에 나를 아껴주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만 :)
음, 그야말로 사랑 이야기가 정말 많았는데, 오늘 글의 주축을 이루는 인용구의 출처인 소설이 사랑 이야기라 그런 것 같아요. 내 글이 너무 과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땠을지 모르겠습니다.
추신:
https://www.youtube.com/watch?v=FcACC2nLAr
도겸 커버곡 뜬 거 보고 바-로 원곡도ㅎㅎ 처음으로 들었잖아요.. 제대로 꽂혔답니다
이도겸 음색도 좋고, 커버곡인데 영상으로 만들어준 것도 너무 좋고.. 노래 가사도 너무 좋고, 노래 분위기 자체가 너무 좋더라고요
계속 프뮤 바꾸다가 한동안 이걸로 고정될 듯합니다
아무쪼록 행운을 빌어 줘
내 앞길에 행복을 빌어 줘
계절이 흘러 되돌아오면
더 나은 내가 되어 있을 테니
기대해 줘
-원필, <행운을 빌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