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한 당신 안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모르지 않는다는 것
사랑과 분노는 어쩌면 글을 쓰기 위한 가장 거대한 원동력일지 모른다던 친구의 말을 종종 생각하고는 합니다.
고등학교에서 보낸 3년은 말 그대로 애증. 아끼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공존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만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밉기도 미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미웠던 것은 학교가 아니라 제 자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원하던 결과를 손에 쥐지 못했던 나. 미련하게 성실한 생활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점수와 등수와 백분위로는 그것을 증명해내지 못한, 나.
그러니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입시,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한 이 모든 기록은 결국 제가 스스로와 화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글을 쓰기 위해 예전의 기록들을 뒤져가며, 덮어두었던 과거의 감정들을 꺼내 들여다보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눈물지었던 그 모든 시간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라도 필수불가결한 시간이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반드시 거쳐야 했던 2년 가량의 시간 동안 저는 스스로의 바닥을 보기도 했고, 무언가 이루어냈을 때 느껴지는 달콤함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 우여곡절이 남들의 눈에는 평탄해 보였을지라도 스스로에게는 매 순간이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건 몰라도 치열한 내적 갈등과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수차례의 전투에 대해서, 아예 모르기보다는 조금 더 압니다. 당신이 겪고 있는 캄캄한 시간이 얼마나 외로운지, 다 알지는 못해도 어렴풋하게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설프게 안다고 타인의 상황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조언하는 것보다, 방향을 잡아주려고 하는 것보다 그냥 곁에 있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감이라는 것을, 저는 스스로의 어둠을 경험해 보면서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난 2년을 보내오면서 얻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값진 자산입니다.
고등학생 때 저에게는 좌우명 아닌 좌우명이 있었습니다. ‘사랑받은 만큼 사랑하기’. 많은 사랑을 받고 자라온 과거에 대한 감사의 의미이자, 앞으로 내가 더 잘하겠다는 다짐, 소중한 사람들을 향한 약속이었습니다. 유독 고3 때 썼던 블로그를 보면, 힘들어서 발버둥 치고 애쓰는 내용만큼이나 주변에 대한 사랑이 생각보다 많이 묻어납니다. 그러다 입시를 마무리하고 나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한동안 그 좌우명을 잊고 살았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성년의 날을 맞으면서 꼭 사랑할 줄 아는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주어진 현실에 집중해서 살다 보니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잊을 때가 더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말하듯,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영원한 책임이 있는‘ 것이죠. 그러니 어린 왕자가 자기 별에 두고 온 장미에 대해서도, 어린 왕자에게는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길들인다는 것이 특별한 관계 맺음을 의미한다면, 서로가 서로를 맞닥뜨려 어떤 관계성을 이어간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것, 그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더 잘 살아내고자 하는 마음. 저에게는 그것이 ‘사랑받은 만큼 사랑하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졸업식을 하루 앞두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 장문의 카톡을 보냈습니다. 선생님은 그해부터 다른 학교로 발령받으셨던 관계로 졸업식에서는 뵐 수 없었기에, 입시를 마무리하고도 연락을 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저는 고3 1년 동안의 이야기를 카톡 대화창에 적었습니다. 아마 한 9개의 문단으로 글을 썼었나 봅니다. 그래도 선생님 덕에 공부하는 법을 제대로 배웠고, 제가 가진 가치관도 공부 방법도 틀리지 않았음을 믿으면서 수험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카톡의 ‘1’은 금방 없어졌는데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문단이 너무 많아서 오래 걸리시겠지, 생각하고 그냥 다른 걸 하면서 기다렸던 기숙사에서의 마지막 밤이었습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궁금했다는 이야기가, 안타깝다는 이야기가, 괜찮다는 말이, 졸업 축하한다는 인사가, 얼마나 마음을 울렸는지 모릅니다. 실제로도 전화를 받으면서 눈물을 좀 흘렸습니다. 솔직히 그냥 재수하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말씀하셔도 달게 받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선생님은 제가 선택하는 길이 맞는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만큼 큰 응원이 없었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도전할 것들은 계속 도전해 보라는 이야기와, 다른 건 몰라도 밥은 사줄 수 있으니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말씀이 참 감사해서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그 뒤로 연락을 드리지 못했던 것은 저 또한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때보다도 더 많은 감정들이 정리가 되었고,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더 많아졌으니 조만간 연락을 드려도 괜찮겠죠 :)
생각해 보면 사랑을 많이 받고 살았던 게 정말 맞습니다. 2학년 때 부담임 선생님께서 선물해 주신, 선생님이 안 쓰시던 블루투스 타자기 키보드로 이 문장도 써 내려가고 있으니까요. 이런 에피소드들이 아니어도 따뜻한 응원을 받고 사랑을 받아와서, 그 기억에 힘입어 또 하루를 사는 오늘의 제가 있습니다. 2년 전 제가 수능을 볼 당시에 받았던 편지 중 한 통에는, 수험생으로 사는 시기가 참 힘들기는 하지만 그만큼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기더라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랑받고 있음을 꼭 기억해 달라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손에 쥐고 있는 결과물로 인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그것을 너무 쉽게 잊고 살지만, 반복적으로 상기시키다 보면 잊고 사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애정 어린 마음을 계속해서 상기시킬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주어진 자리에서 공부를 하고, 무언가를 또 배우고, 더 많은 것을 느끼면서 지냅니다.
누구에게 가닿을지 모르겠습니다. 도움이 되는 글일지도 불분명합니다. 그래도 이것만은 바랍니다.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은 순간일지라도, 어쩌면 그 순간이 당신의 장미를 꽃피울 순간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음을. 당신의 장미가 시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를 너무 괴롭게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설령 꽃이 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건 다시 찾아올 여름을 기다리며 준비하라고 주어진 시간인 것일 테니까요.
꽃을 한가득 피울, 당신의 찬란한 여름을 응원합니다.
2024.10.26.
마음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