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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예린 Oct 26. 2024

재도약

내 인생 아직 안 끝났잖아


안녕하세요, 길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너무 진지한 이야기만 수두룩이라 재미는 별로 없었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


마지막 두 편은 부록의 색깔이 강한데요. 이번 화는 본편과 부록 그 사이 어딘가 즈음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될 듯합니다. 저의 현주소에 대한 이야기. 첫 화의 부제목이었던 ‘대입에서 실패한 특목고 졸업생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진짜 대답이라고 볼 수 있겠죠. 저는 잘 지내고 있을까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괜찮지 않았을 때는 이런 글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거든요. 괜찮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사실 가끔 안 괜찮을 때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괜찮습니다. 대입에서 실패했다고 제 인생까지 쫑 나버리지는 않았으니까요. 잘 살고 있다고, 그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브런치 연재입니다. 부디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살면서 한 번 정도는 맞닥뜨릴 가치가 있는 이야기이기를 바랍니다.




지하철을 타고 등교를 하다 보면, 내려야 하는 역 바로 전에 제가 원서 한 장 써보지도 못했던 학교의 이름이 나타나고는 합니다. 저에게 특목고를 졸업했으면서 동기들 앞에서 내세울 수 없는 대학에 다닌다는 건 거대한 내적 전투의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그 말인즉슨, 내가 지나쳐야만 하는 역에서 내 친구들이 다니는—한때는 나도 갈 수 있을 줄 알았던—대학의 이름이 안내방송으로 나올 때마다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괜히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학교 잠바에 박혀 있는 로고를 보고 부러워하지 않는 일이었고, 저의 최선이었던 고등학교 생활에 자꾸만 ‘만약에’ 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동시에 저의 선택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고. 나 아직 살아있고, 나 아직 여기 있다고. 객관적인 모든 지표로 나 자신을 증명해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변명할 방법이 없지만, 그럼에도. 비록 수시로 여섯 곳과 정시로 두 곳의 학교에서 나를 떨궜을지라도 내가 갖추고 있는 실력이 증발해 버린 것은 아니라고.


처음으로 ‘휴강’이라는 것을 경험했던 날에 찾았던 2023년 봄의 석촌호수

2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저에게는 참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가벼운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수능이 끝나자마자 C컬을 넣었던 머리는 1학년 여름이 되면서 쭉 펴버렸고, 사실 그러다 첫 학기를 마치고서는 더위를 참지 못하고 확 잘라버려서 고등학생 같다는 엄마의 놀림을 받으며 단발머리로 살았고, 그러다 또 머리가 길어서 똥머리로 묶을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흘렀습니다. 부모님 따라 이사를 하고 나서는 이사한 집 근처에서 괜찮은 미용실을 찾았는데,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레이어드컷으로 예쁘게 머리를 잘라주신 원장님 덕분에 신나게 머리 풀고 잘 다녔습니다. 과거형인 이유는 중간고사 기간에 머리를 다시 묶고 다니는 일이 태반이었기 때문입니다. 머리 또 자르러 가야 하는데. 아무튼.


조금 더 무거운 이야기.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특목고나 자사고를 다니면 학교 이름의 영어 약자와 기수를 인스타 프로필 소개란에 적는 것이 일종의 문화였습니다. 저는 졸업하고도 한동안 제 소개란에 적어둔 고등학교 이름을 감히 지우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그게 뭐 대단한 거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의미가 컸습니다. 대학 이름은 적어두지 못한 채 고등학교 이름만 남겨뒀었으니까요. 그게 저의 열등감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제는 그 열등감의 족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소개란에서 고등학교 이름 약자를 지웠습니다.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지난겨울을 보내고 난 이후였을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의 첫 해 동안 평점 4.5를 유지하면서 살았고, 그것은 저에게 성취감과 동시에 엄청난 절망감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모든 과목에서 A+를 받는 일에는 노력이 없을 수야 없었지만, 여기서 내가 이만큼이라면 왜 더 ‘높은’ 대학에 가지 못했던 것인지가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절망감이 지난겨울의 저를 참 많이 괴롭혔습니다. 어떻게 보면 또 하나의 오만이었던 것임을, 다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내려놓을 것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첫 학기를 평점 4.5로 마무리하고 나니 저는 그게 저의 기본값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좋은 대학도 못 갔으면서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이것도 못하면 난 뭐냐고. 스스로를 향한 그런 채찍질이 결국 열등감에 불만 지피고 있었던 꼴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성적에 대한 부담도 강박도 벗어버리고 이것저것, 더 다양한 시도들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역시 숫자는 전부가 아니라고, 그 생각을 지켜내면서요.


신입생으로서 학생들이 공동으로 구매하는 학교 잠바 중에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골라 주문을 했지만, 받아본 직후 사이즈를 확인하기 위해 입어본 것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그 잠바를 입고 밖에 나간 적이 없습니다. 참 예쁜 잠바인데도. 아마 앞으로도 그 잠바를 꺼내 입지는 못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앞서 ‘괜찮지 않을 때’가 있다고 말씀드렸듯이, 저는 여전히 등굣길에 제가 약속이 그쪽에 있지 않다면 절대 내릴 일이 없는 정류장에 쓰여 있는 학교 이름 앞에서 조그맣고 가볍게 솜주먹을 쥐고 다니는 날들이 있거든요.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니까. 그렇지만 그건 이제 열등감에서 비롯되기보다는, 저의 의지에서 비롯되는 거라서요. 내가 그렇게 크게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내겠다는, 혼자만의 리그에 반드시 필요한 의지 같은 거 말이죠.


그러니까 저는, 스스로가 괜찮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때로는 너무 버거울 때가 있고, 내가 왜 이 환경, 이 상황에 놓여있는 것인지 괜히 속상할 때도 있지만, 그런 속상함의 늪에 잠겨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만약 제가 대학 신입생이었을 때의 저에게 한 마디 할 수만 있다면, 스스로를 조이는 그 압박감은 좀 내려놓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조금 더 많이 웃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오늘의 네가 웃어서 내일의 네가 더 강해질 거라고.





고등학생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겠냐는 질문을 가끔 받을 때가 있는데, 항상 저는 내신 1점대로 복구시킬 수 있다고 해도 그때로는 안 돌아간다고 대답하고는 합니다. 이미 그때 할 수 있는 한, 성적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자기 계발에서도 충분히 애썼다고. 돌아가더라도 그때처럼 버티면서 살 자신 없다고. 그렇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버티고 지냈던 그 3년이 있어서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시작은 조금 미약해 보일지 몰라도 저의 대학 생활 또한 미래의 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겠죠.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가 수험생이었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 했던 대학에서 수학하고 있지만, 동시에 제가 관심을 가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분야에 관심을 두고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요. 스쳐가는 흥미일지 머무를 애정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저는 예상 밖의 환경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대학에 와서 처음 들었던 교양 수업은 미학을 다루는 수업이었습니다. 미학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아가고 배우기는 처음이었는데, 철학과 역사, 미술 작품과 기법 등에 대한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수업 내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험 공부하는 것이 유일하게 재밌었던 과목이었습니다. 모든 전공생들이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제 전공이 영 재미가 없었거든요.


아는 것이 조금 더 많아지니 미술관을 가고 전시회를 보더라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조금 더 많아졌습니다. 배움의 희열이랄까요. 그게 너무 기뻐서 종강하고 나서는 교수님께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친구와 다녀온 전시회 후기를 쓴 블로그 링크를 첨부해서 메일을 보냈더랬습니다. 수업 때 배운 포인트들을 같이 녹여낸 후기였기 때문이었죠. 교수님한테서 받았던 따뜻한 답장이 마음에 오래 남아 이번 학기에는 그 교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전공 수업을 수강 중입니다.


덕분에 저는 미술 이론이나 미학에도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본전공인 영어는 살리되 복수전공을 재밌는 것으로 해볼까 고민 중인 것이죠. 전시회도 자주 보러 다닙니다. 주변에서 도장 깨기 하냐고 묻길래 나 그렇게까지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 않나, 하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도장 깨기가 맞는 것도 같습니다. 2년 동안 본 크고 작은 전시회가 추렸는데도 아래와 같으니 실제로는 더 많다는 뜻이죠.


마이아트뮤지엄, <루드비히 미술관 컬렉션: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소마 미술관, <다시 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



더현대서울,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전: 라울 뒤피>


마이아트뮤지엄, <일리야 밀스타인: 기억의 캐비닛>


뮤지엄 웨이브, <TEA_time>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그라운드시소 센트럴, <이경준 사진전: 원 스텝 어웨이>


마이아트뮤지엄,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인사센트럴뮤지엄, <아메리칸 팝아트 거장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베르나르 붸페-천재의 빛: 광대의 그림자>


그라운드 서울, <리얼 뱅크시>


전시회는 아니지만… 올해 다녀온 튀르키예-그리스-이탈리아 성지순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더현대 서울, <서양 미술 800년>



마이아트뮤지엄, <툴루즈-로트렉: 몽마르트의 별>


그라운드시소 서촌, <슈타이들 북 컬쳐 | 매직 온 페이퍼>




처음 입학했을 때는 사실 친구를 사귈 생각도 없었음을 이제 와서 고백합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의 저는 아무리 제가 진학을 선택했다고 해도 스스로의 상황에 대해서 꽤나 시니컬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하루에도 수없이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비난이 머릿속에서 뒤섞이고는 했기에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참 감사하게도 먼저 다가와준 동기들이 있었고, 그렇게 하나둘 알아가다 보니 아는 얼굴들이 점점 더 많아졌고, 조금씩 더 가까워졌고, 지금까지도 점심밥 혼자 먹을 일은 거의 없이 그런대로 아주 잘 지냅니다. 제 친구들이지만 참 열심히 사는 친구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배우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정말 많습니다.


대학 입시를 치르면서 한 번 꺾이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을 모르는 채로 어른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직도 ‘어른’에 해당되지 않는 것만 같다고 생각하고는 하지만, 이제 만으로도 이십 대가 되었으니 더는 도망할 곳이 없죠. 제가 만약 제 안에 숨어 있던 오만함과 열등감을 (둘 다 마음속에 공존할 수 있다는 게 모순적인 듯 보이기도 하지만) 깨닫지 못했더라면, 저는 아마도 이런 글을 쓸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평생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안에 도사리고 있었던 여러 가지의 감정들을 어렴풋하게나마 파악한 이상,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성공한’ 졸업생이라고 학교에 찾아가 후배들과 이야기할 수는 없어도, 설령 멘토링 같은 건 제가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세상에는 너무 다양한 삶의 모양이 존재하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고등학교 3년을 보내면서 배웠던 것이 너무 많았지만, 그곳도 우물은 우물이더라고.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후회 없는 오늘’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행복한 오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도 ’괜찮지 않은 날’에는 참 볼품없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열의를 가지고 듣고 싶은 수업이 있어도 난이도가 높다는 강의평이 수두룩하면 폐강되기 일쑤인 학교 환경이 너무 밉기도 하고, 대입 직후 제게 있었던 부정적인 사고 흐름에 다시 빠져 버리기도 하고,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내리기 직전에 지나치는 역 이름을 보고 솜주먹 쥘 힘도 없이 괜히 시무룩해지기도 합니다. 그런 날이 없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때가 너무 빨리 돌아오지 않도록, 오거든 어서 보내줄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요즘 제가 계속 연습하고 있는 감정의 수용과 해소입니다. 때로는 기분 전환을 위해서 친구들을 만나는 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일도 필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또 괜찮아집니다. 내 마음이 괜찮다고 해서 내가 나를 포기한 게 아니니까.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도약하고 있으니까.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모두가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어떤 모습일지라도 괜찮다고, 최선을 다했다면 충분하다고, 뻔한 말들을 덧붙여 봅니다. 열심을 다하고 열정을 쏟은 뒤에는, 그저 찬란하게 행복만 할 수 있기를.



2024.10.26.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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