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잃지 않은 이야기들

잊지 못할 순간들 앞에서

by 유예린

2025.07.10.

여행을 하면서 더 확실하게 깨닫고 있다. 나는 “미술을 좀 좋아하는 일반인"일 뿐이고, 사실 예술 작품 자체보다도 그 이면의 이야기나 역사, 그러니까 그것만의 서사에 마음이 훨씬 동하는 사람이라고. 미술은 좋아하지만 서사는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그냥 이게 나라고. 아름다운 것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내게 중요한 건 얼만큼 독특하고 특별한 그것만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는지에 있다고.


그 도시에서는 페르메이르(또는 베르메르)의 그림을 보았다.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그의 작품은 딱 한 점 걸려 있는 미술관이었다. 그 다음날, “어제는 정말 사랑이고 다정이고 내 몸부터가 부디 무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위가 너무 아픈 날이었다”라고 적어두었을 만큼 아팠는데도 포기가 되지 않아서 그 그림을 찾아 거대한 미술관 내부를 꿋꿋하게 돌아다녔다.


빈 미술사 박물관 Kunsthistorisches Museum


그곳에 페르메이르의 그림이 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동한 건 그가 세상에 남긴 그림이 겨우 30여 점이라는 것이나, 그 개수가 적을지언정 아름답다는 것 말고도 무언가가 더 있었기 때문이다. 페르메이르의 대표작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라는 사실마저도 그의 그림을 찾아가는 일에 설레어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다만 어느 겨울에 읽었던 소설 속 문장 몇몇이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 문장들이 페르메이르라는 화가에 대한 특별한 기억의 밑바탕이 되었다.


페르메이르 그림들은 낯선 모습으로 변했어. 텅 빈 외관, 아니 공허해진 외관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을까. 그걸 찾아내고 늘 감탄하던 당신의 눈길이 이제 더는 닿지 않아서 그 그림들은 생기를 잃을 테니까.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던 스위스 작가 페터 비에리의 장편소설 『언어의 무게』 속 문장들이었다. 아내가 사랑했던 페르메이르 그림들이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로는 생기를 잃어버렸다는 말. 예술 작품은 보는 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비로소 빛난다는 믿음이 함축되어 있는 이야기. 어쩌면 화가의 대표작이나 그의 짧았던 삶에 대한 이야기보다도 내 마음을 동요시켰던 것은 직접 골라서 읽기 시작한 책에서 발견한 화가의 이름, 그리고 그 이름 하나에 얽혀 있었던 주인공의 애절한 마음 같은 것이었다. 주인공의 기억을 같이 되짚어가며 아파하고 또 성장했던 기억이 내게 페르메이르의 그림에 대한 애정을 심어주었던 셈이다.


몇 마디 덧붙이자면, 궁금했던 것 같다. 보는 이의 시선으로 인해 생기가 도는 그림이라니. 물론 모든 예술 작품이 바라봐주는 상대가 있음으로 인하여 더 큰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겠지만, 소설 속 주인공이 그렇게 묘사한 그림을 그린 화가의 작품을 실제로 보면 어떤 기분일지.


그런 여러 기억과 생각이 얽혀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을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 나에게 페르메이르는 어디까지나 이국 땅의 어느 화가, 유명한 그림 몇 점을 남겼던 사람, 내가 좋아하는 소설에 잠깐 언급되었던 예술가 정도였다. 하지만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직접 보고 나서는 비로소 그의 그림에 대한 나의 직접적인 경험이 생겼다. 그렇게 그의 작품 앞에 다가섰다. 우리말로는 <회화의 기술>이라고 번역되는 그림 앞에 배치된 소파에 앉아 수첩을 펼쳤다. 그러고는 몇몇의 문장들을 적었다.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소소한 추억으로 남게 될 이름들이 있다. 생물학과 화학을 공부한다고 했던 R. 피렌체의 어느 식당에서 만났던 종업원 R의 일상은 미국의 어느 회사 인턴십과 식당 아르바이트, 학업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너무 분주한 나머지 여자친구를 사귈 시간조차 없다던 유쾌한 그의 이야기가 그날 저녁 식사 자체보다도 더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원하던 것처럼 식당에서 승진은 했을지 모르겠다.


빈에서는 H사 상점 밖 벤치에 앉아 있다가 슬로바키아계 학생 M을 만났다. 프라하에 가서 공대 쪽 공부를 이어갈 예정이라던 그와 벤치에 앉아서 조잘대던 시간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그는 내 동전 지갑을 보더니 자신의 휴대폰 배경화면을 보여주었다. 지갑에 그려진 캐릭터가 그의 휴대폰 화면에도 있었다. 신기한 우연. 다음 달에 한국을 다녀갈 예정이라며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드러내던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내 전공에 대해, 그리고 수업에서 다루었던 책에 대해 소소한 이야기를 했다. 그 짧지만 즐거웠던 시간은 이방인이었던 나에게, 나의 나라에서 이방인이 될 소년이 준 작은 선물이었다.


인터라켄 Interlaken

인터라켄으로 향하던 기차에서는 이스라엘에서 온 아저씨를 만나기도 했고, 인터라켄을 둘러보던 날에는 점심을 먹었던 식당에서 만난 종업원을 퇴근하는 길에 다시 마주치기도 했다. (브리엔츠 호수 옆을 거닐면서 퇴근할 수 있다니!) 그녀가 찍어준 사진은 아직도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으로 남아 있다. 우연은 겹치고 겹쳐서 그렇게 다정한 기억이 된다.




영화를 봤다. 2004년에 나온 영화였는데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보는 영화였다. <파이널 컷>은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다. SF 느낌이 난다. 개봉했을 당시에는 그렇게 인기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감독의 아이디어가 너무 앞서나갔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기억이란 얼만큼 정확하며, 우리는 그 기억의 어느 지점까지 소유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를 본 다음날에는 이렇게 질문했다.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삶의 일부분을 공유하는 일과 같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 어떤 타인의 간섭 없이 오롯이 나의 것으로 주장할 수 있는 기억도 있을 테지만, 정말 나만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기억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취미가 생겼다. 무게가 별로 무겁지 않아서 종종 외출할 때 들고나간다. 파리에서 사 온 셰익스피어 서점 파우치 안에 좋아하는 물건들을 넣어놓고 다닌다. 여행하면서 들고 다녔던 것과 쌍둥이처럼 닮은 수첩, 최소한의 필기도구,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선물 받은 북홀더링과 필름 카메라까지.


사진을 찍는 일을 굳이 취미 삼기 시작한 것은 우선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현상해 본 사진들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말없이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다른 이유는, 글을 쓸 때면 완성도 있는 글을 발행하고 싶어서 수정을 거듭하는 반면에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는 필름을 감고 셔터를 한 번 누름으로써 모든 작업이 끝난다는 것. 무엇을 표현하든 무엇을 담든,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글을 쓸 때만큼 넘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게 좋았다. 아직은 사진 초보라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잘 찍든 못 찍든 그저 담고 싶은 순간을 렌즈에 담는 시간이 더 즐겁다. 그 결과물을 곧바로 보는 대신 궁금해하며 기대하는 시간도.


그러니까, 요즘은 기록하는 일에 시간을 많이 쏟고 있다. 글이 되었든 사진이 되었든,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남겨두는 것이다. 흩어져 없어지는, 그래서 그냥 지나가는 순간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좋았던 것들만 남겨두고 싶다고, 언젠가 그렇게 썼던 기억이 난다. 마음이 어려웠던 날들로부터 배운 것들이 있다면 그것만 남겨두고, 힘들었던 기억은 이제 보내주고 싶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붙들고 살고 싶은 기억은 많이 웃었던 기억, 따뜻하고 다정한 기억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록은 어찌 보면 나의 기억을 내가 소유하고자 하는 일종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철저히 개인적인 목적으로 시작된 행위라고 할지라도, 결과적으로는 나 하나만에 의한 것도 나 하나만을 위한 것도 아닌 것 같다. 성큼 다가온 가을이 종종걸음으로 떠나기 전에 전하고 싶었다. 읽어주는 당신의 시선이 있어서 나의 이야기 또한 빛을 잃지 않은 채 여기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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