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8.
경기도 양평
산문 같은 시를 쓰고 시 같은 산문을 쓰고 싶어졌다. 삶을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울 수는 없어도 좋은 것들을 가급적 많이 담아두고 싶었다.
편지 쓰듯 글을 쓰고 싶었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 살고 싶었고, 여행하듯 살고도 싶었다. 경쟁과 생존의 법칙 같은 것들은 도무지 인정이 되지 않았다. 다정과 낭만과 상호적인 신뢰 같은 것들을 지키고 싶었다. 삶이 어째서 그리 푸석해야 하냐면서. 나는 어쩌면 무용한 것들을 좇다가 찬란하게 떠나고 싶었던 이상주의자. 활자 안에서만큼은 그 말도 안 되는 소망이 운신할 폭이 조금은 더 넓어지는 것 같았다. 조금이 아니었다. 무한정 넓게만 느껴졌으니까.
시험이 끝나면 시집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반드시 그래야겠다고. 품은 사랑이 너무 많은 사람들의 기쁘고 슬프고, 죄스럽지만 또 깨끗한 이야기를 담은 글이라면.
이 산책의 끝은 모조리 계획되어 있다
가벼운 어둠에도 땅을 더듬으며 간다
나란히
유원지를 한 바퀴 돌고 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지
시작으로 되돌아오면 그때는 잊을 시간
헤어지기 위해서 하는 인사는 이제 관두고 싶다
나의 유일한 비밀은 비밀 없음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는 것을 안다
권누리 시인의『오늘부터 영원히 생일』이라는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이다. 이 시집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처음 접했고, 그 다음엔 문학동네 뉴스레터를 통해 다시 만났다. 언젠가 스쳐 지나갔던 다른 시에서 한 번 실수는 실수여도 두 번부터는 멋이라고(문보영, '걔도 마음이 있을 텐데' 中) 했던 말을 생각했다. 한 번은 우연이어도 두 번부터는 느껴지는 감정이 다르다. 시집을 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렇게 중간고사를 마친 다음날에는 시집을 핑계 삼아 광화문에 갔다. 넓은 서점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이 싫으면서도 좋았다. 복잡한 것은 싫지만 책을 찾아온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그만큼 동지가 많다는 기분이 드는 일이라.
유원지라는 말을 몰라 검색해 보니 놀이동산의 한자 버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걸 알게 된 뒤로는 이 '시인의 말'을 볼 때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1995) 생각이 난다. 빈에 방문했을 때 미처 방문하지 못했던 프라터 공원 생각을 하게 된다. 예쁜 장면이긴 해도 사실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놀이공원 씬이 아니지만. 좋아하는 영화다. 그렇게 좋아하는 줄은 몰랐는데 그 영화를 본 이후에 빈을 다녀오고 나니 더 좋아진 것 같았다. 화면으로만 바라보았던 풍경들을 두 눈으로 직접 바라보는 것은 남다른 경험이었으니까.
어쩐지 그 영화를 닮은 문장들이었다. 꼭 한 편의 시 같았던 시인의 말을 더 끌어안고 싶었던 이유는 좋아하는 영화를 닮아 있다는 데 있었던 것 같다. '시작으로 되돌아오면 그때는 잊을 시간'이라는 이야기도 그러한 생각에 한몫했다. 단 하루라는 시간 동안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그러하듯이. 그 사람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하지만 반대로 불가능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아무리 많이 들여도 나라는 사람 하나에 대해서 다 아는 것조차 어려운 법이니까, 나 아닌 타인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라고. 어차피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라면, 하루 동안 알게 된 모습만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도 못할 게 무엇이겠는가.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는 것을 안다'고. 그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남아 오래 곱씹었다. 시도 아니고 시인이 남긴 말을 보고 꿈을 꾼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처음이었다. 왜인지 깨어난다는 말은 깨진다는 말과 비슷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꿈, 환상, 이상 같은 것들이 허물어지는. 주기적으로 깨어짐을 경험하는 것 같다고 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후폭풍으로 밀려올 고통이 두려웠다면 지금은 강인함으로 뿌리내리길 바라고 있다. 나는 내가 견고한 사람이기를 바란다. 감정, 주어진 상황, 가지고 있는 가능성 같은 것들을 건강하게 다룰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2025.07.19.
반 고흐 미술관 앞에서.
오늘은 오래도록 고대하던 만남들이 있는 날이다. 고흐 그림들과 안네 프랑크의 집.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를 읽고 나서는 나도 언젠가 꼭 암스테르담에 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럼 나는 자그마치 7년 전의 내가 막연하게 꿈꾸었던 도시에 와있는 셈이다.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화가의 그림과, 100년 가량 전 소용돌이치는 고통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었던 한 소녀의 자취를 따라서.
가장 좋았던 여행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종종 네덜란드 이야기를 한다. 다시 가고 싶은 곳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빼놓지 않는 곳이다. 오스트리아를 방문했을 때 좋아하던 영화에서 화면으로 보던 곳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기쁨이 되었듯이, 네덜란드를 방문한 것에도 나름 확실한 동기와 그에 따른 기쁨이 있었다.
가끔씩 취미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면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고는 한다. 책을 보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전시회에 가서 그림이나 사진을 보는 게 좋다고. 보았던 모든 것들을 기록으로 남겼다면 진작에 브런치북 몇 권은 더 냈을지도 모른다. 전에는 마냥 보기만 하는 것이 좋았는데, 이제는 짧게라도 기록을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워낙 많다 보니 이제는 쉽게 휘발되는 작품도 생긴다. 짧게나마 글을 남겨두면 언젠가는 찾게 될 일이 있다는 것은 오래도록 습관처럼 글을 써오면서 배우게 된 지점 중 하나다.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더 알고 싶고, 더 들여다보고 싶다고.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부지런히 보았다. 책을 읽었고, 영화와 드라마를 보았다. 사진전을 보고 회화 작품을 보러 다녔다. 할 수 있는 간접 경험들은 부지런히 하는 중이다. 원래도 좋아한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더 보고 더 알고 그래서 더 배우고 싶었다. 여전히.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그 답은 여전히 아리송한데 확실한 건 생각의 폭을 넓혀가고 싶다는 것이다. 아직도.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