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한 사람도 강한 사랑을 꿈꿀 수 있다면
2025.07.06.
베네치아
어떤 날에는 새로운 것들, 낯선 것들이 너무 두려워 기도밖에는 기댈 곳이 없다고 느껴질 만큼 내가 너무 연약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스스로의 연약함을 익숙한 장소보다 그렇지 못한 낯선 땅에서 훨씬 더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나는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고.
살면서 정말 바닥까지 끌어당겨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안다. 저항할 수 없고 현실은 얼음장처럼 차가운데, 그런 얼음길이라도 딛고 싶어 발을 떼면서도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 철저히 혼자가 되는 순간. 외줄을 타듯 겨우 버텨가며 나아간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문드러지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서 절망감에 빠지고는 한다. 절망이 너무 크면 자학이 된다. 그 누구보다도 내가 나를 미워하게 된다.
그 바닥을 본 적이 있다. 괜찮지 않으면 내 자존심이 무너질 것을 알아서 괜찮은 척했던 때.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해내야만 할 것 같았던 불안과 남아 있는 자존심의 마지막 한 가닥을 지켜내고 싶었던 욕심.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보냈던 계절들은 버거웠다. 자그마치 2년을 그렇게 살았다. 지금은 그 모든 시간이 나에게 필요했음을 알지만, 고통 속에 있을 때는 몰랐다. 당시 나에게는 나라는 존재가 더 컸고, 내 서사가 더 컸고, 무엇보다도 억울함이 컸다.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음에도 그에 비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와 타인의 시선 같은 것들이 버겁다고 생각했다. 비교하고, 미워하고, 원망도 했었다.
내가 지금 바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스스로의 바닥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편협했고, 때로는 조금 추했으며, 어떻게든 스스로를 증명해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 속에서 버둥댔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열리는 길을 따라 걷는 것밖에는 없었다. 이제는 어렴풋하게나마 알겠다. 때로는 오늘의 고행길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결국 하루하루의 성실함을 쌓아 올리다 보면 결국 때가 온다는 것과, 내가 고행길이라고 판단한 길이 때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난 여름의 여행은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깨닫지 않을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 느꼈던 두려움과 인지한 연약함이 얼마나 좁은 세계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내가 또다시 연약해질 순간들이 얼마나 많을지 깨닫게 되는 그런. 내가 연약하다는 사실은 나만을 위해 삶을 살아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다정함의 힘을 다시 신뢰해 보기로 결심한 이유는 나의 연약함을 깨닫는 과정에 있었다. 나에게 내가 아무리 큰 존재였다고 할지라도 낯선 세상에 발을 딛고 선 나는 여전히 너무 작았다. 소중했던 관계에서 혼자서만 애쓰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 또한 나의 연약함이었다. 내가 애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최선"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것임을 몰랐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정리하기 시작하니 마음을 쓸 결심을 회복할 수 있었다.
2025.11.20.
서울
어째서 늘 구하는 것들이 끊이지 않는 것인지. 어제는 기도하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욕심이 끝도 없나 보다고. 달라고 구하는 것들의 끊임없는 변주로 이루어진 기도. 그런 기도라도 하지 않을 수 없음을 나의 연약함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상처받을 용기도, 뒤이어 상처받지 않기를 선택할 용기도 주시길 구하는 나를 보면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세상이 넓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일 거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아직도 그 믿음은 유효하다. 바라보는 지평을 넓히고 싶다는 기도는 결국 사랑하고 싶다는 기도이기도 했다. 여름에는 그 마음을 서서히 회복할 수 있었다. 다만 겨울에 접어들면서 분명해지는 것은 타인을 사랑하는 일이 중요한 만큼이나 본인의 마음을 지킬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균형을 잡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게는 여전히 관계를 유지하면서 상처받을 각오를 다지는 일보다, 관계를 끊어내면서 상처받지 않기로 결심하는 일이 더 어렵다. 뒤따를 수 있는 고통을 감수할 결심을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사랑의 모양을 갖추는 것만 같아서 사랑 하나를 위해 많은 것들을 걸기 일쑤였다. 마음이 돌아오지 않을 때는 그게 꼭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나의 책임 혹은 내 부족함에서 기인한 결과인 것 같아서 괴로워하고는 했다. 그 또한 나의 연약함이었다.
이 겨울에는 그 관성을 거스르기 위해 힘쓰고 있다. 받지 못한 마음으로 인해 억울해하지 않고, 받고 있는 마음으로 인해 감사할 줄 알며, 그 끝에는 마음을 쓴다고 최선을 다했던 스스로를 믿어주기 위해서. 그래서 구하는 기도를 하게 된다.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행위가 그 자체로 순전한 기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크고 작은 위험 요소들을 감수하는 사랑에 대해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통을 감수하는 법을 잊은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마음 같은 것들에 대해. 내가 가진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도 붙들 가치가 있을 마음에 대해. 나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