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을 지키는 연습

by 유예린

2025.07.07.

그렇지만 침묵이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았다. 입만 다문다고 침묵인 건 아니라고. 들을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특히 그게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라면 더더욱. 나는 알맹이 있는 침묵을 선택하고 싶다. 회피성 침묵이 아니라, 대책 없이 무책임한 과묵함이 아니라, 들을 귀가 준비된 조용한 마음가짐 같은 것.


시집을 좋아하는 편이다. 원래도 모르지는 않았는데, 파리에서 유명하다는 서점에 들어가 시집 코너에서 계속 서성이는 스스로를 보면서 더 확실하게 깨달았다. 릴케의 시집을 살까 말까, 시인의 편지를 묶은 책을 살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몇 권의 다른 시집을 더 보고 나서야 서점 문밖을 나섰던 기억이 있다.


시집에 수록된 여러 편의 시도 좋지만, 시인의 말이나 서시를 읽는 데에도 취미가 있다. 어떤 날에는 시집 코너로 가서 그렇게 앞부분만 골라 읽는다. 그건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후에도 달라지지 않은 지점 중 하나다. 어떤 마음이었을지가 궁금한 것 같다. 이 모든 단어들을 조합하면서 써 내려간 시들을 어떤 마음으로 모아두었을지가.


늦여름으로 향해가던 어느 화요일에는 서울에 있는 서점에 가서 좋아하던 시인의 못 보던 시집을 들춰보다가, 시인의 말이 마음에 콕 박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나희덕 시인의 『시와 물질』이라는 시집에서 시인은 이렇게 적었다.


(...)
온몸이 귀로 이루어진 존재가 되고 싶었다.
경청의 무릎으로 다가가
낯선 타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지친 손과 발을 가만히 씻기고 싶었다.

타고난 자질이 아니라 길러진 열정으로서의 연민.
그 힘에 기대어 또 얼마간을 살고 썼다.


다정한 소망이라고 생각했다. 시인의 문장들을 읽은 그 순간, 그런 마음의 결을 나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고 감히 말해본다.


경청하려는 자세는 다정함이 표현되는 하나의 방법. 나도 그 다정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난 여름에서야 비로소 이해했다. 길러지는 것도 길러지는 것이지만, 애당초 그 다정의 근원이 내게 있지 않았다. 나는 무슨 수를 써도 온기 어린 마음의 시초가 될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받은 사랑이 있기에 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마음은 주고받는 순환의 과정이고, 생각해 보면 아무리 많이 줬다고 하더라도 내가 언제나 주는 입장에만 서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팠던 지점들과 함께, 놓쳤던 지점들도 생각했다. 낯선 땅에서의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유달리 야경이 아름다웠던 도시들에서 수없이 돌이켰다. 로마의 저녁, 피렌체의 밤, 빈으로 향하던 어느 오후의 기차에서도. 미운 마음이 있었지만 그리운 마음이 더 컸고, 서운한 마음이 있었지만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 궁극에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서로를 보듬어준다는 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사랑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믿음.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나서야 마음을 다시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타인을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가 나오기 시작했고,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적은 문장들을 전송했다. 상대방이 그 고민의 과정을 다 이해해 주길 바라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해야 할 것 같았다. 재지도 따지지도 않고. 곁에 존재해 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했다. 나의 고통에만 갇혀 있었던 편협한 시선을 넓히고 싶었다.


빈 Vienna

2025.07.08.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부터 다정을 다시 지켜나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전해질 수만 있다면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나에게서부터 비롯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는 혼자 힘으로 다정을 빚어낼 위인이 못 되지만, 너와 내가 믿는 그분의 사랑의 너비와 높이와 깊이의 위대성은 믿는다고.




보주 광장 Place de Vosges

2025.07.17.

보주 광장

그러니까 나는 이제 안다.

노트 하나와 펜 하나만 있으면 나는 무엇이든 써 내려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과, 내가 원한다면 충분히 그런 여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모양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고, 정답은 없으며, 지향점 하나 가지는 것으로 족한 일이라는 것도.

내 안에는 여전히 사랑이 남아 있고, 그건 곧 내가 받아온 사랑의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는 사실을.


혼자 거리를 거닐게 되는 시간에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날 파리에서도 그랬다. 빅토르 위고가 살아생전 살았던 집을 둘러보고 내려온 뒤에는 눈앞에 보이는 공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벤치 하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주 보고 있었던 벤치에는 어떤 금발의 여성이 책을 읽으며 앉아 있다가, 그녀가 떠나간 뒤에는 이름 모를 아저씨가 내게 등을 보이고 앉았다. 꼭 소주병 색깔 같은 유리병을 옆에 두고 앉아 있었는데, 맥주였는지 다른 음료수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주병 색깔 같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부터는 어쩐지 그 아저씨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참고로 본인은 살면서 아직까지 소주를 마셔본 경험이 없다.)


그렇게 혼자 있을 때면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행인1로 그곳에 존재하면서, 내 안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문장들을 썼다. 받은 것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오래도록 사랑에 대해 사유하는 일에 머물렀다. 무려 그런 여름이었는데, 그 여름을 보내기 전의 나와 이후의 내가 같은 사람일 수 없었다.




경청의 기본은 내 입을 좀 닫아두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고, 며칠 전에는 그렇게 써두었다. 다소 강하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진심이다. 소란에 지칠 때가 부단히도 많았다. 그 소란함이 나에게서 비롯되든, 바깥의 어딘가에서 비롯되든 상관없이. 침묵이 필요해서 최근에는 사진 찍는 일을 취미 삼아 보기로 했다. 별다른 말 없이도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시도였던 것 같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필름 카메라를 종종 들고 다닌다. 잠잠한 침묵과 언어화된 표현의 균형을 잘 맞추고 싶었다.


S 언니는 내게 사유의 장으로 쉽게 이끄는 힘이 있다고 했다. 글을 맛있게 쓴다고. 오래 남을 말들이었다. 여운이 오래가는 글을 쓰고 싶었다. 잔향이 오래 남아서, 마음이 어려운 순간마다 떠올릴 수 있는 글을. 그렇게 남은 향이 있다면, 끝내는 누군가를 살게 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게끔 도울 수 있었으면 했다. 그러니 살리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은 너무 무겁다고 하더라도, 내가 신중하게 쌓아 올린 언어가 당신을 돕기를 바랐다고는 말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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