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어내는 하루에 대해
2025.09.18.
서울
가지고 있는 모든 재능이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도, 말도, 영어도, 상상력이나 판단력도. 비범한 사람이고 싶었지만 평범에서 맴도는 사람으로 자란 것만 같았다. 그 모든 애매함이 나를 더 우매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아서 속이 상했다. (…) 내 믿음도 다정도 용기도. 어느 정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들춰보니 곳곳이 구멍인 것만 같았다. 끝맺는 방식이 반복되는 문장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자꾸 반복되는 지점이 보이는 걸 보니 문장 구사력도 그닥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비롯된 고민이었을 것이다. L교수님은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이와 관련된 질문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보라는 과제를 주셨다. 단, 답은 하지 말 것. 그저 적을 것. 질문을 쭉 적어보고 나서는 그 수많은 질문을 던지기 전보다 여러 개의 물음표를 찍어낸 뒤의 내가 ‘잘 산다는 것‘에 대해 훨씬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두 주 전에 읽었던 정세랑 작가님의 『이만큼 가까이』에서 보았던 재밌는 표현이 있었다. 염소 같은 기분. ‘다들 착한 양처럼 순하고 순종적이고 사랑스러운데’, 혼자서 ‘염소처럼 고집을 부리고 이것저것 결정하려’ 든다는 주연의 이야기를 그냥 넘기지 못하고 수첩에 적어두었다. 나도, 나만 유난스러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을 때였다. 그 유난스러움이 내면의 소란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채 끝나버릴까 봐 불안했다. 이쯤 되면 무언가 정해진 방향성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묘한 부담감이 생겼다. 그런데도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내가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그러니까 ’난 뭐 하는 인간인가‘ 같은 존재론적인 고민이나 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어느새 고학번이 되어 있을 뿐인데, 그날은 그렇게 적었다. 두 주 정도 흐르고 나니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로 방향을 조금 바꾸었다는 것 말고는 딱히 달라지지 않았다.
갑자기 어떤 생각에 꽂히면 오래 머물게 될 때가 있다. 결국 내렸던 결론이라고 한다면 애매한 재능을 잘 살리려는 노력을 일단 쏟아부어 보자는 것이었지만, 꽤 고민스러웠던 주제였던 것만은 틀림없다. 재능. 실력. 그러니까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다가올 미래 같은 것.
그러다 여름의 오스트리아 생각이 났다.
2025.07.11.
빈, H사 앞 벤치에서
긴팔 니트를 하나 샀는데 “가방 줄까?” 하는 말을 독일어로 못 알아들어서 직원 아저씨(?)한테 조금 미안했다. 아니 사실은 내가 너무 민망했다. 뭐랄까. 발가벗겨진 기분. 어려운 말도 아니었을 텐데. 영어로 하면 한 번에 알아들으면서. 언어를 하나 더 배운다면 독일어를 배울까.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할 수 있는 수준을 갖추어서 오스트리아에 다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독일어로 아는 거라고는 아침 인사말과 ‘감사합니다’ 정도밖에 없으니 이곳에서는 상대가 영어를 할 줄 알기를 바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만 같다. 그 무력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영 별로다. 모든 걸 잘할 수는 없지만, 잘하는 것들을 늘리고 싶다.
사실 외국어를 하나 더 배운다면 프랑스어를 하고 싶다는 쪽으로 마음이 조금 더 기울기는 했다. 프랑스를 방문한 직후에 그런 생각이 조금 더 들었으니 프랑스가 아닌 독일을 방문했다면 독일어를 배우기로 마음을 굳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둘 다 한다면 제일 좋기는 하겠지만 본인의 외국어 공부 능력을 그렇게 신뢰하는 편은 아니라서 허황된 목표는 잡지 않을 생각이다. 하나라도 잘하자.
솔직히 전공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 언어도 아니고, 당장 외국어를 더 배워둔다고 해서 크게 쓸모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굳이 이런저런 생각을 머릿속으로 굴려보는 이유는 대입을 준비하던 고등학생 때 하던 생각들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그때는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배워보고 싶었다. 좋아할 수 있는 분야의 범주 안에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대학 생활에 대한 특별한 로망 같은 건 별로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하나는 있었던 것 같다. 자유롭게 공부하는 것. 더는 지긋지긋한 석차와 백분위와 등급 같은 숫자에 구애받지 않고 하는 공부. 그때는 정말 간절했다. 벗어나는 것, 보다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학문의 장에 도달하는 것만큼 바라던 일은 없었다.
그 간절함이 다시 필요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닥치는 대로 배워보려던 그 열정이. 학점도 수업도 중요하지만 지금처럼 자유로울 수 있는 시기가 많지 않을 테니까. 수업 안에서, 그리고 수업 밖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여름에 다녀온 여행은 수업 밖에서의 경험 중 가장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의 하나였다고.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시기이기에 가능했던 여행이었다.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내가 몰랐던 세계에 대해 배워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여행이었고. 일상에서는 자주 잊게 되는 사실이지만 말이다.
고민의 방향을 조금씩만 틀어보면 결국 감사하는 마음으로 귀결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분명히 어제까지는 주어진 오늘과 다가올 내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는데, 오늘은 그렇게 고민할 자유가 주어진 시기라는 사실이 선물처럼 다가온다. 고민이 된다면, 그냥 고민하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민만 하는 것은 내키지 않지만, 모든 선택은 결국 길든 짧든 고민하면서 내리게 되는 법이니까. 선택 하나를 내리는 그 과정도 소중하게 대해주기로 했다.
2025.07.11.
빈, 숙소에서
내게 부족한 부분도 여럿 보이지만 그걸 보완해 가려는 노력을 지속함으로써 빚어내는 게 삶인가 보다. 나는 내 힘으로 그걸 완성할 수 없고, 그분의 크신 계획 안에서—또 그 속에서 받게 되는 크고 작은 도움을 통해—차근차근 해내는 거라고. 그 과정에 있다는 게 감사한 것 같다. 나에게는 아직 시행착오를 겪어도 되는 오늘이 있고, 그걸 바탕으로 조금 더 단단해질 내일이 있다는 것. 아직 처음일 일들이 많은 또 다른 하루를 기대해 볼 희망이 있다는 것이.
자주 되새기는 문장들이 있다. 뻔뻔하게도 내 머릿속에서 나온 문장들을 종종 되새기기도 한다. 기준은 딱히 없지만, 보통은 되게 마음에 들어야 한다. 빈에서 썼던 문장들이 꼭 그랬다. 나에게는 아직 시행착오를 겪어도 되는 오늘이 있고, 그걸 바탕으로 조금 더 단단해질 내일이 있다. 처음일 일들이 아직 너무 많고, 그런 새로움을 맞닥뜨릴 수 있는 또 다른 하루가 다가오고 있다. 지금도 그렇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일깨워주는 것은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잊을 때가 올 것이다. 사람이란 늘 그러니까. 그럴 때마다 기억을 더듬어 이 문장들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갈무리해 본다. 처음일 수 있는 영역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다가올 내일을 기대해 볼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고. 애매한 재능 같은 것도 전부 하나의 과정에 불과할 것이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가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빚어내는 것이 삶이라면, 나는 아직 삶을 빚어내는 중인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