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여름을 기억하며
2025년 06월 27일
로마행 비행기 안.
"나는 잃어버린 마음들을 찾고 있다. 정확히는, 마음 쓰는 행위가 무의미하지 않다고 여겼던, 확신에 가득 찼던 사랑을. 몇 주 전 호로록 읽어버린 어느 시인의 에세이에서 발견한 '자기 구원' 이상의 무언가를 믿었던 때의 열정을. 나는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없음을 안다.
그래서 나는 믿어야 한다. 반드시 사랑이 승리하고, 다정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여름이 지나간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을 보내준다는 마음으로, SNS에 업로드할 사진을 고르다가 포기했다. 귀찮아진 것도 사실이다. 다만 왜 다른 모든 계절은 지나가게 두면서 나는 유독 여름에 마음을 두는지, 여름만은 꼭 보내주는 행위를 거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했다. 덥고 습해서 환장할 것 같은 날씨에도 나는 왜 여름을 못 잃어서 이러나.
여름의 의미를 생각할 때면 수많은 단어들을 떠올리고는 했다. 두 해 전 여름에도 그 계절의 의미에 관해 한참을 고민했다. 꿈, 열정, 용기, 새 출발, 희망, 바다, 돌아갈 곳. 그때는 그렇게 적어두었다. 결국 결론은 하나였던 것 같다. 여름은 뭐든 시작할 수 있는 계절이라는 것. 그건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탈리아를 다시 찾았을 때 내게 은연중에 희망이 되었을 확신이기도 했다.
유난히 살얼음판 같았던 겨울을 보낸 뒤였다. 중심이 흔들렸고, 다가올 내일이 불안했다. 불안한 정도가 아니라 눈앞이 캄캄했다. 사랑해 볼 결심을 하자마자 무너졌던 것들이 있었고,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내 뜻만 고집할 수 없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알아도, 꼭 그렇게 욕심이 마음을 지배할 때가 있다. 원하는 마음이 커지면서 가질 수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비례하여 자라날 때, 나는 기댈 곳이 필요했다. 절실했던 그 마음이 너무 커져서 도리어 상처가 되었다. 나였다면 조금 덜 무심하고 조금 더 들여다보았을 것이라는 오만에서 비롯된 상흔이었다. 겨울이 오기 전부터 피어오르던 다정에 대한 회의감은 겨울에 이르자 절정에 치닫게 되었다. 기어코 마음이 산산조각 났다. 공동체는 의미를 잃었고, 우정은 별 것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겨울은 그렇게 오래도록 추웠다.
원하던 바를 이루고 새로 맞이한 봄은 설레는 만큼 긴장되었고, 즐거운 만큼 외로웠다. 타인에게 쏟던 마음의 방향을 돌려 나에게 집중했다. 관계보다는 내 마음을 우선순위에 두었고, 오는 연락이 없으면 애써 연락하려 하지 않았다. 해야 하는 일들을 했다. 가령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 바라왔던 환경에서 하고 싶었던 공부에 열중하는 일. 그만큼의 시간을 나 자신과 나의 오늘에 투자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그만큼 시간을 들였음에도 여전히 나는 나를 잘 모르니까.
그렇게 로마행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너무 지쳐 있었다. 스스로의 보호자로 떠나는 첫 해외여행에 기대감만큼이나 두려운 것들도 많았고, 나 자신에 집중하면서도 어딘가 허전한 마음을 품은 채로 봄의 전부와 여름의 초입을 지나온 뒤였으니까. 1년도 채 안 되어 다시 찾는 이탈리아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질지, 어떤 마음들을 마주하게 될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회복되어야 하는 상태인 것인지 전환이 필요했던 것인지조차도 불분명했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펼친 새 노트에 글을 쓰다가 깨달았던 것은 내가 찾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잃어버린 마음, 타인에게 사랑을 주고자 하는 의지, 그것으로부터 오는 회의감 때문에 결국 잃어버렸던 나. 잃어버린 것이 있고 그것을 내가 찾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부터는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낯선 나라에서 만나는 친절은 너무 반가웠다. 그저 고맙기만 했다. 로마에 도착해서 만난 친절한 (그리고 정직한!) 택시 기사님도, 동양인이라고는 발견하기 어려웠던 예쁜 골목의 젤라또 가게 직원과 살면서 먹었던 까르보나라 파스타 중에서 가장 짰지만 너무 친절한 웨이터들 때문에 미워할 수 없었던 식당도 모조리 좋은 기억으로만 남았다. 그 크고 작은 친절을 경험한 기억과 파란 하늘이 담긴 사진 몇 장만으로도 이탈리아에서의 여름은 미화된다. 따가울 만큼 뜨거웠던 햇볕 따위는 잊히고, 예뻤던 도시의 모습과 더 빛났던 사람들의 미소만 남는다. 올여름 이탈리아는 내게 유독 친절했고,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cf.) 어쩌면 작년의 '세 발 캐리어 사건' 앞에서 너무 무례했던 이탈리아(공항)의 이미지를 바꾸라는 의미였는지도 모르겠다.
2025년 08월 13일
강원도 정선.
"몰랐던 작가의 낯선 소설집을 읽기 시작했다. K사에서 처음 보았을 때 책의 앞면에 바다에 대한 문장이 없었더라면. 내가 바다를 보면서 한때 떠올리고는 했던 무수한 가능성들을 다시 되짚어보지 않았더라면 그저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책을.
(...)
결코 풍족하지 않은 이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친절할 수 있는지. 자신을 닮은, 혹은 자신이 조금은 아는, 그도 아니라면 잘 알지는 못해도 과거의 자신이 겹쳐 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감히 지나칠 수 없는 존재들을 기꺼이 지탱해주고자 하는 마음."
이번 여름에는 많이 읽었다. 주로 소설을 찾았고, 장편이 아니더라도 그랬다. 보고 느끼고 돌아온 것이 많은 만큼 읽는 것도 더 많았으면 했다. 언젠가는 나도 이들처럼, 하는 작은 꿈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책에 대해 생각할 때면 9년 만에 다시 찾은 파리에서 야경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던 길을 종종 떠올린다. 대각선에 앉은 낯선 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작가의 이름이 익숙한 것 같아서 유심히 보니 지난 학기 수업에서 다룬 SF계 유명 작가의 것임이 분명했다. 제목을 보니 프랑스어로 되어 있는 듯했는데, 호기심에 못 이겨 검색까지 하자 1964년에 출간된 책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니까 무려 프랑스의 수도에서, 늦은 밤에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사람들로 붐비는 칸에서, 지난 학기에 재밌게 읽은 SF 소설을 쓴 작가가 1964년에 발표한 또 다른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혼자 간직하게 된 작은 추억이 되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좋았고, 종이 책을 여기저기서 펼쳐 보는 유럽인들이 좋았고, 그게 전혀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 좋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름이었고, 무엇이든 아름다울 수 있을 것 같은 도시들이었다. 그렇게 그곳에 있을 때는 아무 벤치나 잡고 앉아 책을 펼치기도 하고 노트를 꺼내 떠오르는 문장들을 적고는 했다. 초여름까지도 캠퍼스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을 때가 잦았던 덕에 유럽에서도 크게 어색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돌아와서도 그 기조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도착해서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글을 쓰거나, 강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틈틈이 읽는 식으로. 내가 이런 것들을 좋아했었지, 싶다. 사람의 취향이란 어릴 때 좋아하던 것에서 결국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좋았던 것들만 남겨두고 싶다. 행복했던 기억만. 뒤집어져서 쉽게 돌아오지 않고 있는 피부 상태를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해야 할 일이 늘어날 거라는 생각에 가을이 반갑지 않았지만 긴 방학을 보냈으니 다시 집중해 볼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길 것!
2025년 09월 01일
학교 도서관
"살리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나도 타인도 구원할 재간은 없지만, 나도 타인도 잠시 기댈 수 있도록 뿌리를 단단히 내린 글을 쓰고 싶다고. 어쩌면 뿌리내리고 싶었던 것은 나였는지도. 그래서 나는 결국 타인을 위하는 것 이상으로 나를 위해 펜을 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편협한 마음에서 시작할지언정 한 걸음씩 타인에게로, 또 세계로 지경을 넓혀가는 일도 괜찮은 거라면,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싶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고민하던 사람으로서는 다소 원대한 포부인 것 같다.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자. 그래도 굳이 언급하고 마무리하는 까닭은 잃어버렸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찾아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무사했다, 다행스럽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