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보다는 해명, 결심만큼이나 약속, 그리고 밀린 이야기
안녕하세요.
조금만 쉬고 다시 복귀할 것이라고 노래만 부르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열 달이 지나갔습니다. 그 사이에는 두 개의 꽉 채워진 계절이 지나갔고, 어느덧 우리는 여름의 정점에 와있네요. 더위만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끝물이었으면 좋겠지만, 지금 날씨로 봐서는 아직 먼 일인 것만 같습니다.
무더위를 잘 견디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꽤나 잘 지냈습니다. 분명 '한국의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은 출발할 때 없었는데, 돌아와 보니 그 효과를 의도치 않게 보게 된 값진 여행을 하고 돌아왔답니다. 말 그대로 돈 주고도 못해볼 경험이 한가득이었지만, 사실은 상당한 비용이 들었습니다. 돈도 시간도 적지 않게 투자했죠. 특히 한 번의 이벤트에 이렇게까지 큰 돈을 써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적잖게 손 떨리는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잘 다녀왔습니다 :)
여행 내내 들고 다녔던 도톰한 검은색 가죽 노트는 돌아와 보니 절반 가까이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여행 다니면서 글이나 쓰고 살고 싶다며 장난스럽게 말하고는 했던 작은 소원을 잠깐이나마 이루고 온 셈이었죠. 그렇게 돌아와서 이 글들, 여행지에서 했던 여러 생각들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돌아왔답니다.
사랑할 줄 아는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여름이 있었습니다. 그 여름의 포부를 기억합니다. 받는 사랑이 덜하더라도, 저는 조금 더 주는 사람이 되겠다던 약속을요.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알기나 했던 것이었는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습니다. 대학 입시를 간신히 마치고 나니 스스로의 선택에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나이가 되어 있었고, 그 책임이 너무 무겁다고 생각했던—그렇게 가혹하게만 느껴졌던 겨울을 보낸 뒤였습니다. 그런데 대체 어디서 어떻게 사랑할 줄 어른이 되겠다는 결심이 튀어나온 것이었는지, 여전히 모를 일입니다. 사랑은 그렇게나 신비롭습니다.
묵혀두었던 원고가 있습니다. 원고라고 할 것도 없는 장면의 파편들이지만요. 두 해 전 여름에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들을 문장으로 담아두었습니다. 그 글에는 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타인의 어둠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뿐이라면, 그저 곁을 지키겠다고. 돌아올 곳이 되어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낼 수만 있다면. 반드시 살기를 바랐습니다. 타인도, 저 자신도, 우리 모두 살아내기를.
그러니까 아껴둔 그 이야기는 마음이 무너졌던 겨울을 지나 기어코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내기 위해 사랑을 선택했던 어느 여름날의 은유입니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그 여름에 품었던 마음을 한동안 잃은 채 살았습니다. 주기만 하는 것 같은 사랑은 무용해 보였고, 처음으로 두 해 전의 그 약속을 후회했습니다. 뼛속까지. 어리석은 포부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쉽고 당연한 사람이 되느니 아주 어려운 사람이 되고 싶다가도, 혼자서만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인 것 같은 제가 싫어서 스스로에게서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자문(自問) 했습니다. 그게 답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여행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잃어버렸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다시 찾았다는 것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꺼내보고 싶어졌던 것 같습니다. 마음을 있는 대로 내어줄 열정이 있었던 여름에 썼던 문장들과, 서툰 문장의 틈바구니에서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요. 그렇지만 그 원고를 공개하기 전에, 묵혀둔 글뭉치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한 지금의 제가 글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찾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여행지에서 써둔 글과 그곳에서 했던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그리고 집에 돌아온 뒤의 제가 해나가고 있는 생각들을 담담한 문장으로 담아보려고 합니다. 두 해 전에 써두었던 글 파편을 모아 완성해 보려는 최소한의 시도라도 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제가 글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그것을 분명히 해두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입니다.
아껴두었던 원고를 제대로 살릴 수나 있을지, 영영 완성할 수 없게 되어버릴지—장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작은 목표를 설정한 채, 그러니까 '내가 글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가는 일의 연장선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굳이 연재를 하는 이유는 주기적으로 글을 쓰겠다는 약속이 가지는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노트를 들고 다니는 게 습관으로 굳어졌습니다. 약속이 있는 날에는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도착해 카페에 들어가 혼자 글을 쓰는 것도 새로 재미를 붙인 일이 되었습니다. 이 여름을 잊을 수가 있을까요. 잊지 않고 싶어 또 한 번 펜을 듭니다. 노트와 펜을 쓰는 일이 잦아졌으니 이 말은 더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8월의 끝자락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