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이 되어

by 유예린

2025.07.04.

베네치아행 기차 안

이방인의 그림을 바라보길 좋아하던 내가, 그 이방인들이 거쳐간 땅에서 이방인이 되어 여행을 하고 있다.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두려움과 긴장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인데, 그 가운데서 눈물 나게 다정한 순간들을 만난다. 그 다정에 마음이 동하지 않기란 불가능해서, 나도 내 자리에서 다정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지—다짐하게 된다. 조금씩 그 의지를 되찾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뿌리 깊은 본성은 정착하고자 하는 욕구에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안정적인 게 좋고, 자주 바뀌는 것보다는 오래도록 한결같은 것을 지향한다. 적어도 마음으로는.


이런 지향점이 생긴 데에는—정말 자주 그런 상황에 던져지는 사람들에 비하면 자주는 아니었을지라도—꽤나 빈번하게 환경의 변화를 체험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랄수록 그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아가게 되었다. 다니는 학교가 바뀌는 것이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당시에는 학교가 내 세계의 가장 큰 축이었고, 전학 같은 큰 변화에는 어렸던 나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지 않아서 더더욱 그랬다. 적당한 변화는 건강하게 작용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딘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파국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교복을 입기 시작한 지 고작 1년을 넘겼을 때였다.


그러니까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거부 반응이나 불가피한 변화에 대한 체념, 언제 또 헤어져야 할지 모르는 타인과의 너무 얕지도 깊지도 않은 적당한 관계 유지 같은 것들은 일종의 관성이었다. 이방인이 되어본 경험이 여럿이었고, 그 과정에서 터득한 생존 능력이었던 셈이다. 나름의 생존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장 좋은 건 가급적 이방인이 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상반기를 복잡한 마음으로 보냈던 이유도,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을 많이 주었던 곳에서 다시 이방인이 되어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별을 직감하는 일은 언제나 아픈 법이다. 겨우 익숙해진 곳과 그곳의 사람들로부터 다시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불가항력적으로. 너무 어렵게 사랑하기 시작했었기 때문에 배로 아팠다.


베네치아 Venice


여행은 익숙한 곳을 잠시 떠나 자발적으로 낯선 사람으로서 존재하기를 선택하는 일이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마음을 줬던 곳에서 다시 이방인이 되는 것보다는 아예 모르는 곳에서 낯선 사람 취급받는 것이 낫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이고, 낯선 땅에서 그곳 사람들의 이방인으로 존재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으니까.


이탈리아는 처음으로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반갑게 느껴졌던 곳이었다. 나를 알아볼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갈 때 느끼는 자유함도 여행의 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방인이 되어 거리를 거닐고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무엇보다도 낯선 땅에서의 다정은 상상 이상으로 따뜻했다. 때로 마음이 어렵고 몹시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닥뜨릴 때에도, 결국 그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바꿔주는 순간들이 있었다. 가령 캐리어 하나 짐칸에 올리는 게 버거울 때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다른 여행자들을 만났을 때. 혹은 피렌체의 식당에서 만난 종업원과 나누었던 담소. 베네치아행 기차에서 검표하러 다니던 직원의 담담하지만 따뜻한 태도. 그렇게 타지에서 만난 다정은 나에게 기도할 힘을 보태주었다. 나의 마음을 지키는 일을 넘어, 단순히 안전한 여행을 바라는 일을 넘어, 온기 어린 말들로 응원하며 나를 보내준 사람들을 위해서까지도.




2025.09.08.

서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5분만 더 열심히 살자고 다짐했다. 그러다 보면 삶 전체가 온통 열심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주 보고 싶었다. 그리웠다는 뜻도 되지만, 더 오래 잔류하고 싶다는 의미도 되었다. 이방인에게는 두 가지 의미가 다 와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익숙했고 좋아했던 것에 대한 그리움과, 새로 던져진 환경에서 가능한 만큼 많은 것들을 느끼고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 모두.


‘더 보고 싶다, 오래 보고 싶다, 살고 싶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이 세상을 조금 더 풍요롭게 받아들이고 싶다.’ 파리의 어느 공원에서는 그렇게 적어두었다. 그곳 사람이 아니라서 가질 수 있는 시선이 좋았다. 누군가의 일상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감각. 그 새로움을 좋아하게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게 될 수도 있을까. 어딘가에, 혹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에 정박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나의 지향점은 머무는 것에 있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온통 유랑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말 절대적인 ‘안정’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어쩌면 삶도, 사랑도, 소망과 속죄와 성장 같은 것도 전부 헤매고 유랑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시간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는 내가 익숙했던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의 굴레에 스스로를 몰아넣지 않는다.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니 마음이 떠날 때보다 돌아왔을 때 훨씬 넉넉해져 있었다.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도 필요하다.


가끔은 일부러라도 한 발짝 떨어져서 일상을 바라보는 일도 괜찮은 것 같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2화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