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걸작을 파괴하는 용기

아이폰을 만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과거의 기술'이라 부르는 이유

"2007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 된 레거시 제품을 통해 숨막히는 기술이 우리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생각합니다."


Jony Ive가 아이폰을 '수십 년 된 레거시 제품'이라고 부르는 순간,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이폰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아이폰이 속한 '스마트폰'이라는 형태 자체를 말하고 있었다. 세상을 바꾼 혁명적 제품을 만든 당사자가, 이제 그것을 과거로 규정하고 있었다.


Sam Altman과의 대화에서 Jony Ive는 OpenAI와 함께 개발 중인 새로운 AI 인터페이스 디바이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마트폰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대체할 '완전히 다른 무언가'다. 그들은 이미 15개에서 20개의 설득력 있는 제품 아이디어를 만들어냈고, 지금은 그중 무엇에 집중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의적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스마트폰보다 더 나은 게 가능할까?' 하지만 2007년 아이폰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비슷하게 반응했다. "키보드도 없는 폰이 어떻게 이메일을 쓰지?" "물리 버튼 없이 어떻게 전화를 걸어?"


혁신은 항상 의심 속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10년, 20년 뒤 다음 시대를 여는 기술을 손에 쥐고 있을 사람들은, 바로 지금 이 의심과 비판 속에서도 실험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일 것이다.


빠른 추격자의 딜레마


예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한국은 기존에 존재하는 것을 빠르게 따라잡는 데는 탁월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영향력은 아직 부족하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을 기획하고 평가하는 일을 하면서, 나는 이 말의 무게를 매일 느낀다. 우리는 벤치마킹을 잘한다. 선진 사례를 분석하고, 기술 격차를 좁히고, 빠르게 따라잡는다. 그래서 반도체에서 세계 1위가 되었고, 디스플레이에서, 배터리에서, 조선에서 세계 최고가 되었다.


하지만 그 성공 방정식이 이제는 족쇄가 되고 있다. 국가 R&D 과제 심사를 할 때마다 듣는 질문들이 있다. "선행 연구는?" "해외 사례는?" "기술 수준은 어느 나라가 몇 년 앞서 있나요?" 우리는 항상 '앞서 있는 누군가'를 전제한다. 따라잡을 대상이 있어야 편안해한다.


그런데 Jony Ive와 Sam Altman의 대화를 들으며 깨달았다. 그들에게는 따라잡을 대상이 없다. 아니, 정확히는 따라잡을 대상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자신들이 만든 아이폰을, 자신들이 레거시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혁신가와 빠른 추격자의 차이다. 혁신가는 자신의 걸작을 스스로 파괴한다. 추격자는 그 걸작을 목표로 삼아 달려간다. 그리고 목표에 도달했을 때, 혁신가는 이미 다음 세계로 넘어가 있다.


취약한 아이디어를 지키는 문화


"아이디어는, 비록 그것이 매우 강력해질 수 있지만, 항상 조심스럽고, 조용하고, 본질적으로 취약한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Jony Ive의 이 말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취약한 아이디어들을 회의실에서 죽이는 데 가담했던가. "예산이 너무 많이 듭니다." "시장성 검증이 부족합니다." "실패 리스크가 높습니다." "이미 누군가 시도했다가 실패했습니다."


모두 합리적으로 들리는 말들이다. 하지만 그 합리성의 이면에는 두려움이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따라잡을 대상이 없는'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Jony Ive는 25년간 함께 일한 팀의 신뢰와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간신히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부드럽게 탐구할 수 있는 환경. 그는 "머릿속에 있는 것을 언어로 옮기는 순간, 그것을 누구와 하느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R&D 회의실은 어떤가. 박사 학위자들이 모여 앉아, 논리와 데이터로 무장한 채, 아이디어를 해부한다. 생존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이미 반쯤 완성된, 검증된, 안전한 아이디어들뿐이다. 취약한 아이디어는 첫 문장을 채 끝내기도 전에 질문 세례를 받고 사라진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문화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차이가, 혁신가와 추격자를 가른다.


모두가 초보자인 평등한 기회


그런데 Jony Ive가 한 말 중에 희망적인 것이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는 매우 평등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새로운 것이니까요. 누군가가 '저는 수십 년의 경험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어리석은 말이죠."


AI 시대에는 모두가 초보자다. 40년 경력의 Jony Ive도, 어제 대학을 졸업한 디자이너도, 같은 출발선에 서있다. 그리고 그는 매일 자신에게 묻는다고 했다. "내 경험 중 어디가 관련이 있는가? 그리고 어디가 실제로 장애물이 될 수 있는가?"


이것은 한국에게 기회다. 반도체에서 20년 뒤처졌고, 디스플레이에서 10년 뒤처졌던 것과 달리, AI 인터페이스 디바이스에서는 모두가 함께 시작한다. 따라잡을 것이 없다. 아니, 정확히는 따라잡을 것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기회를 잡으려면, 우리 문화를 바꿔야 한다. 벤치마킹에서 실험으로, 검증에서 보호로, 따라잡기에서 창조하기로. 그리고 무엇보다, 성공한 것을 지키려는 본능에서, 성공한 것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용기로.


생산성이 아니라 행복을 묻는 질문


대화의 마지막, Sam Altman이 물었다. "AI가 세상을 바꿀 텐데, 무엇을 가장 잘하기를 바라나요?"


Jony Ive의 답변은 의외였다. "이런 도구들이 우리를 행복하고 충만하게, 더 평화롭고 덜 불안하고 덜 단절되게 만들어주기를 바랍니다. 생산성에 대해 신경 써야 한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우리의 기술과 불편한 관계를 가져왔습니다."


국가 R&D 성과지표를 보면, 특허 몇 건, 논문 몇 편, 기술료 수입, 고용창출 인원이 나온다. 모두 중요한 지표들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이 기술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은 없다.


삼성과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을 지배하고 있지만, 스마트폰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는가? 우리는 더 연결되었지만 더 단절되었고, 더 많은 정보를 얻었지만 더 불안해졌고, 더 생산적이 되었지만 더 지쳤다.


Jony Ive는 말한다. "우리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저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상황을 완전히 바꿀 기회를요. 이것이 규범이어야 한다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의심 속에서 실험하는 사람들


나는 내일 다시 연구개발 기획회의에 들어간다. 수백억 원 규모의 국가 과제 방향을 논의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질문들을 던질 것이다.


"우리가 벤치마킹하는 해외 사례는 무엇인가요?"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 최초로 시도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실패 리스크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요?"가 아니라, "이 취약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보호하고 키울 것인가요?"


"이 기술의 경제적 파급효과는?"이 아니라, "이 기술이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우리가 성공적으로 개발한 기존 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요?"가 아니라, "우리가 성공시킨 것을 어떻게 스스로 무너뜨리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 것인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의적일 것이다. 연구자들은 불안해할 것이고, 평가자들은 반대할 것이며, 예산 당국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10년, 20년 뒤, 세계가 따라오는 혁신을 만들 사람들은, 바로 지금 이 의심과 비판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실험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일 것이다.


Jony Ive는 40년 경력의 거장이면서도, 자신이 20살 더 젊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I 시대의 속도가 그만큼 빠르고, 그만큼 흥분되고, 그만큼 기회로 가득하다는 뜻이다.


한국은 빠른 추격자였다. 이제 우리도 우리 자신의 걸작을 만들고, 그것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다음 혁신으로 나아갈 때다. 그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세계는 다시 시작된다.


지금,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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