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차 안에서 본 미래

자율주행이 바꿀 3년 후의 일상

아침 출근길, 핸들을 잡으며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7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갑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콘크리트와 엔진 오일이 섞인, 주차장 특유의 그 냄새.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겁니다. 핸들을 잡는 이 순간이 불과 몇 년 후면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기계공학 박사 과정을 밟던 시절, 자동차의 모든 것이 엔진과 기계 시스템으로 설명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토크 곡선을 분석하고, 연소 효율을 계산하고, 정밀한 기어비를 설계하던 그 시절. 그때는 자동차의 본질이 "얼마나 정교한 기계 장치를 만드느냐"에 있다고 믿었죠.

그런데 요즘, 국가연구개발사업 평가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느낍니다. 자동차는 더 이상 기계가 아니라는 것을. 소프트웨어고, 알고리즘이고, 데이터입니다.


유튜브 영상 하나가 던진 질문


며칠 전 퇴근 후 소파에 앉아 유튜브를 보다가 한 영상을 우연히 접했습니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영상을 보는 내내 등골이 서늘해지더군요.

"불과 1, 2년 후면 여러분들이 생각한 모든 것들이 뒤집히게 됩니다."

영상 속 이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저는 프로젝트 관리 전문가(PMP)로서 늘 3년, 5년 단위의 로드맵을 그립니다. 국가R&D 과제도 보통 5년 계획으로 수립하죠. 그런데 만약 정말로 1~2년 만에 모든 것이 뒤집힌다면? 우리가 지금 세우고 있는 그 정교한 계획들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날 밤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테슬라가 만든 '400km'라는 마법


영상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테슬라의 400km 얘기였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는 그냥 내연기관을 어떻게 하면 잘 만들 수 있을까라는 거였어요. 전기차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해선 그냥 애들 장난 같은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기계공학을 전공하던 시절, 전기차는 진지한 공학 주제라기보다는 그냥 친환경 컨셉카 정도로만 여겨졌습니다. 실험실에서 재미로 만들어보는 프로젝트 같은 거요.

그런데 테슬라가 "전기차로 400km를 갈 수 있다"고 선언한 순간,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400km는 전기차의 기본 스펙이 되었죠. 영상 속 표현대로 "그 이후로 많은 것들이 변화되면서 전기차라면 당연히 400km 가야지라는 게 상식처럼 돼 있지만 그 전까진 그렇지 않았다."

지난주 연구개발 과제 기획 회의에서 한 연구원이 물었습니다. "박사님, 목표 성능을 경쟁사 대비 10% 향상으로 잡으면 될까요?" 저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10% 향상이면 충분할까?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가 정말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 기술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나요? 이걸 경험한 사람이 예전 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 수 있나요?"

이게 진짜 질문이어야 한다고, 그날 회의 후 혼자 생각했습니다.


스마트폰이 그랬던 것처럼


아내가 최근에 웃으면서 한 말이 있습니다.

"당신 첫 스마트폰 기억나? 그때 한 달 동안 폴더폰이랑 같이 들고 다녔잖아. 혹시 스마트폰이 고장 날까봐."

맞습니다. 2010년쯤이었을 거예요. 아이폰 3GS를 샀는데, 왠지 불안해서 기존에 쓰던 삼성 폴더폰도 계속 가지고 다녔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제대로 될까? 배터리가 금방 닳으면 어떡하지?

근데 정확히 일주일 만에 폴더폰은 서랍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시는 꺼내지 않았죠. 영상에서 말한 그대로였습니다.

"스마트폰 생각해 봐. 이거 딱 사서 게임 몇 번 하고 인터넷 몇 번 하고 나면 바로 피처폰 다음날부터 못 쓰잖아."

자율주행도 똑같을 겁니다.

지난달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켰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알아서 속도를 조절하고, 앞차와 거리를 유지하고, 심지어 차선까지 따라가더군요. 처음 10분은 긴장했습니다. 혹시 오작동하면 어떡하지? 손은 핸들에서 떼지 않았죠.

그런데 1시간쯤 지나자 제 몸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왼손은 자연스럽게 무릎에 놓여 있었고, 저는 차 안에서 팟캐스트를 들으며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서울 근처에 도착해서 어댑티브 크루즈를 끄고 다시 직접 운전을 시작하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운전을 해야 하는구나.'

피곤하다는 느낌. 불편하다는 느낌.

그건 단지 Level 2 수준의 보조 기능이었을 뿐인데도 말이죠. 완전 자율주행을 경험하면 어떻게 될까요?


호텔 로봇이 당연해진 세상


작년 가을, 부산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호텔 방에서 칫솔이 없다는 걸 뒤늦게 발견했죠. 프론트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칫솔 하나만 가져다주시겠어요?"

"네, 곧 보내드리겠습니다."

10분쯤 지났을까요.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문을 열었는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키 높이 정도 되는 하얀색 로봇이 서 있더군요. 로봇 상단의 작은 수납함이 열려 있었고, 그 안에 칫솔과 치약이 담겨 있었습니다.

신기해서 한참 쳐다봤습니다. 칫솔을 꺼내자 로봇은 수납함을 닫고,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돌아서서 복도를 따라 이동했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춰 서더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고...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게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영상에서 말한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그걸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제는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해."

다음날 아침, 같은 호텔에 묵던 젊은 커플이 로봇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는 걸 봤습니다. 그들은 로봇을 힐끗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자기들끼리 얘기하며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죠.

불과 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광경인데, 지금은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출장 보고서 대신 쓰는 미래 전략


오늘 오후에 주요 국가R&D 과제 중간평가 회의가 있습니다. 자동차 부품 관련 과제죠. 평가표를 미리 받아서 살펴봤습니다. 논문 실적, 특허 출원 건수, 기술성숙도(TRL) 레벨...

다 중요한 지표들입니다. 지금까지는 이것들로 충분했죠.

하지만 영상을 본 이후로 자꾸 다른 생각이 듭니다.

"내년부터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서울에 돌아다닐 거기 때문에 완전 자율주행이 서울에 아무렇지도 않게 다닐 거고 그거를 경험하는 순간 다시는 기존으로 돌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내년입니다. 2025년.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달 후에 서울 시내에서 완전 자율주행 택시를 탈 수 있다면, 사람들의 인식은 어떻게 바뀔까요?

제가 지금 평가하려는 이 R&D 과제가, 3년 후에도 의미가 있을까요? 아니, 이렇게 물어야겠네요. 이 과제가 만들어내는 기술이, 자율주행을 당연하게 여기는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기술일까요?


엔지니어라는 단어의 무게


점심시간에 후배 연구원과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습니다. 기계공학 전공인 그 친구가 요즘 파이썬을 배우고 있다고 하더군요.

"박사님, 저희 세대는 아무래도 늦은 거 아닐까요? 이미 컴퓨터공학과 애들이 저희보다 10년은 앞서 있잖아요."

저는 영상에서 들었던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우리가 엔지니어라고 얘기하잖아요."

엔지니어(Engineer). 엔진(Engine)을 만드는 사람. 그게 자동차 회사의 정체성이었습니다. BMW의 직렬 6기통, 페라리의 V12, 현대의 세타 엔진... 이런 것들이 브랜드를 만들었죠.

"근데 말이야," 제가 후배에게 말했습니다. "전기차 시대, 자율주행 시대에 엔진이라는 게 뭐가 있어? 모터와 배터리, 그리고 소프트웨어지."

후배가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럼 우리 기계공학과 출신들은 어떡해요?"

"배워야지, 뭐. 나도 지금 Claude한테 코딩 배우고 있어."

농담처럼 했지만, 사실입니다. 요즘 저는 생성형 AI를 활용해서 Python 스크립트를 짜보고, 데이터 분석 방법을 익히고 있습니다. 기계공학 박사가 50대 가까이 되어서 코딩을 배우고 있다니,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죠.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영상에서 경고한 대로입니다.

"자동차 회사는 엔진을 못 만들어서 망하지 않습니다. 엔진은 사오면 돼. 철판을 못 찍어서 망하지 않아요. 철판을 찍는 자동차 공장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럼 뭐 때문에 망할까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못 만들어서 망합니다.


현대·기아의 예쁜 인테리어와 발등의 불


지난주 시승 행사에 초대받아 갔었습니다. 신형 전기차였는데, 정말 인테리어가 멋있더군요. 대시보드의 곡선미, 시트의 가죽 질감, 앰비언트 라이트의 은은한 조명...

동행했던 디자인 전공 친구가 감탄했습니다. "현대차 디자인 정말 좋아졌다. 외제차 부럽지 않네."

맞습니다. 정말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시승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영상 속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현대 기아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죠. 현대 기아는 지금 요런 인테리어 소재를 뭐 굉장히 멋있게 한다거나 뭐 예쁘게 요걸 꾸민다거나 요런 것들도 중요하죠. 중요합니다. 지금 소비자들은 그걸 원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요.

"3년 후는 3년 후에 소비자들이 자율주행이 당연하다고 느낄 때 내가 자율주행이 안 되는 차를 산다면 그건 뭐야?"

3년 후, 자율주행이 당연해진 세상에서 소비자들은 과연 무엇을 먼저 물어볼까요?

"이 가죽 시트, 프리미엄 나파 가죽인가요?"

아니면

"이 차, 자율주행 되나요?"

아마 후자겠죠.


Agile하게 달려야 하는 이유


저는 PMP이자 Agile 전문가입니다. 프로젝트 관리 방법론을 국가R&D에 적용하는 일을 해왔죠. 전통적인 방식은 이렇습니다. 5년 계획을 세우고, 각 단계별 목표를 설정하고, 차근차근 진행합니다. Waterfall 방식이죠.

하지만 요즘 저는 국가R&D 과제에도 Agile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습니다.

"박사님, R&D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아니에요. 물리적인 시제품을 만드는데 어떻게 2주마다 Sprint를 돌려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영상의 경고를 다시 들어보세요.

"불과 1, 2년 후면 여러분들이 생각한 모든 것들이 뒤집히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5년 계획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계획을 세우는 데 1년, 과제 선정에 6개월, 그러다 보면 이미 세상은 바뀌어 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3개월 단위로 짧은 목표를 설정합니다. 첫 3개월에는 프로토타입만 만듭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핵심 기능만 작동하면 됩니다. 다음 3개월에는 이걸 실제 도로에서 테스트합니다. 사용자 반응을 수집하고요. 그다음 3개월에는 피드백을 반영해서 개선합니다.

이렇게 하면 1년 안에 세 번의 사이클을 돌릴 수 있습니다. 시장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반영하면서 방향을 수정할 수 있죠.


저녁 퇴근길, 디젤차를 보며


오늘 퇴근길, 신호대기 중에 옆 차선을 봤습니다. 깔끔한 디젤 세단이 서 있더군요. 아직 몇 년 안 된 차 같았는데, 운전자의 표정이 묘하게 씁쓸해 보였습니다. 제 착각일 수도 있지만요.

영상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요즘 들어서도 디젤 차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면서도 아, 요거 사면은 몇 년 오면은 큰일 날 것 같은데 갖다 버려야 될 거 같은데라는 생각을 갖고 사어요."

3년 뒤에는 자율주행 안 되는 차를 살 때도 비슷한 심정이 되지 않을까요?

"이거 사고 나서... 5년 뒤에 팔릴까? 아니, 팔리긴 팔릴까?"

"내가 지금은 사는데 사고 나서 이 차를 만약에 5년 지나서 팔 수 있을까? 똥값이 되고 뭐 이걸 떠나서 팔리긴 팔릴까?"

"이거 내가 평생 타야 되나? 그냥 죽을 때까지 타지 뭐."

이런 생각으로 차를 사는 시대가 올 겁니다.


밤, 기획서를 쓰며


지금 새벽 1시입니다. 내일 회의에서 발표할 자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율주행 관련 국가R&D 신규 과제 제안서입니다.

처음 썼던 버전은 삭제했습니다. 기술 로드맵, TRL 레벨, 경제성 분석... 이런 걸로 가득했던 그 버전을요.

새로 쓰는 제안서의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2025년, 서울 시민 100만 명이 자율주행을 경험하게 하는 프로젝트"

목표는 기술 개발이 아닙니다. 경험 제공입니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겁니다. 한번 자율주행을 경험한 사람은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영상 속 문장을 제안서에 인용했습니다.

"오늘 당장 자율주행을 경험하고 나면 내일부터 자율주행이 없는 차를 못 합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고, 진짜 목표는 시장 전환입니다.


서드 웨이브를 기다리며


창밖을 봅니다. 고요한 새벽입니다. 멀리 아파트 불빛들이 반짝입니다. 저 집들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 모를 겁니다. 불과 몇 년 후면 자신들의 일상이 완전히 바뀔 거라는 걸.

아침에 일어나서 차를 타고 출근하는 대신, 자율주행 택시를 부를 겁니다. 차 안에서 핸들을 잡는 대신, 노트북을 펴서 일을 하겠죠. 회의를 할 수도 있고, 책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주차 걱정도 사라질 겁니다. 차를 소유할 이유가 없어지니까요.

영상의 마지막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돕니다.

"그 시대가 왔을 때 완전히 무슨 거센 파도가 오겠죠. 퍼스트 웨이브, 세컨드 웨이브까지 온 거 같고 이제 서드 웨이브가 올 때 파도에 부딪혀서 산산이 부서지는 게 아니라 그 파도를 마치 서핑하듯이 그 파도에 힘입어서 더욱 더 멋지게 쭉 뻗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저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우리 연구자들이, 그리고 저 자신이.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파도를 타고 나가는 서퍼가 되기를.

기획서를 저장합니다. 내일 회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질문은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올바른 질문을 하고 있나요?"

"3년 후를 준비하고 있나요, 아니면 과거를 개선하고 있나요?"

창밖이 조금씩 밝아옵니다. 또 하루가 시작되네요.

내일 아침에도 저는 핸들을 잡고 출근할 겁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어쩌면 3년 후쯤에는, 이 글을 다시 읽으며 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땐 정말 직접 운전을 했었구나."


오늘도 기술과 전략 사이 어딘가에서 고민합니다.

여러분은 3년 후, 어떤 차를 타고 계실까요?


참고한 영상: https://youtu.be/J_60h53mCss?si=FM2QaTS832zb46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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