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능성을 상상하다
최근 OpenAI의 샘 알트만이 Sora 출시 인터뷰에서 한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건 GPT-3.5의 순간이다. GPT-4로 가는 여정이 이제 시작됐을 뿐"이라는 그의 말은 단순히 기술의 발전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선언이었다.
R&D 전략을 기획하고 평가하는 일을 하다 보면, 늘 아쉬운 지점이 있다. 국민 세금으로 진행되는 수많은 연구개발 과제들이 정작 국민들에게는 낯선 전문용어와 복잡한 도표로만 전달된다는 것. 연구자들의 열정과 땀, 그 과정에서 탄생한 혁신이 '보고서 PDF 파일' 속에 갇혀버리는 현실이 늘 안타까웠다.
어느 날, 한 지인이 물었다. "너희 부처에서 추진하는 그 대형 국책 과제, 대체 뭐 하는 건지 설명해줄 수 있어?"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글쎄... 보고서 링크 보내줄게"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 지인은 보고서를 열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그 복잡한 연구를 3분짜리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양자컴퓨팅 연구를 설명하는데 수식 대신, 수십억 개의 길을 동시에 달리는 자동차들의 장면을 보여주면 어떨까. 신소재 개발 과정을 타임랩스 영상처럼 압축해서, 10년의 연구를 10초로 보여줄 수 있다면? 탄소중립 기술을 설명할 때, 실제로 변화하는 지구의 모습을 시각화해서 보여준다면?
Sora의 Cameo 기능을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우리 연구자들도 이렇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백발의 원로 과학자가 타임머신을 타고 등장해서 자신의 50년 연구 여정을 소개하는 장면. 젊은 박사과정 학생이 실험실에서 직접 연구 과정을 실연하며 실패와 성공의 드라마를 들려주는 모습.
물론 이런 영상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하려면 수천만 원의 예산과 몇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영상 AI는 제작 비용을 90% 이상 절감하면서도, 오히려 더 창의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상상해보자. 매년 국세청에서 받는 연말정산 서류에 QR코드 하나가 추가된다. 그걸 스캔하면 "당신이 낸 세금 중 연구개발비로 사용된 200만 원의 여정"이라는 3분짜리 영상이 재생된다. (우리나라 정부의 1년 연구개발 예산 30조원 나누기 국민 수 하면 대략 1인당 200만원 정도가 된다)
암 정복을 위한 면역항암제 연구에 70만원이 쓰였고, 그 덕분에 올해 임상 3상에 진입했다는 소식. 자율주행 안전기술 개발에 30만원이 투입돼 교통사고 사망률이 전년 대비 15% 감소했다는 성과. 청년 창업 지원 R&D에 1백만원이 사용되어 300개 스타트업이 탄생했다는 이야기 등등.
숫자와 그래프가 아닌, 실제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로 전달되는 변화의 이야기. 이것이 진짜 과학 커뮤니케이션 아닐까.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있다. 연구자의 초상권 보호, 과학적 사실의 정확성 검증, 보안이 필요한 연구 데이터의 처리.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설계의 문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기술이 아니라, 시작하겠다는 의지다.
3개월짜리 파일럿 프로젝트로 시작하면 된다. 주요 국책과제 5개를 선정해서 영상 AI로 콘텐츠를 만들어보는 것. 조회수, 이해도, 만족도를 측정하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확장하는 것.
재작년 이맘때 ChatGPT가 등장했을 때, 많은 이들이 "재미있는 장난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년이 채 안 지난 지금, 그것은 업무 방식 자체를 바꿔놓았다. Sora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은 "멋진 영상 만드는 도구"로 보이지만, 1년 후에는 "과학을 대중과 연결하는 필수 인프라"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결국 모든 연구개발은 국민을 위한 것이다. 그들의 세금으로, 그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진행되는 것이 국가 R&D다. 그렇다면 그 과정과 결과를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그들이 선호하는 형식으로 전달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가 아닐까.
영상 AI는 단순히 멋진 영상을 만드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과학과 대중 사이의 높았던 벽을 허무는 도구이고, 복잡한 지식을 민주화하는 도구이며, 우리 사회의 과학 리터러시를 한 단계 높이는 촉매제다.
GPT-3.5가 GPT-4가 되고, Sora가 더 진화하는 동안, 우리 국가 R&D도 함께 진화해야 한다. 보고서의 시대에서 영상의 시대로, 전문가만의 언어에서 모두의 언어로.
그 변화의 시작점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
김현철 | AI R&D 전략플래너
기계공학 박사 | PMP & Agile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