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조스가 버블 속에서 배운 것

꿈꾸는 자와 실행하는 자 사이

2000년, 아마존의 주가가 113달러에서 6달러로 추락했다. 94% 폭락. 직원들의 부모님들은 불안한 마음에 자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괜찮니?"

그런데 제프 베조스는 매달 숫자를 보고 있었다. 주가가 떨어지는 동안, 고객 수는 매달 늘었다. 총 이익도 매달 증가했다. 손실률은 매달 개선되었다. 모든 비즈니스 지표가 좋아지고 있었다. 주식시장과 비즈니스의 실체가 완전히 따로 놀고 있었던 것이다.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열풍 속에 있다. AI라는 이름의.


균형이 아니라 조화


최근 베조스의 인터뷰를 읽으며, 한 문장이 유독 강하게 다가왔다.

"나는 균형(balance)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트레이드오프를 의미하니까."

사람들이 그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한다고 했다. "나는 일과 삶의 조화(harmony)를 추구한다. 집에서 행복하면 일터에서 더 나은 성과를 낸다. 일을 잘하면 집에서도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이것들은 함께 간다."

혁신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발명은 효율적이지 않다.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디어를 얻고, 배우고, 꿈꾸는 데는. 반면 일단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하면 매우 효율적이어야 한다. 빠르게 반복해야 한다.

이 둘은 다른 시간,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둘이 서로를 강화한다는 점이다. 실행에서 나온 데이터가 다음 탐색의 방향을 알려준다. 꿈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실행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R&D 프로젝트를 수없이 기획하고 관리하며 느낀 것도 같았다. 창의적 발상 단계와 체계적 실행 단계를 분리해서 생각하면, 둘 다 놓친다. 프로젝트 관리 방법론도 마찬가지다. Agile을 도입한다고 해서 계획이 필요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정교한 계획이, 더 유연한 실행을 만든다.


데이터를 보되, 데이터만 보지 말라


베조스는 단호하게 말한다.

"비즈니스에 있으면서 데이터를 보지 않는다면, 경쟁자가 당신을 이길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만 본다면, 당신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크게는."

가장 중요한 결정들은 직관으로 내려진다는 것이다. 증명할 수 없지만, 본능과 예감이 있다. 그리고 주의를 기울인다. 만약 그것이 틀렸다면? 큰 문제가 아니다. 수정하면 된다.

그는 고객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고객을 대신해서 발명해야 한다. 가장 큰 돌파구,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는 고객도 요청할 줄 모른다."

국가연구개발 과제를 기획할 때도 마찬가지다. 수요조사를 하면 현재의 니즈는 파악된다. 하지만 진짜 혁신은 그 너머에 있다. 아직 누구도 언어화하지 못한 문제, 아직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해법.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기획자의 역할이다.

데이터는 과거를 말한다. 직관은 미래를 연다.


주식시장은 투표기계, 그러나 결국은 저울


2000년 버블이 터졌을 때, 베조스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말을 되새겼다고 한다.

"단기적으로 주식시장은 투표기계다. 장기적으로는 저울이다."

기업가의 일은 무거운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저울에 올렸을 때 무게가 나가는 회사. 주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이 지금 특히 와닿는 이유는, 우리가 또 한 번의 버블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엊그제 창업한 6명짜리 팀이 200억 달러 밸류에이션을 받는다. 평소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 베조스는 이것을 "산업 버블"이라고 부르며,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금융 버블(2008년 금융위기 같은)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산업 버블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좋은 아이디어와 나쁜 아이디어 모두 자금을 받는다. 투자자들은 흥분 속에서 둘을 구분하지 못한다. 결국 대부분의 회사는 실패한다. 투자자들은 돈을 잃는다.

하지만 사회는 무언가를 얻는다.

90년대 바이오텍 버블에서 우리는 생명을 구하는 약을 얻었다. 닷컴 버블에서는 광케이블을 얻었다. 그 케이블을 깔았던 회사들은 파산했지만, 케이블은 남았다. 우리는 그것을 사용했다.


AI는 수평적 레이어다


"AI는 실재한다. 그리고 모든 산업을 변화시킬 것이다."

베조스의 이 말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이라는 단어다. 그는 강조한다. 문자 그대로 모든 회사. 모든 제조 회사, 모든 호텔, 모든 소비재 회사.

지금은 OpenAI, Anthropic, Mistral 같은 AI 전문 기업들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정상이다, 이 단계에서는. 하지만 그것이 AI의 가장 큰 영향은 아니다.

가장 큰 영향은 AI가 모든 기존 회사의 품질과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AI는 수평적 레이어다. 전기나 인터넷처럼.

R&D 기획자로서 이 지점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AI 기술 개발 과제만 생각할 게 아니라, 모든 분야의 R&D에 AI를 어떻게 접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바이오 연구에도, 소재 개발에도, 제조 공정 혁신에도.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25년 전 버블과 지금 사이에서, 베조스가 일관되게 말하는 것이 있다.

첫째, 고객(사용자)을 깊이 이해하라.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되, 그들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발명하라.

둘째, 펀더멘털에 집중하라.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든, 당신의 비즈니스(프로젝트)가 실제로 가치를 만들고 있는지를 보라.

셋째, 꿈과 실행을 조화시켜라. 균형을 맞추려 하지 말고, 둘이 서로를 강화하게 하라.

넷째, 데이터를 보되 직관을 버리지 말라. 가장 중요한 결정은 증명할 수 없다.

버블은 언젠가 꺼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인프라는 남는다. 광케이블처럼. 생명을 구하는 약처럼.

지금 우리가 만들고 있는 AI 인프라도 그럴 것이다. 누가 살아남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기술은 남을 것이고, 사회는 혜택을 받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와중에 무거운 것을 만드는 것이다. 저울에 올렸을 때 무게가 나가는 것을.


지금 당장 시장이 어떻게 평가하든, 결국 중요한 것은 당신이 만들고 있는 것의 실제 가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상 AI가 열어줄 국가 R&D의 새로운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