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쫓고 있는가
커피를 마시며 유튜브를 보다가 한 노인의 목소리에 손이 멈췄다. 찰리 멍거. 99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날카로운 통찰로 세상을 꿰뚫어 보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부회장.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지난 100년간 인류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나아졌습니다. 전기가 들어왔고, 자동차가 생겼고, 비행기가 하늘을 날았습니다. 과거에는 아이 셋을 키우려면 여섯을 낳아야 했습니다. 절반은 유아기에 죽었으니까요. 부모들이 아이들을 잃는 고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지금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운 시대에 사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그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모든 것이 600% 나아졌는데, 사람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노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그 이유를 단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세상은 탐욕이 아니라 시기심으로 돌아갑니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멍거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가 지난 몇 년간 만난 연구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전의 한 연구소에서 만난 중견 연구원. 그는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도 연구실을 지키고 있었다.
"요즘 연구가 재미있으세요?"
무심코 던진 질문에 그는 긴 침묵 끝에 답했다.
"재미... 재미라는 게 있었나요? 논문 쓰고, 평가받고, 살아남기에 바쁜데요."
그의 눈에는 열정이 아니라 피로가 가득했다.
서울의 한 대학 연구실. 박사과정 학생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번 학기에 SCI 논문 세 편 냈어요!"
"대단한데요. 힘들었겠네요."
"네, 근데... 옆 연구실에서 다섯 편 냈대요. 교수님이 우리도 더 분발하래요."
그 학생의 얼굴에서 자랑스러움은 사라지고, 불안만이 남아있었다.
멍거는 말했다.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는 절대적 결핍 때문이 아니라고.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큰 건강 문제는 비만이라고. 과거에는 굶어 죽었는데, 지금은 너무 많이 먹어서 아프다고. 그만큼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보지 않는다. 옆 사람이 더 많이 가진 것만 본다.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만 해도 SCI 논문 몇 편이면 교수가 될 수 있었다. 2000년대에는 좋은 저널에 내야 했다. 2010년대에는 Top-tier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들 했다. 그리고 지금, 2020년대. Nature나 Science에 논문을 내도 경쟁에서 탈락한다.
기준은 계속 올라간다. 마치 끝없이 높아지는 계단을 오르는 것 같다. 한 계단 오르면 다음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은 항상 이전보다 높다.
문제는 이 계단에 끝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비교 대상이 제한적이었다. 같은 학교, 같은 학과, 같은 분야의 몇몇 연구자들. 그들과 비교하면 됐다.
지금은 다르다.
ResearchGate를 열면 전 세계 연구자들의 실시간 업적이 보인다. Google Scholar는 h-index 순위를 매겨준다. 트위터에서는 누군가의 Nature 논문 게재 소식이 리트윗된다.
비교의 범위가 우리 학교에서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
이제 우리는 하버드, MIT, 옥스퍼드의 연구자들과 매일, 매 순간 비교당한다. 아니, 스스로를 비교한다.
멍거는 이렇게 말했다.
"Who in the hell needs a rare Rolex watch?"
누가 희귀한 롤렉스 시계가 필요한가? 길거리에서 강도나 당할 뿐인데.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원한다. 다른 사람들이 가졌기 때문에.
연구자들의 롤렉스는 무엇일까? Nature 표지를 장식하는 논문? 수천 회의 인용? 노벨상?
우리는 정말로 그것이 필요해서 원하는 걸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가졌기 때문에 원하는 걸까?
평가를 하다 보면 늘 마주하는 딜레마가 있다.
탁월한 연구자 A가 있다. 10년간 묵묵히 기초 연구를 해왔다. 논문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분야의 토대를 만들었다. 많은 후학들이 그의 연구 위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화려한 연구자 B가 있다. 매년 Top-tier 저널에 논문을 낸다. h-index가 높다.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5년 후, 10년 후 그의 연구가 어떤 의미를 가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평가표는 B를 선택하게 만든다. 측정 가능한 지표들이 모두 B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측정할 수 있는 것만 평가한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한다.
논문 편수: 측정 가능 ✓
인용 횟수: 측정 가능 ✓
연구의 사회적 의미: 측정 불가능 ✗
과학적 호기심의 충족: 측정 불가능 ✗
후학 양성의 가치: 측정 불가능 ✗
연구 과정의 즐거움: 측정 불가능 ✗
그렇게 우리는 측정 가능한 것만 쫓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
"올해 국가 R&D 예산이 30조입니다!"
뉴스에서 장관이 자랑스럽게 발표한다. 엄청난 금액이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왜 더 힘들어 보이는 걸까?
예산이 늘어나면 연구 환경이 좋아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탈락의 고통은 더 커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총량은 늘었지만, 분배 방식은 여전히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상위 10% 과제만 지원합니다."
예산이 10조든 30조든 50조든, 상위 10%만 지원한다면 90%는 떨어진다. 파이의 크기가 커져도, 나눠 먹는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경쟁의 강도는 같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진다. 파이가 커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파이를 노린다. 경쟁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우리 R&D 시스템에는 사실상 단 하나의 성공 모델만 존재한다.
✓ Top-tier 저널 논문
✓ 높은 인용지수
✓ 산업화 성공
✓ 대형 프로젝트 수주
이 네 가지를 모두 갖춰야 '성공한 연구자'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연구의 가치는 정말로 이것뿐일까?
어느 날, 지방 대학의 한 교수님을 만났다. 그는 30년간 지역 중소기업들과 함께 일해왔다. Nature 논문은 없다. 하지만 그가 개발한 기술로 지역 기업 수십 곳이 살아났고, 수백 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저는 실패한 연구자죠."
그가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논문도 별로 없고, 평가도 낮게 나오니까요."
그의 말을 듣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이 사회는, 이 시스템은, 정말로 그를 '실패한 연구자'로 규정하는 게 맞는 걸까?
"융합연구를 하세요."
"공동연구를 권장합니다."
"협력이 중요합니다."
정책 문서는 늘 협력을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평가는 개인 성과 중심이다.
공동 연구? 업적을 참여자 수로 나눈다.
데이터 공유? 남들이 내 데이터로 논문 쓰는 걸 지켜봐야 한다.
후배 육성? 평가 항목에 없다.
시스템은 우리에게 협력하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속삭인다.
멍거는 말했다. 자신은 시기심을 극복했다고. 누가 뭘 가졌든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우리 시스템은 연구자들에게 시기심을 극복하라고 요구하면서, 동시에 시기심을 자극하는 평가를 유지한다.
이것은 모순이다.
핀란드 연구자들은 상대평가를 받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연구는 충분히 좋은가?"
10% 안에 들어야 하는 게 아니다. 절대적 기준을 넘으면 된다. 경쟁자를 이기는 게 아니라, 기준을 넘는 것.
이 작은 차이가 만들어내는 결과는 크다.
연구자들은 옆 사람을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로 본다. 데이터를 나누고,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성장한다.
시기심 대신 협력이, 경쟁 대신 공존이 작동하는 시스템.
우리는 왜 이런 길을 가지 못할까?
그렇게 오랜 시간 많은 연구자들을 만나며, 나는 한 가지 패턴을 발견했다.
불행한 연구자들은 늘 남과 비교했다. 논문 편수를, 인용 횟수를, 연구비 규모를.
행복한 연구자들은 자기 기준이 있었다.
"나는 이 문제를 풀고 싶어요."
"10년 후를 봅니다."
"숫자보다 의미가 중요하죠."
그들은 Nature에 논문을 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h-index가 낮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생기가 있었다. 연구에 대한 열정이 살아있었다.
멍거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시기심을 극복했습니다. 나는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행복한 연구자들은 시기심을 극복한 사람들이었다.
어느 저녁, 연구재단 회의실에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건 뭘까요?"
"논문 생산량 세계 5위 국가?"
"아니면... 연구자들이 행복하게 연구하는 나라?"
침묵이 흘렀다.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진짜 원하는 건 후자라는 것을. 하지만 우리가 측정하고 평가하는 건 전자라는 것을.
"그럼 뭘 바꿔야 할까요?"
누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답은 명확했다. 측정 방식을 바꿔야 한다. 평가 기준을 바꿔야 한다. 성공의 정의를 바꿔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십 년간 굳어진 시스템을, 익숙한 방식을, 누구나 인정하는 기준을 바꾸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꿔야 한다.
멍거는 99세의 나이에 이렇게 말했다.
"희귀한 롤렉스 시계가 뭐가 필요한가?"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하나지만, 여전히 작은 집에 살고, 검소하게 산다.
"나는 행복합니다.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으니까요."
연구자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Nature 논문이 아니라, 의미 있는 연구.
h-index가 아니라, 진짜 기여.
남들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기만의 기준.
그것이 우리가 찾아야 할 행복이 아닐까.
창밖으로 대전의 밤거리가 보인다. 어디선가 연구실 불빛이 환하다. 누군가는 오늘도 밤을 새우며 연구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Nature 논문 때문이 아니라, 연구 자체가 즐거워서.
경쟁에서 이기려고가 아니라, 진짜 문제를 풀고 싶어서.
누군가를 부러워하면서가 아니라, 자기 길에 확신을 가지고.
멍거의 말처럼, 세상은 시기심으로 돌아갈지 모른다.
하지만 혁신은, 진짜 혁신은, 협력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상은,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김현철
AI R&D 전략플래너/한국연구재단(NRF)
기계공학 박사이자 PMP/Agile 전문가로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기획과 평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생성형 AI를 활용해 R&D 기획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과 미래지향적 혁신 모델을 구축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 'ARS AI R&D Spoiler'를 통해 과학을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