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한 것을 최고로 만드는 법

생성형 AI 시대, 더 깊어지는 선택의 늪

"이번 과제 선정, 정말 최선이었을까?"

회의실을 나서며 문득 드는 생각이다. 더 나은 기술이 있었던 건 아닐까. 조금만 더 검토했더라면.

20년 가까이 R&D 현장에서 일하며 깨달은 진실이 있다. 세상에 최고의 선택은 없다. 선택을 최고로 만드는 태도만 있을 뿐이다.


더 많이 벌지만 7배 더 불행한 이유


하버드대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대학생들을 두 부류로 나눴다. 항상 최선을 추구하는 '완벽주의자'와 충분히 좋으면 만족하는 '만족자'.

졸업 후 추적한 결과, 완벽주의자들의 연봉은 만족자보다 20%나 높았다. 하지만 우울증 위험도는 완벽주의자가 44%, 만족자는 6%. 7배 차이였다.

이유는 명확했다. 완벽주의자는 선택하기 전에 모든 선택지를 비교하고, 선택한 후에도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계속 생각한다. '저거 할 걸, 저기 갈 걸, 저 사람이랑 사귈 걸.' 끝없는 '만약에'가 현재 선택의 가치를 좀먹는다.

남들보다 연봉을 더 받아도, 다른 회사에 갔으면 더 받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퇴로가 막혀야 만족이 시작된다


하버드대 다니엘 길버트 교수의 실험이 흥미롭다. 학생들에게 사진을 찍게 한 후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 그룹은 제출하면 끝, 다른 그룹은 일주일 내 변경 가능.

결과는 역설적이었다. 변경 불가 그룹은 자기 사진에 만족했지만, 변경 가능 그룹은 만족도가 낮았다. 실제로 바꾼 학생은 거의 없었는데도.

길버트 교수는 말한다. "행복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제작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는 신기하게도 선택의 퇴로가 막히면 그 선택을 정당화하기 시작한다. '이게 최선이야. 이게 더 좋아.'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진짜로 만족하게 된다. 하지만 번복 가능성이 열려 있으면 뇌는 만족하는 대신 계속 다른 가능성을 탐색한다.

프로젝트 관리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범위를 계속 열어두고 "더 나은 방법이 있을지도"라며 변경하는 프로젝트는 십중팔구 실패한다. 초기에 범위를 확정하고 "이게 우리가 할 일이다"라고 선언한 프로젝트가 성공한다.

결정했으면 퇴로를 차단해야 한다. 그 순간부터 뇌는 그 선택을 정당화하기 시작한다. 다른 대안을 탐색하는 대신, 선택한 길을 최선으로 만드는 데 에너지를 쓰게 되는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은 언제나 아름답다


우리는 선택하지 않은 대안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나리오만 떠올린다.

연구개발 과제도 마찬가지다. A 기술을 선택하고 B 기술을 포기했을 때, B 기술은 머릿속에서 점점 더 매력적으로 변한다. '그때 B를 선택했더라면 획기적인 성과가...'

하지만 실제로는 B 기술도 수많은 난관을 겪었을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그 과정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선택하지 않은 대안은 영원히 검증될 수 없다. 그래서 후회는 평생 간다.

중요한 건 이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아름답게 상상하는 대신, 지금 걷는 길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결정하지 못한다


슈퍼마켓 실험도 시사점이 크다. 무료 시식 코너를 두 곳에 설치했다. 한쪽에는 잼 6종류, 다른 쪽에는 24종류.

사람들은 당연히 24종류 쪽으로 몰렸다. 하지만 실제 구매율은 정반대였다. 24종류 코너는 3%, 6종류 코너는 30%. 10배 차이였다.

선택지가 많으면 뇌에 과부하가 걸린다. "딸기잼이 맛있네. 그런데 블루베리도 있네. 아, 저기 무화과도..." 결국 뇌는 결론을 내린다. "아, 몰라. 나중에 사야지."

신기술 과제를 기획할 때도 마찬가지다. 관련 기술을 몇십 개씩 검토하다 보면 3개월, 6개월이 지나고, 결국 1년이 지나도록 확정하지 못한다. 더 완벽한 선택을 찾겠다는 집착이 오히려 실행력을 죽이는 것이다.


생성형 AI 시대, 더 깊어지는 선택의 늪


요즘 ChatGPT나 Claude를 R&D 기획에 활용한다. AI는 10개, 20개의 대안을 순식간에 만들어낸다.

과거에는 2~3개 안을 만드는 데도 몇 주가 걸렸다. 선택지가 적으니 결정도 빨랐다. 하지만 지금은 AI가 만든 20개 안을 놓고 "더 완벽한 것"을 찾느라 오히려 결정을 못 내린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선택의 늪은 더 깊어진다.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이 '충분함의 기준'과 '선택 후 몰입'이다.

AI가 만든 기획안 중 3번째가 기준을 넘었다면, 거기서 멈춰라. 그리고 그 안을 최고의 기획안으로 발전시키는 데 집중해라. 나머지 9개 안을 계속 들여다보며 "혹시 더 나은 게 있지 않을까" 고민하지 마라.


가장 아름다운 별은 지금 내가 보는 별


천문학자에게 누군가 물었다. "밤하늘의 별 중 가장 아름다운 별은 뭔가요?"

천문학자가 웃으며 답했다. "가장 아름다운 별은 지금 당신이 올려다보는 바로 그 별입니다. 오늘 밤은 그리 길지 않으니까요."

완벽주의자는 최고의 별을 찾는다. 그리고 아무 별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만족자는 고개를 들어 눈에 들어온 별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별이 충분히 아름답다고 느낀다.

R&D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선택을 최고로 만드는 것


완벽한 기술 선택, 완벽한 과제 기획 같은 건 없다. 모든 선택에는 장단점이 있고, 모든 결정에는 불확실성이 따른다.

A 기술을 선택했다면, 그 기술의 한계를 보완하고 강점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B 기술이 더 나았을지도"라며 후회하는 데 에너지를 쓸 게 아니라.

성공적인 프로젝트와 실패한 프로젝트를 가르는 건 초기 선택의 완벽함이 아니다. 선택 이후의 실행력과 몰입도다.

100점짜리 완벽한 제품을 2년 후에 내놓는 것보다, 70점짜리를 3개월 만에 시장에 내놓고 개선하는 게 낫다. 완벽을 추구하며 결정하지 못하는 것보다, 충분히 좋은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최고로 만드는 것이 낫다.

'손해 보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 이제는 이해된다. 완벽주의자의 관점에서는 두 번째로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게 '손해'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손해'가 실은 행복과 성공을 위한 현명한 투자다.

오늘 밤은 그리 길지 않다. 최고의 별을 찾아 헤매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기보다는, 지금 눈앞의 별을 온전히 감상하고 그 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것.

그것이 어쩌면 최고의 선택을 하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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