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를 위해 기술을 만드는가
어제 저녁, 레이 커즈와일의 신간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를 읽다가 문득 손을 멈춘 순간이 있었다.
"기술을 인간의 적이 아닌 인간다움을 확장하는 도구로 바라본다"는 그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20년 넘게 국가연구개발사업을 기획하고 평가해온 나에게는 단순한 철학적 선언이 아니라, 매일 마주하는 현실적 딜레마였기 때문이다.
커즈와일은 2029년에 기계가 인간 수준의 지능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ChatGPT가 등장한 지금, 그 시점이 2026년이나 2027년으로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는 이미 "약한 특이점"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언제 특이점이 올 것인가가 아니라, 그 변화 속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다. 특히 연구개발이라는 미래를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자주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기술을 만드는가?"
지난주 한 연구기관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최신 장비들로 가득한 연구실을 둘러보며 연구책임자가 자신 있게 말했다.
"저희 팀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하죠."
"그런데 이 기술이 실제로 누군가의 삶을 바꿨나요?"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에 그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리고는 "그건... 우리 몫이 아니라 사업화 담당자들이..."라고 답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R&D 시스템의 현주소다. "우리가 이런 기술을 개발했으니 써보라"는 공급자 중심의 사고. 연구자나 기관의 역량에서 출발해서 나중에 활용 방안을 찾는 구조.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는 나름 효과적이었지만, 지금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는 한계가 뚜렷하다.
정말 필요한 건 수혜자의 절실한 문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병원에서 고통받는 환자, 일터에서 안전사고를 걱정하는 근로자, 기후변화로 농사걱정이 태평인 농민들. 그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며칠 전 한 정부 부처 담당자와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박사님, 이 사업으로 당장 논문 몇 편, 특허 몇 건 나올 수 있나요? 실적 보고를 해야 해서요."
매번 듣는 익숙한 질문이지만, 여전히 답하기 어려웠다. 정말 중요한 건 논문과 특허의 개수가 아니라 그 연구가 누군가의 삶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인데 말이다. 조심스럽게 이렇게 답했다.
"지금 당장의 성과지표보다는, 우리가 이 연구를 통해 실현하려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먼저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계획 중심에서 가치 중심으로. 이것이 특이점 시대 R&D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방법론과 경로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만, "왜 이 연구를 하는가?"에 대한 가치 기준만큼은 흔들리면 안 된다.
인간을 위한 과학기술. 단순해 보이는 이 원칙이 실제로는 모든 의사결정의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혜자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가? 기존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프로젝트 초기에 한 번 설문조사하고, 몇 년 후 결과 발표할 때 다시 만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최근 생성형 AI의 등장이 흥미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ChatGPT 같은 도구로 수혜자들과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소셜미디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서 니즈 변화를 파악할 수도 있다. AI가 연구자와 수혜자 사이의 '번역자' 역할을 하면서 소통의 속도와 질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몇 달 전 한 연구팀과 함께 이런 실험을 해봤다. 치매 환자 가족들과 AI 챗봇을 통해 일주일에 한 번씩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어려움과 필요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기존 방식으로는 6개월에 한 번 만날 수 있었던 이들과 이제는 거의 매일 소통할 수 있게 됐다.
연구 방향도 완전히 바뀌었다. 처음에는 '첨단 센서 기반 치매 조기 진단 시스템'을 개발하려 했는데,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건 가족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진단'이 아니라 '일상 속 소통'이었다는 것이다.
요즘 연구실을 방문하면 예전과는 다른 풍경을 자주 본다. 연구자들이 논문과 특허만 쫓기보다는, 실제 사용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매주 화상회의로 환자나 시민들과 만나 프로토타입을 테스트하고 피드백을 받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졌다.
애자일 방법론이 소프트웨어 개발을 넘어 R&D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몇 년짜리 큰 계획보다는 몇 주, 몇 달 단위의 작은 실험들을 반복하면서 점진적으로 답에 가까워지는 방식.
이런 변화가 때로는 연구자들에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연구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왜 자꾸 사람들을 만나라고 하냐"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의미 있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는 게 내 관찰이다.
커즈와일은 2045년에 인간과 기계가 완전히 융합하는 특이점이 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대뇌피질이 클라우드와 연결되고, 기억과 감정까지 디지털화될 수 있는 시대. 상상만으로도 어지러운 미래다.
하지만 그 모든 기술적 가능성보다 중요한 건, 결국 우리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느냐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확장하는 도구가 되도록, 그리고 그 혜택이 소수가 아닌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
최근 한 젊은 연구자가 내게 물었다.
"박사님, 저희가 개발하는 AI 기술이 결국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게 될 텐데, 그래도 계속 연구해야 할까요?"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 질문 자체가 이미 답이야. 그런 고민을 하는 연구자가 만드는 기술이라면, 분명 사람을 위한 기술이 될 거야."
최근 여러 연구현장을 방문하며 흥미로운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AI 도구들이 연구자들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오면서, 오히려 인간 고유의 영역이 더 선명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 분석이나 문헌 검토 같은 반복적 작업은 AI가 담당하고, 연구자들은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이 결과가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와 같은 본질적 고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인간의 판단과 직관, 그리고 가치 선택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특이점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 변화의 한복판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건, 기술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실에서 밤늦게 불을 밝히고 있는 연구자들에게, 정책을 고민하는 공무원들에게, 그리고 미래를 걱정하는 모든 이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기술을 만드는가?
그 답이 명확하다면, 특이점이 와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