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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 목격한 AI의 미래

그리고 우리가 놓친 것들


기계공학 박사이자 AI R&D 전략플래너로 일하며 늘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중국 AI가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발전했을까? 지난주 상하이 월드 AI 컨퍼런스 현장 보고서를 읽으며, 나는 작은 충격에 빠졌다.


예상을 뒤엎은 현장의 풍경


상하이 전시장을 가득 메운 것은 예상대로 1미터 80센티짜리 휴머노이드들이었다. 어설픈 동작으로 음료를 나눠주고, 달걀을 까고, 링에서 스파링을 벌이는 로봇들. 작년 18대에서 올해 60대로 늘어난 로봇들의 물량은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표현을 빌리면, "지난해 많은 중국 AI 스타트업들이 메타의 라마나 오픈AI의 GPT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였던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는 것이다.


이번엔 달랐다. 수백 개 중국 기업들이 자국의 딥시크나 큐원을 기반으로 한 애플리케이션들을 들고 나왔다. 더 이상 미국 모델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560만 달러로 세상을 바꾼 딥시크의 마법


올해 1월 딥시크 R1이 등장했을 때, 전 세계 AI 업계는 잠시 멈춰 섰다. 겨우 560만 달러의 비용으로 훈련된 이 모델이 수백억 달러를 쏟아부은 서구 모델들과 대등한 성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더 충격적인 건 이 모델이 MIT 라이센스로 완전히 공개됐다는 사실이었다.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고, 수정하고, 배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Constellation Research의 레이 왕 분석가의 말이 상황을 정확히 설명한다. "딥시크가 무료이면, 다른 중국 경쟁사들이 같은 기능에 요금을 부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경쟁하기 위해 오픈소스 비즈니스 모델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오픈소스가 중국을 먹어치우고 있다


지푸 AI는 이달 위챗을 통해 2025년을 "오픈소스의 해"라고 선언했다. 과장이 아니었다. UC 버클리의 LMArena 글로벌 순위를 보면 상위권이 중국 모델들로 도배됐다. Kimi K2, MiniMax M1, Qwen 3, DeepSeek R1 변형들이 구글과 메타의 모델들을 제치고 상위를 점령했다.


알리바바의 Qwen 패밀리는 이미 전 세계에서 10만 개 이상의 파생 모델을 만들어냈다. 메타의 라마 커뮤니티를 넘어선 수치다. 딥시크는 OpenRouter에서 24%의 점유율로 구글(37%) 다음 2위를 차지했다.


AI 전문가 카이푸 리는 이렇게 단언했다. "딥시크의 가장 큰 계시는 오픈소스가 승리했다는 것이다."


제재가 오히려 혁신을 부추겼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려고 가한 반도체 제재는 예상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제약이 오히려 중국 기업들로 하여금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것을 달성하도록 만든 것이다.


화웨이의 Ascend 910C 칩이 대표적이다. 엔비디아 H100의 60-80% 성능에 불과하지만, 가격은 절반 수준이다. 더 놀라운 건 SMIC의 7나노 공정 수율이 20%에서 40%로 급격히 개선됐다는 점이다. 상업적으로 생존 가능한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화웨이는 2025년 Ascend 910C 10만 개, 910B 30만 개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작년 910B 20만 개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중국 기업들의 우회 전략도 놀랍다. 제재 시행 전 수만 개의 A100 칩을 미리 비축했고, 동남아시아 중간업체를 통해 GPU를 조달하고 있으며, 멕시코부터 말레이시아까지 전 세계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1조 달러 규모의 국가적 베팅


중국 정부의 AI 투자 규모는 압도적이다. 2025년에만 98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며, 이는 작년 대비 48% 증가한 수치다. 정부 지원만으로도 560억 달러에 달한다.


더 장기적으로는 20년간 1조 3800억 달러 규모의 "국가벤처캐피털 가이드 펀드"를 조성했다. AI, 양자기술, 수소에너지 저장 등 첨단 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지방정부 간의 경쟁이 혁신의 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안후이성,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이 AI 허브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자연스럽게 생태계가 발전하고 있다.


공장이 곧 실험실인 나라


중국 AI의 진정한 강점은 실험실이 아닌 공장에서 나온다. 특히 선전에서는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공급망이 물리적으로 인접해 있어 프로토타이핑부터 양산까지의 사이클이 극도로 빨라진다.


모델 개발과 배포가 분리되지 않는다. 연구와 응용이 공간적, 제도적으로 융합되어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피드백 루프가 실시간으로 작동한다.


중국이 로봇 AI에서 유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방대한 로봇 공급망과 무수한 공장이라는 완벽한 테스트베드를 갖고 있는 것이다. 유니트리의 770만원짜리 휴머노이드는 이런 생태계에서만 가능한 가격 혁신이다.


보이지 않는 경쟁력: 에너지 인프라


AI 경쟁에서 간과되기 쉬운 것이 전력 인프라다. 중국의 에너지 확장 능력은 정말 압도적이다. 2024년에만 429GW의 신규 발전 용량을 추가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미국이 추가한 용량의 15배다.


중국의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20년 38GW에서 2025년 76GW로 두 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빠른 전력망 확장 능력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6개월, 그 의미심장한 격차


전문가들은 현재 중국 AI 모델이 미국보다 3-6개월 뒤처져 있다고 평가한다. 언뜻 안심할 수 있는 수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격차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고, 일부 영역에서는 이미 역전됐으며, 새로운 알고리즘 돌파구가 나타나면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중국이 이제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폐쇄형 모델로 수익성을 추구하는 동안, 중국은 오픈소스로 생태계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한 벨기에 AI 전문 변호사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중국은 AI와 로봇공학을 발전시키고 있지만, 유럽은 규제에 매우 힘쓰고 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이 모든 변화를 지켜보며 든 생각은 하나였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중국의 AI 생태계는 이제 단순한 기술 추격을 넘어 시스템적 혁신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그들은 더 이상 기술 개발자가 아니라 생태계 설계자가 되었다.


우리도 선택해야 한다. 중국식 물량 공세나 미국식 폐쇄형 모델을 그대로 따라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만의 차별화된 길을 찾을 것인가.


바이오 AI, 소재 AI, 로봇 AI 등 특화 도메인에서의 글로벌 리더십. K-실증 프로그램을 통한 제조업 연계 강화. 중소기업 AI 도입 지원을 통한 저변 확대. 반도체 공급망 다변화와 인프라 선제 투자.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문제는 시간이다. 중국의 시계는 이미 우리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상하이 컨퍼런스 보고서를 덮으며,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기술의 미래는 실험실이 아니라 생태계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생태계를 설계하는 자가 미래를 주도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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