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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정규분포의 긴 꼬리에서 만나는 진짜 혁신


지난주 늦은 밤, 유튜브에서 우연히 발견한 영상 하나가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정보 이론으로 창의성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는데, 20년 넘게 R&D 기획 일을 하면서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관점이었다.


영상 속 박사는 간단한 정규분포 그래프를 그려놓고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창의성은 여기, 긴 꼬리 끝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프의 중심부가 아닌, 3-6 표준편차 떨어진 그 외로운 끝자락 말이다.


에펠탑을 향해 던져진 돌멩이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에펠탑. 오늘날 파리의 상징이 된 이 건물이 처음 세워졌을 때 파리 시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항의했다. "저런 흉물이 우리 도시에 웬 말이냐!"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은 탄원서를 내기까지 했다.


왜 그랬을까? 에펠탑은 당시의 미적 기준에서 너무나 벗어난, 통계적으로 말하면 극단적인 '이상치'였기 때문이다. 모네의 인상주의 그림도,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도 마찬가지였다. 초연 당일 관객들이 극장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100년이 지난 지금 이 모든 것들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상식'이 되었다는 점이다. 한때 정규분포의 끝자락에 있던 이상치들이 이제는 중심부로 이동한 것이다.


AI는 왜 뻔한 이야기만 할까


요즘 ChatGPT나 Claude 같은 AI에게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해달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대개는 이미 알려진, 안전한 답변들이 나온다. 바이오와 AI의 융합을 묻면 원격진료나 의료영상 분석 이야기가 나오고, 양자컴퓨팅의 미래를 물어도 예측 가능한 대답들뿐이다.


이유가 있다. 현재의 AI들은 인터넷의 모든 텍스트를 학습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통계적 중심부만을 재생산하도록 설계되었다. 강화학습이라는 과정에서 "이상한" 답변들은 '환각'으로 분류되어 걸러진다. 안전하고 일반적인 답변을 하도록 길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진정한 혁신이 안전하고 일반적인 곳에서 나온 적이 있던가?


융합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것들


내가 하는 일은 국가R&D 기획이다. 새로운 기술 영역을 발굴하고, 미래의 연구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다. 20년간 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가장 흥미진진한 발견들은 항상 경계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바이오와 반도체가 만날 때, 양자역학과 인공지능이 충돌할 때, 나노기술과 의료가 융합될 때. 이런 접점들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돌파구가 나온다. 하지만 현재의 AI로는 이런 '경계의 창의성'을 포착하기 어렵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조차 자신의 영역 안에서만 생각하기 쉬운데, 통계적 중심부에서 훈련된 AI가 어떻게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겠는가?


50억 개의 GPU가 가져올 변화


그런데 최근 흥미로운 소식들이 들려온다. 일론 머스크는 5천만 개의 H100 GPU를 확보하겠다고 했고, 샘 알트만은 1억 개의 GPU를 목표로 한다고 발표했다.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다.


이 정도 컴퓨팅 자원이 확보되면 무엇이 가능해질까? 기존의 AI들이 모두 '안전한 중심부'에서 활동했다면, 이제는 의도적으로 '위험한 가장자리'에서 작동하는 AI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창의성 전문가' 모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정규분포의 긴 꼬리에서 살면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조합들을 제안하는 AI 말이다. 물론 대부분은 말이 안 되는 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 중 일부는 다음 세대의 에펜탑이 될지도 모른다.


내일의 R&D를 상상하며


며칠 전 팀 회의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한 동료가 물었다. "그런 AI가 나오면 우리는 뭘 하게 되는 거예요?"


나는 이렇게 답했다. "더 재미있어질 것 같은데요."


미래의 R&D 기획은 아마 이런 모습일 것이다. AI가 수백 개의 기상천외한 융합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우리는 그 중에서 다이아몬드를 찾아내는 일을 한다. 에펀탑의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이 그랬듯이, 세상이 미쳤다고 할 만한 아이디어 중에서 진짜 미래를 선별해내는 것이다.


물론 위험하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혁신이 원래 그런 것 아닌가? 안전지대에서는 개선만 있을 뿐, 혁신은 없다.


긴 꼬리 끝에서의 만남


그날 밤 영상을 보고 난 후, 나는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지금까지 내가 기획한 수많은 연구과제들 중에서, 진짜 '긴 꼬리'에 있었던 것이 몇 개나 될까?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은 안전한 중심부에 있었던 것 같다. 예산을 받기 위해서, 성과를 보장하기 위해서, 설득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해보고 싶다. 미래의 어느 날, AI '창의성 전문가'가 제안하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 중에서 다음 세대의 에펜탑을 발견하는 일.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뛴다.


혁신은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가장자리는 생각보다 외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곧 우리와 함께 그곳을 탐험할 AI 동반자들이 나타날 테니까.


어젯밤, 다시 그 영상을 보며 나는 다음 프로젝트 기획안에 '긴 꼬리 탐험'이라는 섹션을 추가했다. 동료들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다. 혁신은 원래 그런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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