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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T-5가 온다, 연구실의 풍경이 바뀐다

기계공학 박사의 눈으로 본 AI 혁명과 연구개발의 미래

어제 저녁, 오픈AI의 GPT-5 발표를 보며 20년 전 첫 논문을 쓰던 때가 떠올랐다. 두꺼운 학술지들을 쌓아놓고,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밤새 읽던 그 시절. 그때만 해도 한 편의 논문을 쓰기 위해 수백 편의 선행연구를 찾아 읽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 GPT-5를 보니, 그 모든 것이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생에서 박사까지, 3년 만의 대변신


GPT-3가 처음 나왔을 때를 기억한다. "와, 이거 정말 신기하네"라며 호기심으로 만져봤던 그 모델. 당시엔 고등학생 정도의 지식 수준이라고 했다. 실제로 간단한 질문엔 답하지만, 조금만 복잡해지면 헛소리를 하기 일쑤였다.

GPT-4가 나오면서 "이제 대학생 수준이네"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전문적인 연구 업무에 쓰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그런데 GPT-5는 다르다. 발표에서 "모든 분야의 PhD급 전문가"라고 했는데, 과장이 아닌 것 같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생각이 필요한 만큼만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간단한 건 바로 답하고, 복잡한 건 충분히 사고한 후 답한다. 마치 진짜 전문가와 대화하는 느낌이다.


코딩하는 AI, 5분 만에 웹사이트를 만들다


발표 중 가장 놀라웠던 장면은 라이브 코딩 데모였다. 연구자가 "CFO용 대시보드를 만들어달라"고 하니, 5분 만에 완전한 웹사이트가 뚝딱 만들어졌다. 그것도 단순한 페이지가 아니라 인터랙티브한 차트와 데이터 필터링 기능까지 들어간 본격적인 대시보드였다.

"이거 만들려면 며칠은 걸릴 텐데..."라며 중얼거리던 연구자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나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연구실에서 프로토타입 하나 만들려면 외부 개발자에게 의뢰하거나, 학생들이 몇 주씩 씨름해야 했는데, 이제는 연구자 혼자서도 아이디어를 바로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연구자의 하루가 바뀐다


아침 9시, 연구실에 출근한 박사과정 학생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예전이라면:

논문 검색 사이트에서 키워드로 뒤적뒤적

수십 편의 논문을 다운받아 하나씩 읽기

중요한 부분에 형광펜 칠하고 메모

저녁 늦게까지 읽어도 10편 정도가 한계

GPT-5 시대라면:

"최근 3년간 나노소재 관련 연구 동향을 분석해줘"

수천 편의 논문이 순식간에 분석되어 핵심 트렌드 정리

연구 갭과 향후 방향성까지 제시

남은 시간은 창의적 아이디어 도출에 집중

같은 하루지만,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생산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국가 연구개발의 판도가 바뀐다


20년간 국가연구개발사업 기획과 평가 일을 해오면서 늘 아쉬웠던 점이 있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연구자가 있어도,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설득력 있게 제안하는 능력 때문에 좌절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특히 젊은 연구자들은 아이디어는 참신한데, 선행연구 조사나 연구계획서 작성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글쓰기는 잘하지만 창의성이 부족한 연구자가 좋은 과제를 따내는 아이러니도 있었다.

GPT-5 시대에는 이런 불균형이 해소될 것 같다. 정말 중요한 건 아이디어와 통찰력이고, 나머지는 AI가 도와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격차도 생길 것이다. AI를 잘 활용하는 연구자와 그렇지 못한 연구자, AI 인프라가 잘 갖춰진 기관과 그렇지 못한 기관 사이의 차이가 급격히 벌어질 수 있다.


걱정되는 것들


모든 변화가 그렇듯, GPT-5도 장밋빛 미래만 있는 건 아니다.

가장 걱정되는 건 '생각하는 근육'이 퇴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걸 AI에게 물어보는 습관이 생기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약해질 수 있다. 마치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다 보니 길을 외우지 않게 된 것처럼 말이다.

연구윤리 문제도 복잡하다. AI가 분석한 결과를 어디까지 내 연구 성과로 볼 수 있을까? 학술지에 논문을 낼 때 AI 기여도를 어떻게 표기해야 할까? 아직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존 연구자들의 적응 문제가 있다. 30-40년 경력의 시니어 연구자들이 갑자기 AI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변화의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어떻게 준비하느냐다.

개인 차원에서는: 먼저 GPT-5를 직접 써보자.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써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내 연구 분야의 간단한 질문부터 시작해서, 점점 복잡한 작업을 맡겨보자.

그리고 AI와 협업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좋은 질문을 하는 법,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법, AI의 한계를 파악하는 법 등 새로운 스킬셋이 필요하다.

기관 차원에서는: 연구자들을 위한 AI 활용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AI 도구들을 연구 인프라에 통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연구윤리 가이드라인을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 AI 활용의 투명한 공개, 적절한 기여도 표기, 연구 진정성 유지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10년 후, 연구실은 어떤 모습일까


10년 후 연구실을 상상해본다.

연구자는 아침에 출근해서 AI 연구 파트너와 대화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 나온 논문 중에 우리 연구와 관련된 게 있나?" "우리 실험 데이터에서 놓친 패턴이 있을까?"

실험 설계도 AI가 도와준다. 수많은 변수들을 고려해서 최적의 실험 조건을 제안하고, 예상 결과와 그에 따른 해석 방향까지 미리 보여준다.

논문 작성은? 연구자가 핵심 아이디어와 인사이트를 정리하면, AI가 그것을 학술적 글쓰기 형식으로 다듬어준다. 참고문헌 정리나 그래프 작성 같은 반복 작업은 모두 자동화된다.

연구자는 정말 중요한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창의적 사고, 문제 정의, 연구 방향 설정, 결과 해석... 이런 본질적인 연구 활동에 시간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무리하며


GPT-5 발표를 보며 든 생각은 "드디어 왔구나"였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시켜주는 진정한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시대 말이다. 연구자가 창의적 사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나머지는 AI가 도와주는 그런 시대.

물론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고, 시행착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잘 활용하는 사람과 기관이 미래를 이끌어갈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기회로 만들어보자. GPT-5와 함께 만들어갈 연구개발의 새로운 미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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