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사라진다고?
요즘 주변에서 AI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취업이 어려워서 컴공 박사라도 해볼까 하는 후배들, AI 개발자로 전향을 생각하는 동료들... 메타가 AI 연구원들에게 수억 원을 제시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나도 늦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그런데 지난주 실리콘밸리에서 나온 한 마디가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구글에서 첫 번째 생성 AI팀을 만든 자드 타리피가 비즈니스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AI를 위해 박사 학위까지 따는 것에 반대한다."
AI 박사 출신이 왜 이런 말을 할까?
42세인 타리피는 2012년에 AI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런 그가 박사 과정을 "이상한 사람만이 해야 하는 시련"이라고 표현했다. 인생의 몇 년을 엄청난 고통 속에서 보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나도 기계공학 박사 과정에서 정말 많이 힘들었다. 밤새워 실험하고, 논문 쓰느라 머리를 싸매고... 그때는 정말 "왜 이런 것을 하고 있지?" 싶었다.
하지만 타리피의 진짜 메시지는 따로 있었다.
"박사 학위를 마칠 때쯤이면 AI 자체는 사라질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인터넷을 생각해보자. 90년대 후반에는 "인터넷이 뭔가?" "홈페이지는 어떻게 만드는가?" 이런 것이 화두였다. 지금은? 인터넷 자체보다는 유튜브, 넷플릭스, 배달앱 같은 서비스가 더 중요하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터치스크린 기술이 대단하다!" 했는데, 지금은 그 위에서 돌아가는 앱들이 우리 삶을 바꿨다.
AI도 그런 길을 걸을 것이라는 얘기다. 몇 년 뒤에는 'AI 기술 자체'보다 'AI를 활용한 무언가'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실제로 요즘 주요 AI 기업들의 움직임을 보면 이미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오픈AI의 GPT-5는 혁신적인 기술로 경쟁자를 압도하려는 의도보다 사용성, 즉 코딩과 에이전트 기능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큰 감흥을 주지 못했지만, 기업 채택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구글 순다르 피차이 CEO도 작년 말 내부 회의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내년에는 소비자 측면에서 제미나이를 확장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초점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모델 성능에서 항상 1위가 될 필요는 없지만, 제품으로서는 동급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 자체보다는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할 만한 것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을 기획하고 평가하면서 이런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딥러닝 알고리즘 개발" "AI 기반기술 연구" 같은 제안서들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제조현장에 AI 적용을 통한 불량품 검출" "병원 의료영상의 AI 분석" "물류창고 지능형 로봇 시스템" 같은 구체적인 응용 연구들이 훨씬 많다. 그리고 실제로 성과도 더 잘 나온다.
프로젝트 관리를 하다 보니까 알게 되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현장에서 사용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는 빠르게 만들어서 빠르게 검증하는 것이 답이다.
타리피가 한 말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나는 AI 박사지만, 최신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모른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할지만 알면 된다."
이 말이 정말 와닿았다. 나도 기계공학 박사지만 모든 기계를 다 설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에게 물어볼지, 어떤 방법을 써볼지는 안다.
AI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딥러닝 알고리즘을 바닥부터 다 만들 줄 알 필요는 없다. 대신 자신이 가진 전문성에 AI를 어떻게 접목할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픈AI 그렉 브록먼 사장도 최근 팟캐스트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특정 분야를 이해하고 전문성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며 헬스케어를 예로 들었다.
맞는 말이다. 의사가 AI를 활용하는 것과 AI 전공자가 의료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아무래도 의사가 만든 것이 더 실용적일 것이다.
타리피도 "생물학 분야 AI 같은 틈새시장에 뛰어들라"고 조언했다. 아직 AI가 충분히 침투하지 않은 전문 영역에서 자신의 전문성과 AI를 결합하는 것이 기회라는 뜻이다.
"확신이 없으면 무조건 '아니요'라고 하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집중하라."
타리피가 젊은이들에게 한 마지막 조언이다. "더 빨리 움직이고, 더 많이 배우고, 변화에 더 잘 적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말을 들으니까 예전 생각이 났다. 박사 과정 할 때는 완벽한 논문을 쓰려고 몇 달씩 고민했는데, 실무에서는 일단 만들어보고 안 되면 개선하는 식으로 일한다. 애자일 방법론을 배우고 나서는 더욱 그렇게 되었다.
AI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완벽하게 이해하고 시작하려고 하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일단 해보면서 배우는 것이 낫다.
최근에 주변에서 "AI 공부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하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는 "파이썬부터 배우세요" "수학 공부하세요" 이렇게 답했는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본인이 잘하는 분야에 AI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부터 생각해보세요."
회계사라면 회계 업무에 AI를 어떻게 활용할지, 디자이너라면 디자인 작업에 AI를 어떻게 접목할지 말이다.
타리피의 말이 맞다. "AI를 얼마나 잘 아느냐"보다 "AI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가 온 것 같다. 박사 학위보다는 응용이 답이라는 그의 조언이 점점 설득력 있게 들린다.
몇 년 뒤에는 AI 전문가가 아니라, AI를 잘 활용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주목받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