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직접 나선 이유

진짜 성장을 향해

9월의 두 번째 월요일, 서울스퀘어 17층에서 50여 명이 모였다. 자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정부 부처 장관들, 대학 교수들, 기업 대표들, 그리고 연구소 전문가들. 하지만 이들을 한자리에 모은 공통의 키워드는 하나였다. 인공지능.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겠다고 나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미국과 중국이 AI를 두고 벌이는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서,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구경꾼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인가.


숫자 뒤에 숨은 진실


2026년 AI 예산 10조 1천억원. 이 숫자가 발표되었을 때 회의실은 잠시 조용해졌다. 누군가는 놀랐고, 누군가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의도였다.


한국이 지금까지 IT 강국이라고 불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IT 산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브로드밴드 인프라를 구축하고, 벤처 기업을 지원했다. 그 결과 삼성과 LG가 글로벌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고,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플랫폼 기업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지금의 AI 투자는 그때와 같은 맥락이다. 단순히 돈을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임문영이라는 선택


부위원장으로 임문영 미래전환 대표가 선택된 것도 의미가 있다. 그는 정부 관료가 아니다. 민간에서 혁신을 주도해온 사람이다. 상근직으로 임명된 것은 이 위원회가 단순한 자문기구가 아니라 실제 변화를 만들어내는 실행 조직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부 조직의 가장 큰 문제는 부처 간 칸막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술 개발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 적용에, 교육부는 인재 양성에 각각 집중한다. 하지만 AI는 이런 경계를 허물어버린다. 기술과 산업과 교육이 하나로 연결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8개의 렌즈


위원회가 구성한 8개 분과는 마치 AI를 바라보는 8개의 렌즈 같다. 기술혁신·인프라, 산업 AX·생태계, 공공 AX, 데이터, 사회, 글로벌 협력, 과학·인재, 국방·안보. 각각의 렌즈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AI의 가능성과 위험을 포착한다.


신진우 KAIST 교수가 이끄는 기술혁신·인프라 분과는 AI의 기초 체력을 담당한다. GPU 확보부터 데이터센터 구축까지, AI가 작동할 수 있는 물리적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조준희 한국AI·SW협회장의 산업 분과는 이 기술이 실제 비즈니스로 연결되는 다리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유재연 한양대 교수가 맡은 사회 분과다. AI가 가져올 일자리 변화, 교육 혁신, 그리고 사회적 격차 해소까지, 기술이 사람의 삶에 미칠 영향을 다룬다. 기술 발전과 사회적 수용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중요한 역할이다.


집단지성의 실험


50명이 모인 이 위원회는 한국 사회의 집단지성을 시험하는 실험장이기도 하다. 정부 관료, 학계 전문가, 산업계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여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각자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국가적 비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역사를 돌아보면, 한국의 큰 변화는 항상 이런 집단지성에서 시작되었다.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 1980년대 반도체 투자, 1990년대 정보화 정책. 모두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쳤을 때 가능했던 일들이다.


12개의 전략, 하나의 꿈


위원회가 제시한 12대 전략분야는 결국 하나의 꿈을 향해 있다. AI 3대 강국으로의 도약. 미국의 기술력, 중국의 시장 규모에 맞서 한국만의 강점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한국의 강점은 무엇일까. 빠른 의사결정, 높은 교육 수준, 그리고 무엇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저력이다. IMF 위기 이후 IT 강국이 되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스마트폰 시대를 선도했다. 이번에도 AI 위기를 AI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


진짜 성장을 향해


'진짜 성장', '국민 보편적 삶의 질 개선', '인류·글로벌 사회 기여'. 위원회가 내건 비전의 키워드들이다.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AI가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걱정이 많다. 하지만 역사는 기술 발전이 결국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산업혁명 이후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사무직으로 이동했고, 정보화 혁명 이후 새로운 직업들이 무수히 생겨났다. AI 혁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2025년 11월을 향해


위원회는 올해 11월까지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완성하겠다고 했다. 3개월이라는 시간이 길지는 않다. 하지만 때로는 급하게 가는 것이 정답일 때도 있다. 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1년 늦는 것이 10년 늦는 것과 같을 수도 있다.


서울스퀘어 17층에서 시작된 이 여정이 어디로 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한국이 더 이상 지켜보는 위치에 머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AI로 바꾸겠다는 약속. 이제 그 약속을 지켜나가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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