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전략플래너가 본 카카오톡 AI 전략의 진짜 의미
지난주 카카오의 AI 발표를 보면서 무릎을 탁 쳤다. "아, 이거구나."
AI 회사들이 앞다투어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는 상황에서, 카카오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고 기존 것에 가치를 더하는 방식. 혁신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접근법이었다.
김세훈 부사장의 인터뷰를 들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거였다.
"내가 친구랑 '7시에 여의도 가야 해'라고 대화했을 때, AI가 옆에서 보고 있다가 '캘린더에 넣어줄까?'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여기에 중요한 통찰이 숨어있다. 사용자는 새로운 앱을 배울 필요가 없다. 새로운 습관을 만들 필요도 없다. 그냥 평소처럼 친구와 대화하기만 하면 된다. AI가 알아서 도움을 준다.
이게 바로 변화 관리(Change Management)의 핵심이다. 사람들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기존 습관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카오는 그 습관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가치를 얹었다.
더 흥미로운 건 기술적 선택이었다. 카카오는 온디바이스 AI를 선택했다.
"폰 안에서만 동작해서 카카오 직원도 몰라요."
이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AI 시대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프라이버시 아닌가. 내 대화를 누군가 보고 있다는 불안감. 카카오는 이 문제를 기술로 해결했다.
물론 성능의 타협은 있다. 폰 안에 들어갈 수 있는 AI 모델은 서버에 있는 거대한 모델보다 능력이 제한적이다. 하지만 카카오는 이 선택을 했다. 성능보다 신뢰를 택한 것이다.
인터뷰에서 김세훈 부사장이 가장 솔직했던 순간이 있었다.
"결국 생태계가 중요해요. 카카오 혼자서는 고객이 원하는 모든 서비스를 다 제공할 수 없거든요."
카카오가 아무리 큰 회사라고 해도 한계가 있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배달 서비스도 없고, 항공 예약도 못하고, 쇼핑몰도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다른 회사들과 협력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다른 회사들은 자신의 고객을 카카오에게 빼앗기기 싫어한다. 쿠팡이 카카오톡에서 주문받기를 원할까? 네이버가 카카오 검색에 자신의 서비스를 연결하고 싶을까?
"잘 협상을 해야겠죠"라고 말하는 김세훈 부사장의 표정에서 이 문제의 복잡함이 느껴졌다.
카카오가 추구하는 건 단순한 질문-답변 AI가 아니다. 실행하는 AI다.
"점심 먹고 싶어"라고 하면 식당을 추천해주는 게 아니라 예약까지 해주는 것. 정보를 주는 게 아니라 일을 끝내주는 것. 이게 에이전트 AI의 핵심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ChatGPT와의 협력 방식이다. 카카오는 ChatGPT를 경쟁자로 보지 않고 협력 파트너로 봤다. 카카오톡 안에 ChatGPT 탭을 만들어서, ChatGPT의 능력과 카카오의 서비스를 연결했다.
"선물하기 추천해줘"라고 ChatGPT에게 말하면, ChatGPT가 답하고 카카오 선물하기로 바로 연결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ChatGPT 사용자도 카카오 서비스를 쓰게 되고, 카카오 사용자도 ChatGPT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
이런 카카오의 접근법은 국가연구개발사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AI 도구를 배워서 써달라"고 하는 대신, "기존에 쓰시던 도구에서 AI가 자동으로 도와드린다"고 하면 어떨까. 연구자의 워크플로우는 그대로 두고, 그 과정에서 AI가 문헌 요약, 실험 설계 최적화, 데이터 분석 등을 자연스럽게 도와주는 것이다.
혁신이 반드시 기존 것을 뒤엎어야 하는 건 아니다. 기존 것을 더 좋게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강력한 혁신 전략이다.
결국 이건 플랫폼 전쟁이다. 구글은 검색에서, 애플은 디바이스에서, 카카오는 메신저에서 AI의 출발점이 되려고 한다.
카카오가 말하는 "하루 50번 메시지"가 핵심이다. 사람들이 가장 자주 쓰는 서비스에서 AI를 시작하는 것. 그곳이 바로 새로운 인터넷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생태계 구축의 어려움, 성능과 프라이버시 사이의 균형, 다양한 서비스 간의 조율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하지만 카카오가 보여준 방향성은 분명하다. 기존에 가치를 더하는 혁신. 이것이야말로 AI 시대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진짜 혁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