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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정치다

머스크 vs 트럼프, 권력 구조의 새로운 패러다임

2025년 새해 벽두부터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백악관의 주인인 도널드 트럼프와 세계 최고 부자 일론 머스크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두 거물의 개인적 갈등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깊고 복잡한 의미가 숨어있다. 이는 21세기 권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순간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다. 대선 캠페인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고,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임명되어 연방정부 개혁의 칼날을 휘두르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트럼프와 정면충돌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트럼프의 "One Big Beautiful Bill"(대형 세금 감면 및 지출 법안)을 둘러싼 견해차였지만, 실상은 훨씬 근본적인 문제였다. 바로 누가 진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였다.


트럼프가 머스크 기업들에 대한 정부 계약 취소를 암시하자, 머스크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SpaceX Dragon 우주선을 즉시 퇴역시키겠다"는 폭탄선언이 그것이었다. 비록 몇 시간 후 해당 포스트를 삭제하고 "퇴역시키지 않겠다"고 정정했지만, 이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 왜냐하면 이 한 마디가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우주계획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는 현실적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Dragon 우주선은 현재 미국 우주비행사들을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수송하는 유일한 미국산 우주선이다. 2011년 우주왕복선이 퇴역한 후, 미국은 거의 10년간 러시아의 소유즈 우주선에 의존해야 하는 굴욕을 겪었다. 그 긴 암흑기를 끝내고 2020년 마침내 미국이 자체 우주 수송능력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SpaceX의 기술 덕분이었다. 보잉이 개발 중인 CST-100 스타라이너는 여전히 기술적 문제로 상업운항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만약 머스크가 정말로 Dragon을 퇴역시킨다면, 미국은 다시 러시아에 의존하거나 아예 유인 우주임무를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러시아 의존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정치적 반발이 너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머스크가 Dragon 퇴역을 언급했을 때 NASA에서는 극도로 당황했다고 전해진다. 한 민간기업 CEO의 한 마디가 국가 우주계획 전체를 좌우할 수 있다는 현실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머스크의 영향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구 저궤도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그의 사업, Starlink 위성인터넷이야말로 현대전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게임체인저다. 군사 조직에서는 전통적으로 인사, 정보, 작전 순으로 우선순위를 매긴다. C1, C2, C3라고 불리는 이 체계에서 정보가 작전보다 상위에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작전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고, 정보는 곧 통신이며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벌어졌다. 우크라이나군이 크림반도 인근에서 해상 드론을 이용해 러시아 흑해함대를 타격하려던 작전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머스크가 해당 지역의 Starlink 연결을 차단해버렸고, 드론들은 통신이 두절되면서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머스크는 Starlink가 공격이 아닌 방어 목적으로만 사용되기를 원한다고 설명했지만, 그의 개인적 판단 하나가 전쟁의 흐름을 바꿔버린 것이다.


이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한 민간인의 결정이 국가 간 전쟁은 물론 세계사의 흐름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머스크는 사실상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실질적인 전쟁 지휘권을 쥐고 있었던 셈이다. 정부도 군대도 아닌, 한 기업가가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더 큰 틀에서 봐야 한다. 미국과 중국은 총칼을 들이대지 않을 뿐, 이미 전쟁에 가까운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엔비디아 반도체 수출 전면 차단, 중국의 희토류 수출 중단 등이 그 증거다. 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과 에너지 인프라는 미국이 가진 핵심 전략 자산 중 하나다.


중국이 자율주행 분야에서 규제를 전면 철폐하며 파격적인 지원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율주행은 단순한 교통 혁신이 아니다. 이는 기술 안보 그 자체다. 전 국민이 운전에서 해방되어 그 시간을 다른 생산적인 일에 투입할 수 있다면, 국가 차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 향후 수십 년간 경제 주도권을 결정할 핵심 기술인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트럼프는 아마도 복잡한 심경일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국력이 곧 기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AI 규제를 철폐하고 팔란티어 같은 첨단 기업들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가 미국이 가진 가장 중요한 전략 자산이라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미국의 대통령이기도 하다. 한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이토록 강력한 협상 카드를 쥐고 있다는 현실이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시간의 비대칭성이다. 트럼프는 정치인이다. 4년 후면 백악관을 떠날 수도 있다. 하지만 머스크는 기술자다. 그가 구축한 기술 생태계는 훨씬 더 오래갈 수 있다. 머스크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이토록 자신감 있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모든 상황을 관통하는 핵심은 권력의 정의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술 위에 정치와 법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허울뿐인 말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이 곧 정치였음을 알 수 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개발되자 종교개혁이 가능해졌다. 지식의 독점이 깨지면서 기존 권력구조가 뿌리째 흔들렸다. 와트의 증기기관은 농경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로 바꿔놓았다.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원자폭탄은 과학기술이 국가권력과 직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였다. 우리는 지금도 그 원자폭탄 기술이 만든 세계질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머스크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는 단순히 부자 기업가가 아니다. 21세기형 권력을 구현하는 새로운 형태의 지배자다. 그의 권력은 선거로 얻은 것도, 법으로 부여받은 것도 아니다. 순전히 기술을 통해 획득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기술적 권력은 때로는 전통적인 정치권력보다 더 강력하고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물론 머스크가 정말로 Dragon 우주선을 퇴역시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 감정적이고 극단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그런 카드를 쥐고 있다는 사실 자체다.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해칠 수 있는 능력이다. 머스크는 분명히 미국 정부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기술정치(Techno-Politics)의 출현을 의미한다. 머스크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기업 이익이 아니다. 그의 궁극적 목표는 "미국이 파산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재 미국의 재정 상태가 계속 악화되고 있으니, 그는 기술과 정치를 결합한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권력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형되는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전통적인 정치권력과 새로운 기술권력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으며, 때로는 기술이 정치를 압도하는 상황까지 나타나고 있다. 머스크와 트럼프의 갈등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미래는 기술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미래가 이미 시작되었다. 일론 머스크라는 한 개인을 통해 우리는 그 미래의 모습을 미리 엿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분명히 흥미진진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운 시대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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