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에게는 일론 머스크가 없을까

다음 일론 머스크는 어디서 나올까

최근 AI 전문가와의 대담을 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이 왜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그는 전기차로 자동차 산업을 뒤집었고, 로켓을 다시 착륙시켜 우주 산업의 판도를 바꿨으며,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 한다.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고, AI 모델 순위 글로벌 3위이며, 기술력으로는 결코 뒤처지지 않는데 말이다.


2003년, 동아리처럼 시작된 꿈


2003년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를 시작했다. "동아리처럼 거의 시작했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초라한 출발이었다. 우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로켓을 다시 착륙시키면 좋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를 나눴다. 당시 NASA의 기득권 과학자들은 비웃었다. "그런 아이디어는 70년대부터 있었어. 헛소리야."


하지만 22년이 지난 지금, 스페이스X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영역에 도달했다.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이 먼저 창업했지만, 지금은 한참 뒤처져 있다.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끈기였다. 22년째 탑다운으로 자원을 투자하며 비전을 밀어붙인 리더십이었다.


실패를 자산으로 만드는 사회


일론 머스크의 여정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테슬라는 모델3를 만들 때 캘리포니아 프리몬트 공장에서 부지가 부족해 텐트를 치고 생산했다. 스페이스X는 여러 차례 파산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는 이 실패들을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실패한 경험"을 자산으로 평가했다.


한국은 어떤가? 한 번의 실패가 낙인이 되는 사회다. 재기를 위한 금융 시스템도, 법률적 지원도 취약하다. 젊은 인재들에게 "안정적인 대기업 취업"이 여전히 최고의 목표로 제시된다. 20년 동안 우주 개척이라는 불확실한 꿈을 좇는다? 그건 무모함이지 도전이 아니다.


구글의 전 CEO 에릭 슈미트는 스탠포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만 박사들은 TSMC 공장 바닥에서 밤을 새운다. 중국은 996(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근무)으로 올인한다. 미국 애들은 8시에 와서 5시에 퇴근할 생각만 하지 않나?" 한국은? 우리는 어디쯤 서 있을까?


인재가 떠나는 이유


최근 한국의 인력 유출 문제가 심각하다. 엔비디아에 가면 삼성전자보다 스톡옵션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고, 삶의 질이 달라진다.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에서 CTO를 맡고 있는 사람도 한국계 미국인이다. 최근 한국에서 강연도 했다는 그 팀의 위용은 대단하다. 바쁜 와중에도 일론은 일주일에 한 번씩 프로젝트를 직접 체크한다.


로마 제국이 강했던 이유는 외부 인재를 적극적으로 수혈했기 때문이다. 제국은 인재를 가리지 않았다. 한국은 어떤가? 최고 인재는 해외로 유출되고, 글로벌 인재를 한국으로 끌어올 시스템은 없다. 우리끼리 경쟁하며 점점 작아지는 파이를 나눈다.


속도의 차이


머스크의 그록 팀은 데이터센터를 3개월 만에 지었다. 한국은? 전력망 하나 구축하는 데 땅 수용화 절차만 수년이 걸린다. 의사결정을 위한 컨센서스를 이루는 데만도 시간이 무한정 소요된다. 전남 지역에는 풍력과 태양광으로 생산된 전력이 남아돌아 가을마다 골치를 앓는다. 그 전력을 데이터센터로 보내면 될 텐데, 송전망 구축은 언제쯤 완료될까?


"빠르게 실패하고, 빠르게 배운다"는 실리콘밸리의 철학은 한국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규제의 벽이 너무 높고, 인허가는 너무 느리다.


스토리가 있는가


일론 머스크는 스토리를 만드는 천재다. 스페이스X가 스타십 테스트를 할 때면 할리우드 PD들을 데려온다. 드론으로 로켓 발사 장면을 촬영하고, 일주일 만에 3분짜리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을 만든다. 음악을 깔고, 스토리텔링을 입힌다. 테스트가 끝나면 일론이 무대에 나와 한두 시간 동안 프리토크로 "우리는 화성에 가야 한다"고 외친다. 사람들은 미쳐버린다.


테슬라, 스페이스X, 뉴럴링크. 개별적으로 보면 산만해 보이지만, 모아놓고 보면 하나의 거대한 서사가 완성된다. 2030-40년 화성에 스타십을 보내 테라포밍을 시작하면, 옵티머스 로봇이 도시를 조립한다. 그곳을 테슬라 차가 달리고, 태양광 패널로 충전한다. 인간은 뉴럴링크로 능력을 증강한다. 이것이 그가 그리는 미래의 청사진이다.


한국 기업들은 기술은 뛰어나지만 서사가 없다.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하다. 애플이 갤럭시보다 하드웨어가 떨어지는데도 비싸게 팔리는 이유, 할리 데이비슨 로고를 문신으로 새기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우리는 배워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은 AI 모델 분야에서 글로벌 3위다. 미국, 중국 다음이다. 인도가 아니다. LG의 엑사원, 업스테이지의 솔라 프로는 글로벌 모델 순위 25위권에 들어 있다. 삼성전자는 테슬라의 차세대 AI6 칩 생산 계약을 체결했고,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HBM 시장을 장악했다. AI 기본법이 통과되었고, 정부는 소버린 AI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가능성은 있다. 문제는 "초점 포커싱"이다. 태양빛을 모아 종이에 불을 붙이려면 돋보기가 필요하듯, 우리의 자원과 인재를 한 곳에 집중시킬 리더십과 제도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첫째,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다. 3번까지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사회적 합의. 재기를 위한 금융과 법률 시스템.


둘째,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이다. 20년 장기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기다려줄 자본. 단기 회수에 급급한 벤처캐피탈 문화를 넘어서야 한다.


셋째, 규제 혁신이다. 규제 샌드박스를 선언만 할 게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 의사결정 속도를 10배 높여야 한다.


넷째, 글로벌 인재 유치다. 로마처럼 외부 인재를 적극 수혈하는 시스템. 국적과 배경을 넘어 최고의 사람들이 한국에서 꿈을 펼치고 싶어 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섯째, 교육 혁신이다. 정답 찾기가 아닌 질문 만들기. 제1원리로 사고하는 훈련. SF 소설을 읽고 미래를 상상하는 교육.


다음 일론 머스크는 어디서 나올까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이 한국에 없는 이유를 고민하다 보면,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돌아보게 된다. 기술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구조가, 문화가, 철학이 다르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보자. 다음 일론 머스크는 어디서 나올까? 미국일까? 중국일까? 아니면 우리가 지금 시스템을 바꾼다면, 한국일 수도 있지 않을까?


로켓을 다시 착륙시키겠다는 꿈도 20년 전에는 헛소리였다. 이제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헛소리를 시도할 용기를 가진 사람과, 그 헛소리를 22년 동안 지켜볼 수 있는 사회다.


다음 일론 머스크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일 수도 있다. 문제는 당신이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한국에 있느냐는 것이다.


국가 R&D 전략 플래너로 일하며 늘 고민한다. 우리는 왜 '쫓아가는' 전략만 세우는가? 언제쯤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전략을 세울 수 있을까? 일론 머스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떤 미래를 상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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