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왜 기록되지 않는가

도전자만이 맛보는 약

"실패를 양약(良藥)이라고 쓰고 싶습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개그맨 서경석님의 영상에서 나온 말이다. 양약고구(良藥苦口),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옛말처럼, 실패야말로 우리를 성장시키는 쓴 약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도전조차 시작하지 않으면 약은 커녕 세계를 들여다보지조차 못합니다. 실패는 도전을 해본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이죠."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한 현실이 떠올랐다. 우리는 정말 실패를 양약처럼 대하고 있는가?


사라지는 실패들


연구 현장을 들여다보면 기묘한 불균형이 보인다. 성공한 프로젝트는 논문이 되고, 특허가 되고, 보도자료가 되어 여러 겹의 기록으로 남는다. 반면 실패한 프로젝트는 최소한의 행정 보고서 몇 장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운이 좋으면 연구실 회식 자리에서 "그때 그거 참 힘들었지" 하는 회고담 정도로 남을까.


결과적으로 우리는 무엇이 작동했는지는 자세히 알지만, 무엇이 작동하지 않았는지는 거의 모른다. 마치 전쟁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의 이야기만 듣고 전투를 이해하려는 것과 같다.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이라 불리는 이 함정은 생각보다 깊고 넓다.


성공 사례의 위험한 유혹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풍부한 성공 사례들은 자연스럽게 일반화된다. "A 연구팀은 이런 방법으로 성공했으니, 우리도 따라 해보자." 얼핏 합리적인 접근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위험한 착각이다.


그 성공 뒤에는 우리가 보지 못한 99개의 실패가 있을지 모른다. 똑같은 방법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팀들의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 방법이 언제 작동하고 언제 작동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 성공의 필수조건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맥락과 우연이 결합되어 그 결과가 나왔는지 파악할 수 없다.


제도가 만든 침묵


연구자들이 실패를 기록하지 않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현재의 R&D 평가 시스템은 실패에 가혹하다. 실패한 프로젝트는 연구자와 기관의 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다음 과제 선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학습한 교훈(Lessons Learned)"이라는 항목이 보고서에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형식적이다. "다음에는 더 철저히 준비하겠습니다" 같은 당연한 이야기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뭔가 배운 척하는 애매한 문장들로 채워진다.


실패를 공유했을 때 칭찬받고 지원받는 문화가 아니라, 실패를 숨겨야 살아남는 구조 속에서, 귀중한 실패 데이터들은 계속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이렇게 실패가 기록되지 않는 문화는 단순히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R&D 생태계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같은 실패가 반복된다. A 연구실에서 2년 전에 시도했다가 실패한 접근법을 B 연구실이 다시 시도한다. 정보가 없으니 당연하다.


혁신적 시도가 줄어든다. 실패가 용납되지 않으면 안전한 주제만 선택하게 된다.


학습 속도가 느려진다.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 성공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데, 정작 그 실패 데이터가 없다.


실패를 양약으로 만들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패를 진짜 양약으로 만들려면 말이다.


첫째, 실패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에 대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실패 사례를 투명하게 공개한 연구자와 기관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스템 말이다.


둘째, 익명화된 실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다. 누가 실패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왜 실패했는지에 집중하는 플랫폼이다.


셋째, "네거티브 리절트(Negative Results)" 논문처럼, 실패를 학술적 성과로 인정하는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


도전자만이 맛보는 약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실패는 정말 양약이다. 하지만 그것이 약이 되려면 기록되고, 공유되고, 학습되어야 한다. 개인의 씁쓸한 기억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도전조차 시작하지 않으면 세계를 들여다보지조차 못한다"는 그 분의 말처럼, 실패는 도전하는 자만의 특권이다. 그리고 그 특권이 다음 도전자들을 위한 자산이 될 때, 비로소 실패는 진짜 양약이 된다.


우리가 기록해야 할 것은 화려한 성공만이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막다른 길, 예상치 못한 장애물들이야말로 다음 세대 연구자들에게 필요한 진짜 지도다.


실패를 두려워 말자는 말은 이제 진부하다. 이제는 실패를 기록하자, 실패를 나누자, 실패에서 배우자고 말해야 할 때다. 그래야 실패가 정말로 양약이 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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