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조직이 무거운 조직을 이깁니다. 경량문명의 핵심은 속도입니다.
얼마 전 한 연구소장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20년 경력의 R&D 전문가인 그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30명 규모의 연구팀을 이끌고 있지만, 옆 건물의 7명짜리 스타트업 팀이 자신들보다 두 배 빠르게 결과물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뭐가 다른 걸까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 7명 팀, AI 도구를 쓰나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애들이 뭐 Claude니 GitHub Copilot이니 하는 걸 쓰더라고요."
바로 그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경량문명'이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점은 플랫폼은 점점 거대해지는데, 그 위에서 활동하는 개인과 팀은 오히려 작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큰 일을 하려면 큰 조직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이 프로슈머(Prosumer)가 되어 월 200달러, 2,000달러를 AI 도구에 쓰면서 그것으로 직접 재화를 만들고 돈을 번다.
한 CF 제작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자동차 광고를 만드는 데 헬기 촬영, CG 작업 등으로 5억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3,000원이면 된다. AI 영상 생성 도구 덕분이다.
법률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두꺼운 영문 계약서를 검토하는데 로펌 비용이 계약액을 초과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ChatGPT에 넣으니 독소조항 7개를 즉시 찾아주고, 수정 요청 이메일까지 작성해줬다. 비용은 거의 0원.
이런 일이 8월 한 달 동안 교육 현장에서, 법률 분야에서, 크리에이티브 산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거의 모든 산업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경량문명을 이해하는 핵심 통찰이 있다. "장인은 끝까지 혼자 다 하니까 관리할 필요가 없다. 본인이 잘못 구우면 도자기가 깨지기 때문이다."
관리라는 개념은 원래 분업에서 출발했다. 하나의 일을 여러 단계로 쪼개서 각자 단순 반복 작업을 하게 만들면, 누군가는 그 품질을 체크하고 일정을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관료제가 생겼고, ISO 9001이 생겼고, 6시그마가 생겼다.
하지만 지금은 그 단순 반복 작업을 기계와 AI가 한다. 그렇다면? 관리가 필요 없어진다. 출근 시간을 체크하고, 점심시간을 확인하고, 담배 피우러 나간 시간을 재는 그런 관리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각자가 자기 일의 관리자가 되면, 전체 관리자가 필요 없어진다.
전통적인 R&D 팀을 떠올려보자. 연구책임자가 있고, 그 아래 선임연구원 3-4명, 박사후연구원 4-6명, 박사과정 6-8명, 석사과정 6-8명. 총 20-30명의 피라미드 구조다.
이 구조에는 숨겨진 무게가 있다. 의사결정은 아래에서 위로, 다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각 단계마다 보고서를 쓰고, 회의를 하고, 승인을 받는다. 신입 연구원은 2-3개월 교육받고, 6개월간 부서를 돌며 경험하고, 선배가 붙어서 1년쯤 가르친다. 그제야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이 모든 과정이 나쁜 건 아니다. 200년간 이렇게 해왔고, 많은 성과도 냈다. 문제는 경쟁사가 이제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7명으로 구성된 경량급 팀은 다르게 움직인다.
먼저, 모두가 T자형 전문가다. 한 분야에 깊은 전문성을 가지면서도, 다른 분야에 대한 넓은 이해를 갖추고 있다. 신입을 뽑아 가르치는 대신, 이미 전문성을 갖춘 경력직만 선택적으로 모셔온다.
둘째, AI 도구를 적극 활용한다. 연구 기획 단계에서 Claude로 선행연구 500편을 3일 만에 분석한다. 기존에는 2명이 2주 걸려 100편을 검토했다. 실험 코드는 GitHub Copilot이 작성하고, 데이터 분석 파이프라인은 Claude Code가 구축한다. 주간 보고서는 AI가 초안을 작성한다.
셋째, 의사결정이 빠르다. 기존 팀이 제안부터 실행까지 2-4주 걸릴 때, 이들은 1-3일이면 결정한다. AI로 타당성을 분석하고, 핵심 팀원들이 Slack이나 Notion에서 비동기로 검토하고, 80% 확신이 서면 바로 실행한다. 실패하면? 빠르게 배우고 방향을 바꾼다.
가볍다는 것은 사람 수가 적다는 게 아니다. 의사결정 구조가 빠르다는 의미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 중 하나는 '대행업의 몰락'이다. 여행사, 부동산 중개, 보험 판매... 이런 에이전시들이 오랫동안 우리를 도왔다. 하지만 AI 에이전트가 24시간, 다국어로 더 정확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중간 단계가 사라지고 있다. 거대 플랫폼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서비스하고, 개인은 AI로 증강되어 직접 가치를 창출한다. 그 가운데 있던 중간 규모 기업들이 어려워지는 이유다.
미디어 산업도 마찬가지다. 매스(대중)에서 팬덤으로 이동하고 있다. 브랜드는 아름다움이 너무 흔해져서, 이제 아름다움끼리 경쟁한다. 거의 모든 산업이 영향을 받고 변화하고 있다. 확실한 건 하나다. 가벼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연구개발사업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첫째, 연구비 산정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20명에게 인건비 60%를 배정하는 대신, 7명의 핵심 전문가에게 40%, AI 도구 구독료에 10%를 할당하는 식이다. 총 30%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2배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둘째, 평가지표를 바꿔야 한다. '참여 연구인력이 몇 명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결과를 냈는가', '성과의 질은 어떠한가', 'AI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했는가'를 봐야 한다.
셋째, 과제 공고 자체가 변해야 한다. 소규모 고전문성 팀을 우대하고, AI 도구 활용 계획서 제출을 필수화하며, 기존 대비 1.5배 이상 빠른 일정을 제시하는 팀에 가산점을 주는 것이다.
물론 이 전환기는 아프다.
경력이 없는 젊은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기업들이 신입을 뽑지 않고 경력직만 선호하면, 그들은 어디서 경험을 쌓아야 하나? 조직이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문제는 조직도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사가 경량화로 움직이면, 안 할 수가 없다.
이 시대의 아픔이다. 특정 시기에 사회에 나온 사람들은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전수받을 다음 세대가 오지 않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거의 모든 조직이 지금 생존을 위해 효율성에 매진하고 있다.
당분간은 각자가 스스로를 챙겨야 한다. 이 전환기가 굉장히 아프기 때문에, 특강도 하고 책도 빨리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크게 시작하지 마라. 당신이 담당하고 있는 과제 중 하나를 선택하라. 3개월간 파일럿을 돌려보라. Claude Pro를 구독하고, GitHub Copilot을 써보고, Notion AI를 활용해보라. 시간이 얼마나 절약되는지, 의사결정이 얼마나 빨라지는지, 팀원들이 얼마나 만족하는지 측정하라.
성공 사례가 나오면 문서로 남겨라. 동료들과 공유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라. 그리고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시스템을 바꿔나가라. 과제 공고 양식을, 평가 기준을, 예산 편성 방식을 하나씩 업데이트하라.
20명의 중량급 팀이 1년 걸려 하는 일을, 7명의 경량급 팀이 AI와 함께 6개월 만에 더 높은 품질로 완성하는 시대가 왔다.
규모의 경제는 끝났다. 공장을 크게 짓고, 사람을 많이 모으고, 전력망과 도로를 깔고, 학교와 병원을 만드는 그런 중량 문명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프로토콜과 네트워크와 알고리즘의 시대다. 땅 위에 무언가를 쌓지 않아도,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연결되어 일할 수 있다.
가볍다는 것은 밀도의 문제다. 중첩된 단계를 줄이고, 사람의 관여를 최소화하며, 빠르게 완결하는 것이다. 의사결정 구조가 빠르면 큰 조직도 가벼울 수 있고, 느리면 작은 조직도 무겁다.
경량문명의 핵심은 속도다. 빠르게 가설을 검증하고, 빠르게 실패하고 배우며, 빠르게 방향을 전환하는 조직이 살아남는다.
질문은 하나다. 언제 시작할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지금.
김현철
AI R&D 전략플래너
기계공학 박사, PMP, Agile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