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없이는 AI를 만들 수 없다

OpenAI가 한국을 선택한 이유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흘러나온 한 문장이 묘하게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메모리 특이점(Memory Singularity)은 메모리 칩에 달려있다."


실리콘밸리에서 회자되는 이 말의 의미는 명확합니다. AI가 인간을 뛰어넘는 순간, 즉 특이점(Singularity)이 언제 올 것인가를 논하기 전에, 그 특이점 자체가 메모리 반도체의 성능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메모리를 만드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6시의 만남


이재명 대통령과 OpenAI CEO 샘 알트만의 만남은 오후 6시에 시작됐습니다. 국군의 날 행사와 대중 문화교류 행사 사이, 빡빡한 일정 속에서 겨우 확보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한 시간의 만남이 담고 있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면담은 예상보다 훨씬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먼저 말문을 열었습니다.


"저 ChatGPT 유료 구독자입니다."


이 한마디에 샘 알트만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급격히 좁혀졌습니다. 기술에 대한 이해, AI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비전, 그리고 그것이 인류에게 행복한 세상이어야 한다는 공감대.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90만 웨이퍼의 의미


이날 체결된 협력의 핵심은 숫자로 말해줍니다. 2029년까지 90만 웨이퍼. SK와 삼성이 각각 OpenAI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공급하기로 한 반도체 웨이퍼의 양입니다.


이게 얼마나 큰 규모인지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재 삼성과 SK가 한 달에 생산하는 웨이퍼 양을 합친 것과 맞먹는 수준입니다. 다시 말해, 두 회사가 지금 가동 중인 공장을 이론적으로 두 배 더 지어야 하는 규모입니다.


천문학적 투자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공장을 짓고, 설비를 구축하고, 인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OpenAI를 비롯한 글로벌 AI 기업들은 탄소중립을 요구하고 있으니까요.


전남과 포항, 그리고 아시아의 허브


이번 협력은 단순히 반도체 공급 계약에 그치지 않습니다. OpenAI는 한국에 직접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했습니다. 전남에는 SK와 함께, 포항에는 삼성과 함께. 각각 20메가와트 규모로 시작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서울이 아닙니다. 수도권도 아닙니다. 전남과 포항입니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정책 목표와 AI 인프라 구축이라는 산업 전략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울산에 아마존 웹서비스(AWS)가 7조 원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한 것에 이어, 이제 전남과 포항에 OpenAI가 들어옵니다.


샘 알트만은 한국을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AI 허브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한국 시장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AI 수요를 감당할 허브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왜 하필 한국인가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기업들은 세계 곳곳을 검토합니다. 싱가포르, 도쿄, 시드니, 방콕... 아시아만 해도 선택지는 많습니다. 그런데 왜 OpenAI는 한국을 선택했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명확합니다. 반도체입니다. SK와 삼성이라는 두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강자가 있습니다. HBM(고대역폭메모리)처럼 AI 시대의 핵심 부품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한국뿐입니다. 엔비디아가 GPU를 만들어도, 그 안에 들어가는 메모리는 한국산입니다.


두 번째는 데이터입니다. 한국의 제조업은 두텁습니다.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반도체 제조... 수십 년간 축적된 생산 데이터는 제조업 AI를 학습시키는 최고의 자산입니다. OpenAI는 제조업 AI의 미래를 한국에서 보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사람들입니다. 한국의 ChatGPT 유료 구독자 수는 전 세계 2위입니다. 미국 다음입니다. 인구당으로 따지면 세계 1위입니다. AI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나라, 그래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네 번째는 정부의 의지입니다. '글로벌 AI 3강'이라는 명확한 목표, 일관된 정책, 그리고 과감한 실행력. 규제를 완화하고,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고, 대규모 투자를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글로벌 기업들을 움직이게 만들고 있습니다.


금산분리, 그 뜨거운 감자


브리핑 중 가장 예민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금산분리 규제 완화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대통령실은 조심스럽지만 명확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전략 산업에 한해, 독점 폐해가 없다는 안전장치를 전제로, 규제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재벌 특혜가 아닙니다. 미국의 IRA법(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보십시오. 유럽의 반도체법을 보십시오. 전 세계가 전략 산업에는 국가가 전면에 나서고 있습니다. 보조금을 주고, 세제 혜택을 주고, 규제를 풀어줍니다.


왜일까요? 반도체, AI, 에너지는 이제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국가 안보이자 경제 주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분야에서 뒤처지면 국가 자체가 흔들립니다.


물론 우려는 있습니다. 규제를 풀어주면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고, 중소기업은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전장치'가 중요합니다. 투자 재원이 다른 영역으로 번지지 않도록, 국민성장펀드와 조인트로 투자하도록, 명확한 울타리를 치는 것입니다.


150조 국민성장펀드의 역할


대통령실이 만든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가 여기서 등장합니다. 이 펀드는 민간 자본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메가 프로젝트에 정부가 함께 투자하는 구조입니다.


반도체 공장 신설처럼 조 단위의 투자가 필요한 프로젝트에 국민성장펀드가 참여하면, 몇 가지 효과가 생깁니다. 첫째, 투자 리스크가 분산됩니다. 둘째, 공공성이 확보됩니다. 셋째, 투명성이 높아집니다.


대기업 혼자 독주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펀드가 함께 들어가면서 감시와 견제의 역할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전장치'의 구체적인 모습일 수 있습니다.


에너지, 또 하나의 전쟁터


AI 데이터센터는 어마어마한 전력을 소비합니다. ChatGPT 한 번 질문하는 데 드는 전력이 일반 구글 검색의 수백 배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돌리려면 발전소 한두 개 수준의 전력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글로벌 기업들이 원하는 것이 '깨끗한 전력'이라는 점입니다. 탄소중립, 재생에너지, ESG...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OpenAI도, AWS도, Google도 모두 재생에너지 기반의 전력 공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를 위해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인프라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태양광, 풍력, 그리고 원자력까지 포함한 에너지 믹스 전략입니다. 전남과 포항에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한 것도 재생에너지 공급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주권 AI와 글로벌 협력 사이


한 가지 우려가 있습니다. OpenAI, AWS, Google 같은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하다 보면, 우리 자체의 AI 역량 강화는 뒷전이 되는 것 아닐까요? 이른바 '주권 AI(Sovereign AI)'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정부의 답은 명확합니다. 투 트랙(Two Track)입니다.


한쪽에서는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하며 대규모 인프라를 구축하고,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운영 경험을 쌓습니다. 이를 통해 글로벌 표준과 기술을 배웁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자체 AI 모델 개발, 원천 기술 확보, 스타트업 생태계 육성에 힘씁니다. 대규모 인프라가 갖춰지면, 오히려 국내 AI 기업들이 그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소버린 AI'의 새로운 접근법입니다. 고립이 아니라 협력을 통한 자립, 의존이 아니라 상호 보완을 통한 성장입니다.


3개월의 협상, 그리고 막판의 긴장


대통령실 관계자는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이번 협력이 성사되기까지 3~4개월이 걸렸고, 막판까지 협상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에 있을 때도 수시로 전화가 오갔다고 합니다.


"한쪽이 너무 의욕을 부리면 상대방이 빠지고... 협상 기술이죠."


협상의 디테일은 공개할 수 없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파트너십에서 누가 주도권을 잡을 것인가, 조건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투자 비율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 수많은 쟁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Google과의 협상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아직 OpenAI와의 협력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진척되고 있다고 합니다. 몇 달 후면 또 다른 빅뉴스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브리핑룸을 나서며


브리핑은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습니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고, 관계자들은 성실하게 답변했습니다.


마지막 질문이 나왔습니다. "실장님, 이런 협상 브리핑하는 게 관세 협상 브리핑하는 것보다 낫지 않으신가요?"


실장은 웃으며 답했습니다. "훨씬 좋죠. 관세로 번질 것 같아서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유머 섞인 답변이었지만, 그 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무역 갈등과 관세 전쟁의 시대에, 기술 협력과 상생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는 것입니다.


2029년을 향하여


2029년. 90만 웨이퍼가 공급되는 그 해까지 채 5년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새로운 공장이 세워질 것입니다. 전남과 포항에 데이터센터가 가동될 것입니다. 수만 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지역 경제가 살아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정말로 아시아의 AI 허브가 될 것입니다.


물론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LOI(의향서)는 어디까지나 의향일 뿐, 실제 실행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있습니다. 투자 재원 조달, 에너지 확보, 인력 양성, 규제 조정...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과제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 그 방향성이 명확해졌다는 것입니다.


샘 알트만이 말했습니다. "한국 없이는 세계가 AI를 발전시킬 수 없다. 이건 과장이 아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메모리 특이점은 메모리 칩에 달려있고, 그 메모리 칩은 한국이 만들고 있으니까요.


이제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이 파트너십을 어떻게 우리의 미래로 만들어낼 것인가.


답은 앞으로 5년 안에 나올 것입니다.


"AI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열 것 같습니다. 그게 행복할 수도,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부디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십시오."


- 이재명 대통령이 샘 알트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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