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스탠다드 모델을 보며 깨달은것
테슬라가 최근 출시한 모델 3, 모델 Y 스탠다드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걸 왜 사지?" 몇백만 원만 더 얹으면 훨씬 나은 옵션을 가진 차를 살 수 있는데, 굳이 저 '깡통' 같은 차를 살 이유가 있을까. 한국에서 차를 산다는 건, 특히 테슬라 같은 브랜드의 차를 산다는 건 단순히 이동 수단을 구매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미국 자동차 시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얼마나 협소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미국의 자동차 평균 판매 가격이 지난달 기준으로 49,740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비싼 수치다. 7월만 해도 47,700달러였으니, 계속해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셈이다. 이 숫자만 보면 미국 사람들이 정말 잘 사는구나 싶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켈리 블루북의 조사를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2017년 12월,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25,000달러 이하의 모델을 36종이나 생산했다. 그런데 5년 후인 2022년에는 단 10종으로 줄어들었다. 반대로 60,000달러 이상의 고가 차량은 같은 기간 61종에서 90종으로 늘어났다. 자동차 회사들은 더 비싼 차를 더 많이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소비자들은 어떨까. 에드먼즈가 2024년 8월에 실시한 조사에서 소비자의 73%가 높은 차량 가격 때문에 구매를 미뤘다고 답했다. 더 놀라운 건 소비자의 48%가 다음 차량 구매에 35,000달러 미만을 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14%는 아예 20,000달러 미만을 원한다. 하지만 20,000달러 이하의 신차는 이제 미국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다.
숫자 너머의 사람들을 보면 이야기는 더 절박해진다. 미국에서 자동차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니, 차 없이는 출퇴근도, 장보기도, 아이들 학교 데려다주기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를 산다. 무리를 해서라도.
조사 결과를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소비자들은 차를 사기 위해 다른 지출을 연기한다고 답했다. 29%는 휴가를 미루고, 15%는 생활비를 아끼고, 심지어 5%는 의료 시술이나 치료까지 연기한다고 했다. 치료를 미루면서까지 차를 사야 하는 상황. 이것이 우리가 부러워하던 미국의 현실이다.
미국의 자동차 구매 시스템에는 또 다른 함정이 숨어있다. 한국에서는 온라인으로 원하는 옵션을 골라 주문할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딜러 매장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딜러들은 더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옵션이 덕지덕지 붙은 비싼 차들만 매장에 갖다 놓는다.
제조사의 홈페이지에는 시작 가격이 30,000달러라고 나와 있어도, 실제로 매장에 가면 그 가격대의 차는 찾아볼 수 없다. 매장에 있는 차들은 대부분 45,000달러 이상이다. 소비자들은 저렴한 기본 모델을 사고 싶지만, 그런 차는 매장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게 최근 몇 년간 미국 자동차 시장의 현실이었다.
흥미로운 건 신차의 평균 보상 판매 기간이 6년이라는 점이다. 즉, 2017년에서 2018년경에 차를 샀던 사람들이 지금 다시 차를 바꿀 시기가 됐다는 뜻이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차를 샀을 때는 25,000달러 이하의 선택지가 36종이나 있었다. 옵션이 적은 기본 모델도 매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6년 만에 돌아온 시장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평균 가격은 거의 두 배가 됐고, 저렴한 선택지는 사라졌으며, 매장에는 비싼 차들만 즐비했다. 인플레이션은 모든 것을 삼켜버렸고, 소비자의 지갑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차를 살 때 "깡통"이라는 표현을 쓴다. 베이스 모델을 그렇게 부른다. 그리고 그런 차를 사는 사람을 이상하게 본다. "몇백만 원 차이인데 왜 저걸 사?" "남들 보는 눈도 있는데 어떻게 저걸 타고 다녀?" "어차피 할부로 길게 끌면 되는데..."
이런 우리의 시각으로는 테슬라 모델 3, Y 스탠다드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 소비자들의 선택 기준은 우리와 다르다. 그들이 베이스 모델을 선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선 비용이다. 당장의 구매 부담을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단순함을 선호한다. 복잡한 기능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한다. 단순할수록 고장이 적다는 신뢰성도 이유가 된다. 보험료도 옵션이 적을수록 저렴하다. 무게가 가벼울수록 연비가 좋아지니 운영 비용도 절감된다.
무엇보다 그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갖춘 차를 원한다. 과시를 위한 소비보다 합리적인 선택을 추구한다. 이것이 미국식 실용주의다.
테슬라의 모델 3, Y 스탠다드는 바로 이 시점에 등장했다. 가격은 35,000달러 전후로 예상된다. 소비자의 48%가 원하는 가격대와 정확히 일치한다. 홈페이지에 표시된 시작 가격과 실제 매장의 차량 가격이 다른 경쟁사들과 달리, 테슬라는 온라인 직판으로 표시된 가격 그대로 구매할 수 있다.
게다가 스탠다드 모델은 경량화를 통해 전비를 최적화했다. 낮은 월 할부금에 저렴한 전기 요금까지 더해지면, 실제 소비자들이 부담해야 할 월 비용은 크게 줄어든다. 필요하다면 FSD 같은 기능은 월 이용료로 추가할 수도 있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테슬라는 이 스탠다드 모델을 캐나다에는 공급하지 않고 미국에만 판매하고 있다. 보통 북미 시장에서는 미국과 캐나다를 함께 공략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미국만 타겟으로 삼았다.
이는 미국 시장의 수요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테슬라의 판단을 보여준다. 주문량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들어오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저걸 누가 사?"라고 생각하는 동안, 미국 소비자들은 "바로 이거야!"라며 주문 버튼을 누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우리도 비슷한 상황 속에 있다. 한국의 자동차 가격도 굉장히 비싸졌다. 자본 팽창의 버블 속에서 우리는 이 비싼 가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다 중국 자동차들이 들어오면서 "너희들 왜 이렇게 비싸게 사?"라는 질문을 받게 됐다. 그제야 우리는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업계는 계속해서 더 비싼 차를 만들었다. 고급화 전략이라 불렀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그 가격을 감당할 수 없었다. 시장과 소비자 사이에 거대한 간극이 생겼다. 테슬라는 바로 그 틈새를 공략했다.
처음에는 테슬라 스탠다드 모델이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의 관점에서는 말도 안 되는 선택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장은 우리의 편견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미국 소비자의 절반은 35,000달러 미만의 차를 원한다. 73%는 높은 가격 때문에 구매를 미뤘다. 신차 평균 가격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저렴한 선택지는 사라졌다. 소비자들은 치료를 미루면서까지 차를 사야 한다.
이 모든 데이터가 말하고 있다. 지금 미국 시장에 필요한 건 더 비싸고 더 화려한 차가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의 실용적인 차라고. 테슬라는 그 메시지를 정확히 읽었다.
앞으로 테슬라 스탠다드 모델의 판매량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우리의 예상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예상의 정확성이 아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우리의 관점이 유일한 진실은 아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다른 곳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테슬라 스탠다드 모델은 그저 옵션이 적은 차가 아니다. 그것은 시장과 소비자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이고, 거품 속에서 진짜 수요를 찾아내려는 노력이며, 데이터가 말하는 진실에 귀 기울이는 자세다.
결국 시장은 데이터가 말해준다. 그리고 지금 데이터는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미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화려함이 아니라 합리성이라고. 과시가 아니라 실용이라고. 더 많은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라고.
우리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 아닐까.
본 글은 해당 영상의 내용을 기반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