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샌더스가 던진 질문
지난주, 한 스마트공장 과제를 심사했습니다. 서류는 완벽했습니다. 생산성 35% 향상, 불량률 80% 감소, 3년 내 수출 100억. 그런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다 멈칫했습니다.
"기대효과: 인건비 연간 12억원 절감"
120명이 일하던 공장이 30명이면 돌아간다는 얘기였습니다. 나머지 90명은요? 서류 어디에도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그날 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연설을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그가 던진 질문이 며칠째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효율적인 사회가 아니라, 사람들이 더 행복한 사회가 필요하다."
샌더스는 말합니다.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 수천억 달러를 AI와 로봇에 쏟아붓고 있다고. 왜일까요?
미국 노동자들의 삶이 걱정돼서? 아마 아닐 겁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돈이 되니까요.
아마존은 이미 100만 대 이상의 로봇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2년 이후 2만 7천 명을 해고했죠. 중국의 폭스콘은 단 하나의 공장에서 6만 명을 로봇으로 대체했습니다.
샌더스는 향후 10년간 미국에서 1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 경고합니다. 제조업만이 아닙니다. 트럭 운전사, 간호사, 회계사, 심지어 교사까지.
그리고 이건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무실로 돌아와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한국은행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약 341만 개의 일자리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전문직도 예외가 아닙니다. 전문직 일자리 193만 개가 자동화로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이겁니다.
정부가 AI 연구개발에 쏟는 예산의 98.4%가 기술 개발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 그 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어떻게 할지에 대한 연구는 고작 1.6%.
우리는 총을 만들면서 방탄조끼는 만들지 않고 있는 셈입니다.
요즘 심사하는 과제들을 보면 패턴이 보입니다.
"AI 기반 무인 물류 시스템"
→ 목표: 물류비용 40% 절감
→ 실제 의미: 물류 노동자들의 일자리 40% 감소
"딥러닝 의료 진단 시스템"
→ 목표: 진단 정확도 95%
→ 질문: 영상의학과 의사들은 어디로?
"스마트 레스토랑 자동화 시스템"
→ 목표: 인건비 60% 절감
→ 현실: 주방 직원들의 생계는?
모든 제안서가 "효율성"을 이야기합니다. 아무도 "사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심사위원회에는 기술 전문가, 산업계 인사, 정부 관계자가 앉아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기술의 영향을 받을 노동자, 시민들은 없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회의실 밖에 있습니다.
이게 정상일까요?
샌더스는 다섯 가지를 제안합니다:
주 32시간 근무제
노동자의 이사회 참여 45%
이익공유제 20%
종업원 소유 기업 확대
로봇세 도입
솔직히 말해서, 이 제안들을 한국에 그대로 가져오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던진 질문만큼은 피할 수 없습니다.
"기술 발전의 혜택이 소수의 억만장자가 아닌, 모두에게 돌아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는 R&D 기획자로서,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제가 심사했던 스마트공장 과제의 연구책임자를 만났습니다. 젊고 열정적인 공학박사였죠.
"교수님, 이 기술이 도입되면 90명이 일자리를 잃는다는 거 알고 계시죠?"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렇게 답했습니다.
"알아요. 하지만 우리가 안 하면 중국이, 일본이 합니다. 그럼 공장 자체가 문을 닫아요. 차라리 30명이라도 살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충분한 답도 아닙니다.
진짜 질문은 이겁니다: "어떻게 하면 120명 모두를 살릴 수 있을까?"
그날 이후, 저는 과제 심사를 다르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는 심사할 때 이런 질문들을 합니다:
"이 기술이 대체하는 일자리는 몇 개인가요?"
대부분 답을 못합니다.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무엇인가요?"
"AI 운영자"라고 답합니다. 그럼 묻습니다. "그건 몇 명이 필요한가요?"
"기존 직원들을 위한 재교육 계획이 있나요?"
대부분 "그건 회사가 할 일 아닌가요?"라고 합니다.
이제는 이렇게 답합니다.
"아닙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연구라면, 국민의 삶을 생각하는 것도 연구자의 책임입니다."
어떤 기술이 좋은 기술일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논문 몇 편 썼나?
특허 몇 개 냈나?
생산성 몇 % 올렸나?
비용 몇 % 줄였나?
이제는 이것도 물어야 합니다:
일자리는 몇 개 사라지나?
새 일자리는 몇 개 생기나?
노동자의 삶은 나아지나?
혜택은 공정하게 분배되나?
예를 들어볼까요.
A 기술: 생산성 30% 증가, 일자리 50% 감소, 재교육 계획 없음
B 기술: 생산성 30% 증가, 근로시간 20% 단축, 전 직원 고부가가치 업무 전환 교육
둘 다 생산성은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좋은 기술일까요?
답은 명백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둘 다 똑같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이건 바뀌어야 합니다.
최근 우리 기관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R&D 심사위원회에 빈 의자를 하나 놓는 겁니다. 그리고 모든 논의 과정에서 그 의자를 보며 생각합니다.
"저 의자에 앉아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스마트공장 과제라면, 생산직 노동자가 앉아야 합니다.
자율주행 과제라면, 택시기사가 앉아야 합니다.
AI 진단 과제라면, 영상의학과 의사가 앉아야 합니다.
그들이 없는 회의에서, 그들의 미래를 결정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제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해관계자들을 초청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더 좋은 기술이 나왔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니, 연구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들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걸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술도 더 정교해졌습니다.
"사람을 생각하는 것"과 "좋은 기술을 만드는 것"은 대립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너지를 냈습니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합니다.
시나리오 A: 효율성의 승리
2035년, 한국의 공장들은 대부분 무인화되었습니다. 생산성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런데 청년 실업률은 30%를 넘었습니다. 거리에는 일자리를 잃은 40-50대가 넘쳐납니다. GDP는 올랐지만, 국민행복지수는 바닥입니다.
시나리오 B: 함께 성장하는 미래
2035년, 한국의 공장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일합니다. 다만 일하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위험하고 반복적인 일은 로봇이 하고, 사람들은 더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일을 합니다. 근로시간은 줄었지만 임금은 유지되었습니다. 생산성도 올랐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행복합니다.
우리는 어느 미래를 선택할까요?
그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떤 연구에 투자하고, 어떤 기술을 개발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 일이 단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연구 과제를 선정하고, 예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성과를 관리하는 것.
이제는 압니다. 제 일은 미래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승인하는 과제 하나가, 10년 후 누군가의 일자리를 만들거나 없앨 수 있습니다. 제가 넣는 체크 하나가, 한 가족의 생계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심사할 때마다 제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을까?
로봇이 모든 일을 하고 사람은 쓸모없어진 세상? 아니면 기술과 인간이 협력하며 더 나은 삶을 만드는 세상?
선택은 우리 손에 있습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어제 심사한 과제는 이랬습니다.
"AI 기반 협업형 제조시스템"
목표: 생산성 35% 향상 + 근로시간 15% 단축
특징: 위험작업은 로봇, 의사결정은 숙련공
재교육: 전 직원 6개월 프로그램 포함
기대효과: 생산량 증가 + 일자리 유지 + 근로 만족도 상승
이 과제를 제안한 연구자는 말했습니다.
"처음엔 복잡하고 어려웠습니다. 기술만 생각하면 되는데 왜 사람까지 생각해야 하나 싶었죠. 그런데 현장 노동자들과 이야기하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기술에 담으니, 훨씬 더 좋은 시스템이 나왔어요."
이게 답입니다.
기술 vs 사람이 아닙니다.
기술 + 사람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누구든,
연구자라면, 당신이 개발하는 기술을 사용할 사람의 얼굴을 상상해보세요.
기업가라면, 당신의 기술이 만들 미래가 정말 살고 싶은 세상인지 물어보세요.
투자자라면, 당신의 돈이 어떤 세상을 만드는지 생각해보세요.
정책입안자라면, 효율성과 함께 인간성도 평가 기준에 넣어보세요.
그리고 우리 모두, 시민으로서,
"이 기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질문을 계속 던집시다.
버니 샌더스는 89세의 나이에도 청년들처럼 열정적으로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그가 본 미래는 어둡지만, 그의 메시지는 희망적입니다.
"변화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 변화의 방향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저는 R&D 기획자로서, 매일 그 선택을 합니다.
당신은 오늘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P.S.
다음 주 월요일, 저는 또 심사위원회에 들어갑니다. 빈 의자는 여전히 거기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계속 물을 겁니다.
"저 의자에 앉아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 쌓이고 있습니다. 한 번에 한 과제씩, 한 번에 한 질문씩.
변화는 이렇게 시작되는 거겠죠.
이 글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2025년 AI 정책 연설에서 영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연구개발의 방향을 고민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