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는 제2의 노키아가 될 것인가

전기차 시대, 하드웨어 회사의 한계

"현대자동차는 여전히 자동차 회사입니다. 테슬라는 소프트웨어 회사입니다."


이 한 문장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애플이 노키아를 무너뜨린 것은 더 좋은 전화기를 만들어서가 아니었다. 아예 다른 게임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자동차 업계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109조 원의 역설


현대차는 2024년 '현대 모터 웨이' 전략을 발표하며 향후 10년간 109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2030년까지 전기차 200만 대 판매, 통합 모듈러 아키텍처(IMA) 개발, 배터리 밸류체인 구축. 계획은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숫자 뒤에 숨은 진실이 있다. 연평균 11조 원. 막대한 금액이지만, 테슬라가 FSD(완전자율주행) 소프트웨어 하나에 쏟아붓는 투자와 비교하면 어떨까? 더 충격적인 건 BYD다. 중국의 이 전기차 업체는 2025년 2월, 1,400만 원짜리 해치백을 포함한 전 차종에 자율주행 시스템을 무료로 탑재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차는 하드웨어에 109조 원을 쓰고 있다. 테슬라와 BYD는 소프트웨어로 게임의 규칙을 바꾸고 있다.


전화기가 아니라 컴퓨터였다


2007년, 노키아는 휴대폰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의 실수는 무엇이었을까? 스마트폰을 만들지 않은 것? 아니다. LG 프라다폰과 삼성 옴니아는 아이폰보다 먼저 나왔다. 노키아의 진짜 실수는 스마트폰을 더 나은 전화기로 본 것이었다.


애플은 달랐다. 아이폰은 전화 기능이 있는 컴퓨터였다. 앱스토어라는 생태계,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개발자 커뮤니티. 하드웨어는 플랫폼일 뿐이었다.


지금 현대차가 보는 전기차는 무엇인가? 엔진 대신 모터가 들어간 자동차다. 아이오닉 브랜드, E-GMP 플랫폼, 블레이드 배터리. 모두 훌륭한 하드웨어 혁신이다.


테슬라가 보는 전기차는? 바퀴 달린 AI 플랫폼이다.


소프트웨어는 매주 진화한다


테슬라 오너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자동차가 업그레이드되어 있는 경험을 한다. 2025년 10월 기준, FSD v14가 배포되고 있다. 주차장에서 자동 출발, 긴급차량 인식, 막힌 도로 우회, 속도 프로필 'SLOTH' 모드 추가. 매주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다.


현대차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는? 1년에 한두 번, 서비스센터를 방문해야 한다. 2025년 현대차가 추진하는 SDV(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전략도 있지만, 테슬라가 10년 전부터 해온 일이다.


더 결정적인 차이는 데이터다. 테슬라는 전 세계에서 매일 수십억 마일의 주행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데이터가 FSD를 학습시킨다. 현대차는? 개별 차량의 데이터 수집 체계조차 완전하지 않다.


데이터 없이 AI는 발전할 수 없다. AI 없이 자율주행은 불가능하다. 자율주행 없이 미래 자동차 시장을 선도할 수 없다.


BYD라는 쓰나미


더 무서운 경쟁자가 있다. 2025년, BYD는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1위 전기차 제조사가 되었다. 230만 대 vs 170만 대. 불과 3년 전만 해도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역전당했다.


BYD의 전략은 잔인하리만치 명확하다.


가격: 30% 할인을 단행했다. 독을 마시는 격이지만, 시장 점유율 확보가 먼저다.


자율주행 민주화: '신의 눈(God's Eye)' 시스템을 1,400만 원짜리 차에도 무료 탑재. "자율주행은 에어백처럼 필수"라는 왕촨푸 회장의 선언.


수직 계열화: 배터리부터 반도체까지 모두 자체 생산. 공급망 장악으로 비용 절감.


일론 머스크는 2024년 BYD 공장을 방문한 후 경영진에게 말했다. "중국이 전기차 경쟁에서 이기고 있다."


한국은? 현대차의 2025년 상반기 글로벌 전기차 판매는 약 33만 대. 같은 기간 BYD는 200만 대가 넘는다.


균형 전략의 함정


현대차의 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균형'이다. 내연기관도 포기하지 않고, 하이브리드를 확대하며, 전기차도 키우고, 수소도 준비한다.


언뜻 현명해 보인다.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리스크를 분산한다.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 TMED-II는 2025년 1월부터 양산에 들어갔고, 적용 차종을 7개에서 14개로 확대한다.


하지만 역사는 보여준다. 패러다임 전환기에 균형 잡힌 전략은 종종 패배의 지름길이 된다.


노키아도 스마트폰을 만들었다. 그들의 심비안 OS는 한때 시장 점유율 1위였다. 하지만 동시에 피처폰도 계속 팔았다. 둘 다 하려다 둘 다 놓쳤다.


현대차는 2030년 전기차 판매 비중 36%를 목표로 한다. 나머지 64%는 여전히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다. 테슬라는 100% 전기차다. BYD는 2022년부터 내연기관 생산을 완전히 중단했다.


문화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


기술과 자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다. 기업 문화다.


현대차의 DNA는 '완벽한 하드웨어'다. 70년 넘게 정밀한 기계를 만들어왔다. 엔진의 진동, 서스펜션의 세팅, 도장의 마감.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드는 장인 정신.


테슬라의 DNA는 '빠른 iteration'이다. 80% 완성도로 출시하고, 매주 업데이트한다. 오너들이 베타 테스터다. FSD는 아직도 'Supervised'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완벽하지 않다는 의미다. 하지만 매일 나아진다.


2025년 10월, 미국 교통국(NHTSA)이 테슬라 FSD에 대한 대규모 조사에 착수했다. 58건의 안전 관련 신고, 14건의 충돌 사고. 현대차 경영진이라면? "이런 시스템을 절대 출시할 수 없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테슬라의 통계는 말한다. FSD 작동 중: 669만 마일당 사고 1건. FSD 미사용: 96만 마일당 1건. 미국 평균: 70만 마일당 1건.


불완전하지만 인간보다 안전하다. 그리고 매주 더 나아진다. 이것이 소프트웨어의 힘이다.


2030년의 시나리오


시나리오 1: 현대차의 승리


FSD가 실패한다. 자율주행의 기술적 한계가 드러나고, 소비자들은 여전히 '운전하는 즐거움'을 원한다. 하이브리드 시장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고, 현대차의 균형 전략이 빛을 발한다. 109조 원의 투자로 완성된 IMA 플랫폼과 배터리 기술로 경쟁력을 확보한다.


시나리오 2: 현대차의 몰락


2027년경 FSD v16이 레벨 4 자율주행에 도달한다. 테슬라는 로보택시 서비스를 본격 시작하고, 자동차는 '이동 서비스'로 재정의된다. BYD는 가격과 자율주행으로 대중시장을 장악한다. 현대차는 기술 격차를 따라잡지 못하고, 전통적인 하드웨어 제조사로 전락한다. 2030년 시장 점유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진다.


어느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까?


살아남기 위한 5가지 선택


현대차가 노키아의 운명을 피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결단의 시간 균형 전략을 버려라. 2030년 36%가 아니라 80% 이상을 전기차로 채워야 한다. BYD처럼 내연기관 중단까지는 아니더라도, 명확한 메시지가 필요하다.


2. 소프트웨어 회사로 전환 109조 원 중 최소 30%를 소프트웨어에 투자해야 한다. 하드웨어는 상품이 되고, 소프트웨어가 차별화 요소가 되는 시대다.


3. 데이터 생태계 구축 모든 차량을 데이터 수집 장치로 만들어라.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AI를 학습시켜라. 삼성전자가 반도체에서 한 것처럼, 데이터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해야 한다.


4. 문화 혁명 완벽주의를 버리고 빠른 출시와 지속적 개선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어렵다. 70년 기업 문화를 바꾸는 것이니까.


5. 파트너십 레버리지 애플이나 구글 같은 소프트웨어 자이언트와 전략적 제휴를 고려해야 한다. 자존심 때문에 망하는 것보다, 살아남아서 배우는 것이 낫다.


질문을 던지며


나는 R&D 전략 플래너로서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기획하고 평가해왔다. 그 경험으로 보건대, 현대차의 현재 전략은 '안전한 선택'이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모든 가능성에 대응한다.


하지만 패러다임 전환기에 안전한 선택은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애플은 아이팟으로 MP3 시장을 장악하고 있을 때, 스스로 그 시장을 파괴하는 아이폰을 만들었다. 넷플릭스는 DVD 우편 배송으로 수익을 내고 있을 때, 스트리밍으로 전환했다.


현대차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파괴적 혁신이다. 내연기관으로 버는 돈을 포기하고, 전기차와 소프트웨어에 올인하는 용기.


정주영 회장이 조선소를 지을 때, 배 한 척 만들어본 적 없이 수주부터 받았다. 그 배짱과 추진력이 지금도 남아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10년 후, "현대차가 왜 망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게 될까? 노키아처럼.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동차는 그저 바퀴 달린 플랫폼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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