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와 애착, 둘 다 놓치지 않을 거예요
<유치원 입학 전 1,000권 읽기, 1,000 Books before kindergarten>는 미국을 비롯한 영국, 호주 등의 도서관에서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 권장 프로그램이다. 0세부터 유치원 입학 전인 5세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거기에는 어떠한 레벨 테스트나 인증하기, 순위매김 같은 건 없다. 그저 좋아하는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마음 편하게 읽은 후 도서관의 웹 기반 리더 추적 플랫폼인 빈 스택(BeanStack) 어플에 책 바코드를 찍으면 끝이다. 100권 읽을 때마다 도서관에서 책 선물과 사서의 무한 칭찬, 격려를 받으며 차곡차곡 1,000권의 독서를 이어나간다. 1,000권이라는 물리적 양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우리가 읽는 책은 두꺼운 소설이 아니라 그림책이므로 한 권 읽는데 2분~1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 하루에 한 권씩만 읽어도 1년이면 365권, 2년이면 750권, 3년이면 1095권을 읽는 셈!
설마 서너 살 꼬마가 혼자서 각 잡고 책상에 앉아 글자를 더듬더듬 읽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면… 그 기대는 고이 접어두길 바란다. 여기서 아이들의 ‘독서’란 엄마가(혹은 아빠, 보호자가)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그림책을 펼친 다음 소리를 내어 읽어주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그림책이란 본래 그런 것.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읽어줄 때 가장 재밌는 형태의 책이니까.
나는 영어그림책 천권을 읽으면 내 아이가 영어를 엄청 잘하게 될까 궁금했다. 그리고 곧 그 궁금증의 주어가 ‘나’로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에게 천권의 영어그림책을 ‘읽어줘야’ 하는 주체는 엄마인 ‘나’가 된다. 집에서 엄마가 중심이 되어 일상생활 속 영어 환경을 조성하고 계획적으로 노출시키는 <엄마표 영어>와 <그림책 천권 읽기>라는 개념은 손을 잡고 향방을 같이 하는 것이다. 영어노출에 영어그림책만큼 훌륭한 도구는 없으니까.
그렇게 나는 2년 동안 아이와 도서관에 다니며 영어그림책 천권을 읽어냈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은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지 못하는 엄마라도 <엄마표 영어>를 잘 해낼 수 있다는 것. 영어그림책과 함께 한다면 말이다.
아이와 지지고 볶으며 영어그림책을 매일매일 읽다 보면 어느새 어떤 그림책이라도 자신 있게 읽어낼 수 있는 영어 낭독실력과 문장해석능력, 발음향상, 서양문화에 대한 이해력을 얻게 된다. 처음에는 유치원생들이 읽기 연습용으로 읽는 리더스북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고학년용 그림책, 그림이 거의 없는 챕터북까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어체력을 갖게 된다. 예전에는 아이가 그림이 없는 챕터북을 골라오면 난감해하며 이렇게 어려운 건 아직 못 읽어준다고 말하며 거절했던 적이 있었기에, 그런 책을 척척 읽어줄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엄청난 변화와 성장으로 느껴졌다. 나에게 육아효능감은 아이가 골라오는 그림책을 착착 읽어줄 때 생기는 모양이다. 내 어깨에 기대어 엄마 목소리와 그림책에 집중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건 행복한 일이다. 아이와의 애착, 책에 대한 사랑, 온기, 신뢰는 덤으로 따라온다. 이 여정에서 차곡차곡 쌓인 아이의 영어실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들을 자주 목격할 것이다.
그 경이로움과 즐거움을 누리는 건 지금 아이 곁에 있는 당신의 몫!
그림책 천권으로 시작하는 엄마표 영어의 가장 큰 수혜자는 '엄마'가 아닐까. 그림책의 매력을 알게 되고, 아이와의 애착을 쌓으면서 영어실력도 향상되니까. 그러나 영어그림책 천권을 끝까지 읽어나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노력과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처음 영어그림책 읽어주기를 시작할 때 영어에 자신이 없던 나는 “Where’s Spot? Is he under the stairs?”라는 간단한 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 것도 왠지 어색하고 오글거렸다. 영어의 특성인 강세, 리듬을 무시한 한국식 영어발음이 문제였다. 이것은 나처럼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혼자서 극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다. 다행히 나에겐 유창하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원어민 개인과외 선생님이 있었으니 아이에게 부끄러운 영어발음을 선보이기 전에 특훈을 받아 연습했다. 바로 유튜브! 유튜브에 책 제목과 Read Aloud를 조합하여 검색하면 원어민이 해당 그림책을 친절하게 읽어주는 영상을 찾을 수 있다. 같은 그림책인데도 내가 읽을 땐 한없이 시시하고 재미없는 텍스트를 그들은 마치 노래하듯 리듬과 운율에 맞춰 읽는다. 대부분 영어 그림책들은 이렇게 소리 내어 읽었을 때 입에 착착 붙게 쓰였다. 아이의 낮잠시간엔 그날 읽어줄 그림책을 펴고 유튜브를 켜는 것으로 나의 영어공부는 시작되었다. 소리 내어 연습하고 모르는 단어를 노트에 메모하며 마치 중요한 미팅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한 권 한 권 쌓아나갔다. 그러면 아이에게 읽어줄 때 당당하고 재밌게 읽어줄 수 있다. 어떤 포인트에서 어떤 목소리톤으로 읽어내야 하는지 알고 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그 시간에 집중할 수 있다. 온전하게 나와 아이와 그림책이 서로의 눈길을 주고받으며 나누는 애착으로 채워지는 시간. 그렇게 엄마의 영어공부는 아이에게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때 아동용 그림책에서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낯선 어휘’들과 고군분투할 마음의 준비는 하길 바란다. (신천옹 Albatrus, 주머니쥐 Opossum 같은 동물이름을 영어로 들어본 적 있을 리 없다!) 우리가 수능이나 토익시험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은유적이고 아름답고 희귀한 영어단어들을 자주 마주하게 될 테니까. 실제로 영어그림책에는 미국에서 부모와 아이가 나누는 대화보다 희귀 단어가 70% 정도 더 많다고 한다. 약 700권 정도를 읽어내면 이제 웬만한 단어들은 다 들어봤을 것이고 유튜브 원어민 선생님 없이도 혼자서 문장리듬을 찾아내 읽을 수 있는 엄마의 영어체력이 조금씩 갖춰진다. 그림책 1,000권이 쌓이면 이제 당신과 아이는 그림이 거의 없는 챕터북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눈길을 돌리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레벨테스트나 단어시험, 경쟁 없이 이루어지기에 스트레스가 없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엄마가 읽어주는 영어그림책을 많이 듣고 자란 아이에게 영어는 외우고 공부해야 하는 학습이 아닌 엄마와의 즐거운 추억, 사랑인 것이다.
리드어라우드 유튜브 채널 추천
Brightly Storytime https://www.youtube.com/@BrightlyStorytime
StoryTime at Awnie's House https://www.youtube.com/@AwniesHouse/videos
Miss Honey Bear https://www.youtube.com/@MissHoneyBearSLP
StorylineOnline https://www.youtube.com/@StorylineOnline
KidTimeStoryTime https://www.youtube.com/@KidTimeStoryTime
영어그림책 선정이 어렵다면 리드어라우드 유튜버들이 골라주는 책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다.
대부분 아이들에게 인기 있고 유명한 책을 읽어주기 때문이다.
영어그림책 천권을 함께 읽으면 아이의 집중력, 듣기 능력, 어휘력이 향상된다.
[모든 언어 능력은 듣기 어휘에서 흘러나오고, 이 어휘는 아이 외 누군가가 채워 넣어야 한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이의 귀(그리고 뇌)에 단어를 형성하는 소리(음)와 음절, 어미, 연음을 쏟아 부음으로써 언젠가 그 단어를 읽게 될 때 그것을 쉽게 이해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 고래나 기관차, 열대 우림과 같은 아이가 주변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배경 지식을 채워 넣는 것이다.
<아이의 두뇌를 깨우는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 짐 트렐리즈>
그림책은 몰입의 경험이다. 온전히 그 세계에서 빠져들어 등장인물과 공감하며 타인의 세계와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일이다. 그 와중에 글자를 읽는 엄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맥락에 따라 처음 들어 본 단어의 의미를 유추하며 그림과 글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일련의 과정은 집중력과 상상력을 동원된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한영사전을 찾아야 하는 나와는 다르게 아이는 이야기의 상황과 맥락을 통해 유연하게 의미를 유추했다. 그렇게 입력된 어휘들은 차곡차곡 아이의 어휘창고에 저장되는 것이라고 나는 믿기에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희귀 단어가 들어간 그림책들을 좋아한다. 들어본 적 없는 단어를 말하거나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루 30분 정도 가만히 앉아 엄마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보며 집중해 본 아이는 학교에서 선생님의 말씀에 경청할 가능성이 크다. 1,000권 읽을 동안 집중력의 깊이와 어휘력의 크기는 점점 더 커진다.
아이와 단단한 애착을 형성한다.
엄마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가장 가깝고 믿을 수 있는 존재이고, 그림책은 그런 엄마와 함께했던 사랑과 추억이 담긴 물건이기에, 아이이게 그림책과 엄마는 동일하게 사랑의 감각으로 인식된다.
아이가 어릴 때 한참 기질테스트가 유행했었다. 나는 내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질 테스트나 전문가의 상담보다 함께 읽고 대화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 아이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면 아이를 끌어안고 그림책을 더 많이 읽었다. 아이의 눈으로 책을 보며 아이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아이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 그런 도란도란한 시간이 더 필요했다. 꼭 붙어서 온기를 나누며 그림책을 보는 시간은 나에게도 휴식이자 치유가 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세이펜 사용을 하지 않았다. 기계에는 그런 온기나 사랑의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독서란 읽어주는 어른과 듣는 아이가 서로 마음을 포개어 상호작용하면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페이지를 바라보며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이야기하고, 호응하고 깔깔 웃고 눈을 마주치면서 읽어야 하는 입체적인 문학형태인 것이다. 아이스크림이 나오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사자가 나오면 사자 흉내를 요란하게 내면서.
지금 엄마와 함께 읽는 그림책들이 모여 아이의 내면에 단단한 울타리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영어소설을 ’읽히는‘엄마가 아니라 ‘같이 읽는’ 엄마가 되고 싶다. 종종 SNS에서 청소년 영어소설을 추천받으면 아이에게 읽혀보겠다, 고 각오를 단단히 하는 엄마들을 보는데 본인은 읽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읽기를 강요한다면 아이 입장에서도 별로 읽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이것 좀 읽어보라고 아이를 달달 볶는 대신 엄마가 먼저 즐겁게 읽는 모습을 보여줘야 아이도 책에 대한 신뢰와 흥미를 가질 터. 먼저 읽어보고 이거 재밌더라,라고 추천도 하고, 같은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건 미래의 사춘기 딸과 대화를 이어가는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그때까지 우리의 일상에 디지털 기기가 아닌 책이 늘 가까이 있도록 지금 그림책을 꼭 붙잡고 책육아하자. 천권의 그림책을 지나는 동안 서서히 엄마와 아이의 자리가 뒤바뀌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제 아이가 앞장서고 엄마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따라가면 된다.
다양한 영어 문형을 익힐 수 있다.
주어, 동사, 목적어로만 이루어진 기본적인 문형에 익숙했던 나는 처음 영어그림책을 읽을 때 의미파악에 애를 먹었다. 하지만 걱정말길! 우리가 읽고자 하는 것은 어려운 석사논문이나 경제서적이 아닌 아동용 그림책이다! 한국 교과서나 영어학습지에서 접해본 적 없는(혹은 배운 적이 있으나 기억에서 지워진) 문형들을 자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알게 된다. 특히 그림책에는 희귀 어휘와 더불어 섬세하고 풍부한 표현력으로 가득한 문장들이 가득하다.
미국 문화를 접할 수 있다.
미국에서 자라지 않으면 좀처럼 알 수 없는 문화나 기념일, 홀리데이 등을 우리는 영어그림책에서 접하고 배울 수 있다. 예를 들면 부활절에 부활절토끼가 사탕이나 초콜릿이 들어있는 달걀을 숨겨놓으면 아이들이 찾는 문화, 핼러윈데이에 호박으로 잭 오 랜턴을 만들고 유령분장을 하고서 동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Trick or treat!”이라고 외치면 집주인이 사탕을 나눠주는 문화 같은 것들. 우리나라에서는 연인들의 로맨틱한 기념일로 알려진 밸런타인데이는 미국에서는 가족, 친구들을 위한 좀 더 대중적인 기념일로 다뤄진다. 아이들은 친구, 선생님, 가족들을 위해 빨강 핑크색 하트를 오리고 붙이고 우정과 사랑을 표현한다. 다른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알아가면서 아이의 세계는 풍요롭게 넓어진다.
엄마표 영어를 시작하고 싶지만 망설이는 엄마가 있다면 가장 쉬운 영어그림책으로 시작해 보길! 다른 집과 비교하거나 따라 하지 않고 그저 엄마와 아이의 속도로, 우리들의 취향 가득 담긴 그림책과 함께 차곡차곡 쌓여가는 애착과 영어실력을 발견하고 그 즐거움을 누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