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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몬 Aug 26. 2022

<북리뷰 14> 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다르게 사는 삶도 가능하다-


지은이 : 필명, 파스칼 메르시어( Pascal Mercier. 본명은 피터 비에리 Peter Bieri)

옮긴이 : 전은경

출판 : 들녘, 2007.10.31. 14쇄 2014.11.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는 1944년 6월 23일 스위스 베른 출생이다. 고교 졸업 후 철학, 고전 문학, 인도학, 영어학을 전공했다. 1933년 이후 베를린 자유 대학교에서 언어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창작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 배럴만의 침묵(1995년), 피아노 조율사(1998년), 레아 (2007년)등의 소설을 출간했다. 파스칼 메르 사이는 인간의 정신세계 , 철학적 인식의 문제, 언어 철학 등 폭넓은 인문학 분야를 아우르며 연구 및 저술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옮긴이 전은경.

한양 대학교 사학과 졸업, 독일 튀빙겐 대 학교에서 고대 역사와 고전 문헌학을 공부했다. 번역으로는 '16일간의 세계사 여행', ' 커피 우유와 소보로 빵', '철학의 시작',

' 캐리커쳐로 본 여성 풍속사'' 이탈리아 구두', ' 지옥 계곡',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등이 있다.





리스본 야간열차의 원저에 부록으로 실린 서평은 두 개다.



서평 1. 다르게 사는 삶도 가능하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예술적 재능이 풍부한 은혜받은 사람이다 그는 한편으로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하다. 시민사회에서 사용하는 이름은 페터 비에리. 1944년생으로 1993년부터 베를린 자유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자유 논고라는 학술서로 학계에 이름을 떨친 그는 1995년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을 사용, 장편소설 '베를만의 침묵'을 발표한다. 일종의 시선과 같다는 평을 받은 이 작품은 8000부를 판매하는데 그친다.


메르시어의 소설의 특징은 추리물처럼 긴장감이 넘치면서도 언어와 사유, 기억의 문제 등 지적 세계를 종횡무진 넘나 든다는 것. 1998년 발표한 '피아노 조율사'는 근친상간을 다룬 충격적인 이야기로 인간 내면의 심리적 정신적 상흔이 어떻게 살인으로 이어지는가를 보여 준다. 이번에도 문단의 평온 좋았다. 하지만 메르시어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구성 능력과 언어 능력을 십분 발휘한 새 소설을 발표한다. 바로 리스본행 야간열차다. 이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센세이션을 일으켰다(출간 후 3년이 지난 현재까지 베스트 10위안에 들고 있다)


   독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속해 있던 세계 - 아무 탈이 없고 너무나도 익숙한 - 를 떠나 낯선 곳으로 향하는 주인공을 따라 여행을 떠난다. 우연히 손에 넣은 매력적인 책의 저자인 프라두의 인생을 따라 가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는 사실 그레고리우스 안에 감추어진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열망을 좇는 일,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그레고리우스의 입을 빌어 "그게 가능할까"라고 묻는다.

"자기 삶과는 완전히 달랐고 자기와는 다른 논리를 지녔던 어떤 한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일까?"

.


   

    외면 상으로 그레고리우스는 비밀스럽고 긴장감 넘치는 프라두의 인생을 추적한다. 그러나 그는 프라두의 글을 번역하는 과정을 통해 프라두가 구축해놓은 사유의 제국에 안주하면서 그의 인생을 산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확인하려는 욕망, 불면증에 시달리는 지식인 등을 다룬 점에서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메르시어의 전작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는 자연스럽게 드러난 구조 상의 문제일 뿐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실존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독일 문학사상 '막스 프리쉬'와 비견된다. 자기가 살고 있는 삶과 다른 삶을 좇아간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또 다른 방향 전환을 모색할 수 있을까? 우리 현실의 대안이라는 게 정말 존재할까? 다른 삶에 대한 희구는 현실에 대한 표현되지 못한 내면의 저항이 아닐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미 만들어진 나를 만나는 것 아닐까?


메르시의 신작 '리스본행 야간열차'에는 깊은 사유를 함축하고 있는 은유적인 표현들이 주를 이룬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건가?"


"두 번째로 오는 느낌은 처음 것과 같지 않다. 그것은 반복을 의식함으로써 퇴색된다"

"천박한 허영심은 우둔함의 다른 형태죠"

" 우리의 모든 행위가 우주 전체로 봤을 때 얼마나 무의미한지 몰라야 천박한 허영심에 빠질 수 있어요 그건 어리석음이 조야한 한 형태로 나타난 거예요"


자유와 결정(규정)의 관계는 비에리가 그의 학문 세계에서 즐겨 다루는 데마다.

그는 소설 속의 인물을 통해 이 문제를 형상화하고 동시에 여기 당면한 주인공의 심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소설 말미에 이르러 독자는 친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가 헤어지듯 아쉬운 이별을 경험한다. 그러나 결국 그레고리우스와 프라두를 떠나보내면서 독자는 이 책이 영혼과 이성 그리고 가슴을 위한 교과서임을 깨닫는다. 메르시어의 작품은 보다 풍요롭고 의미있는 인생에 바치는 의미 심장한 헌사이자 읽을거리이다.



서평 작가 : 군터 니캘(디 벨트 지에 발표한 것을 부록에 게재)






서평 2. 심연을 파헤치는 의식의 추리물
'베를만의 침묵'( 1995년 ), '피아노 조율사'( 1998년)에 이은 신작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비에리(파스칼 메르시어는 필명)는 내가 알고 있는 나와 남이 알고 있는 나 사이의 진정한 자아 찾기에 주목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영웅이 아니다. 주인공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는 베른 출신의 고전 문학 교사로 한때 제자였던 젊은 아내와 이혼한 뒤 혼자 살고 있는, 책 읽기와 고전 문학의 세계가 전부인 고리타분한 초로(57세)의 남자다. 매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외모지만 그레고리우스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학생들은 그가 진정으로 고전 문학을 사랑하는 교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고전어는 그를 현실 세계로 이끌어 주는 일종의 출구다.


   어느 날 그는 자살을 시도한 낯선 포르투갈 여인과의 마주침, 포르투게스라는 마음의 울림,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아마데우스 더 프라두라는 프로토콜의 사이클에 이끌리어 익숙했던 모든 것을 뒤로 한채 무작정 리스본으로 떠난다. 그레고리우스에게 프라두는 문화 충격과도 같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 그는 종종 혼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럴 때면 거의 영혼이 그를 내버린 것 같았다"라고 할 것이다. 그레그리우스는 이제까지의 인간관계를 모두 끊고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 역시 프라두가 궁극적으로 찾고자 했던 것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인간 행위의 표면 아래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혹은 인간은 자신이 만천하에 드러내는 행동과 완벽하게 일치할까? 하는 문제다.



뚜렷하지 않은 심연, 감추어진 삶의 표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러하다.

"강을 비추던 햇빛 처럼 내 마음속에서 늘 변한다. 뚜렷하고 예리한 그림자를 만드는 반짝이는 팔월의 매력적인 햇빛은 인간에게 숨겨진 심연이던 나의 생각을 터무니없는 것을 느끼게 한다. 신기루와 비슷한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을 너무 오랫동안 바라보면 나타나는 신기하면서도 약간은 감동적인 환상처럼, 그러나 흐린 일요일의 도시와 강의 그림자도 없는 흐린 빛과 지루한 잿빛 지붕이 덮인 인간의 모든 행위는 알 수 없는 심연의 숨겨진 내적인 삶이 겉으로 드러내는 표현, 그것도 심연에는 전혀 가깝지 않으면서 아주 불완전하고 거의 우스꽝스러울 만큼 약한 표현일 뿐이라는 것이 확실해진다."


마침표 조각난 퍼즐을 맞추는 가운데 그레고리우스는 거역할 수 없는 프라두에게 의심을 느낀다. 유복한 귀족 집안의 자제, 유난히 영민했던 그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 등 척추 경직증 때문에 고통 속에 살았던 아버지를 보면서 자의 반 타의 반 의사의 길을 걸었던 프라두의 생을 존재하게 해주는 확실성에 대한 고통스러운 깨달음, 익숙함, 진실, 기억과 희망, 학자 다운 면모, 그러나 프라두는 사실 깨지고 상처받기 쉬운 인간성의 소유자였다. 가장 절친한 친구였던 조루지가 사랑하는 여인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그는 고통받고 좌절하며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번민한다. 결국 그 역시 평범한 인간이었던 터.


프라두가 쌓은 의사로서의 명성과 업적은 '살라자르 인간 백정'으로 통한 맹지스의 목숨을 구해 주는 사건으로 치명타를 입는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프라두는 반정부군의 비밀 결사대원으로 일하게 되나 머릿속에서 핏줄이 터지는 바람에 사망한다.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의 삶을 깊이 알아 갈수록 점점 불편해진다. 자신이 이제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자기 자신과 마주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나와 남이 말하는 나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운가 하는 문제가 그레고리우스의 화두가 된 것이다.

그레고리우스를 리스본으로 이끌었다가 다시 자기 삶의 터전인 베른으로 데려온 야간열차는 인생이란 여정을 의미하는 메타퍼다.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인생으로 떠나고 싶어 하는 여정, 메르시어는 프라두에

움직이는 기차에서 처럼 내 안에 사는 나라고 말한다.

" 내가 원해서 탄 기차가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아직 목적지도 모른다. 먼 옛날 언젠가 이 기차 안에서 잠이 깨고 바퀴 소리를 들었다. 난 흥분했다. 덜컥거리는 바퀴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머리를 내밀어 바람을 맞으며 사물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속도감을 즐겼다. 기차가 절대 멈추지 않기를 바랐다. 어디선가 영원히 멈추어버리지 않기를. 절대 그런 일은 없기를"


여행이 길어질수록 여행을 떠난 자는 불안 해진다. 그는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언젠가는 이 여행도 급작스럽게 막을 내릴 것임을 짐작한다.

" 내게 가끔 손님이 오기도 한다. 문이 닫히고 잠겨 있는데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방문객은 있다. 거의 언제나 나에게 맞지 않는 시간에 온다. 대부분 현실의 시간의 손님들이지만 과거에서 온 손님들도 많다. 이들은 자기 형편에 따라 마음대로 오가며 나를 방해한다.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구속력이 없으며 잊힐 운명이다. 거저 기차에서 하는 일상적인 대화들. 몇몇 방문객은 소리 없이 사라지지만 건조기 냄새나는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다. 환기를 해도 소용이 없다. 그럴 때면 이 칸에 있는 모든 것을 떼어 내고 새것으로 바꾸고 싶다. 여행은 길다. 이 여행이 끝나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다. 아주 드물게 있는 소중한 날들이다. 다른 날에는 기차가 영혼이 멈추어 설 마지막 터널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심연을 파헤치는 의식의 추리물


   프라두의 족적을 따라 사회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레고리우스는 결국 바깥쪽에는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생은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라고 결론짓는다.

파스칼 메르시어는 아주 강렬한 작품을 썼다. 이것은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의식의 추리물이다. 이 작품에 보장된 인생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복권이 그렇듯이. 왜냐하면 인간은 각자에게 맞는 섬세한 방식에 의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탐구하고 더 나은 인식에 도달할 수 있으니까.

작가는 인생이 선명한 의식과 철학의 세계로 구현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사소한 일상이라도 인생은 이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진리를 감동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서평 작가 : 오토 에이 뵈머(디 차이트지에 발표한 것을 부록에 게재)


**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록에 게재된 두 편의 서평을 그대로 복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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