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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몬 Jan 30. 2022

오래된 설날 추억

                      

     요즘  설 풍습은 내 어릴 적과 비교하면 무척 변했다. 60년 대 설날 풍습은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 섣달 그믐날 치성드리기 , 차례, 설음식, 한복과 설빔, 세배와 세뱃돈 , 윷놀이, 동네 농악대, 제기차기, 연날리기, 널뛰기, 쥐불놀이 등이 있었다. 강산이 다섯 번 바뀌면서 그 설 풍습은 사라졌고 티브이,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나마 차례와 세배드리기는 각 가정의 번영과 덕담을 기원하는 세대 간  유일한 교류 행사로 남아 설날의 명맥을 이어간다.



   

   초등학교 시절, 설이 다가오면 맘도 설렌다. 어머니를 따라 형제들과 설빔 사러 가기, 설음식 맛보기 , 차례와 세배 올리기, 푸짐한 설음식 먹기, 가족들과 윷놀이, 친구들과 제기차기, 쥐불놀이, 동네 농악대 따라다녔던 기억이 난다.



우리 집은 설 날 한 달 전부터 장만한다. 설빔으로는 주로 , 털신발, 양말, 모자 등이다. 어머니는 형들만 설빔을 사주셨다. 나는 늘 형들의 낡은 옷이나 교복을 물려받아 썼고 아무 불평도 하지 못했다. 어느 해 나도 설빔 사달라고 떼를 썼지만 형들이 " 넌 우리 꺼 물려받아야지 " 라며 나 때문에 자기들 설빔 줄어들까 봐 말막곤 했다. 계속 어머니를 졸랐지만 겨우 양말 한 켤레만 사주셨다. 그 이후 몇 년간 난  설빔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 시절은 장남 집안의 대를 잇는다며 모든 게 장남 위주여서 막내인 나는 늘 차례가 밀렸다.


   대개 설날 보름 전부터 설음식을 준비했다. 어머니는 차례에 올릴 음식 떡국 , 수정과 등 님 대접할 음식을 만드시고, 할머니는 각종 전, 강정, 유과 손이 많이 드는 음식 만드셨다. 이 역할분담은 고부간 불문율처럼 보였다. 왜냐면 어머니는 포목점을 하시느라 바쁘셨고, 설 한 달 전부터 혼수품이 많이 팔리는 큰 대목이어서 가게를 비우고 음식을 만들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그 당시 연세가 환갑지나셨지만 워낙 정정하셨고 당신의 감독하에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일을 시키며 설음식을 만드는 게 집안 어른의 역할로 여기셨을 것 같았다. 어린 우리들은 희미하게나마 할머니가 어머니께 진다고 여겼다. 왜냐면 어머니는 낙 포목점 장사를 잘하셨고 옷맵씨가 아름다웠다. 또  지역 사교계의 주역이셨고, 음식 솜씨도 좋았다. 반면 할머니는 근면 성실한 평범한 시골 할머니였다. 비록 시어머니지만 지역 사교계의 주역이자 집안 경제의 버팀목인 어머니를 보통의 며느리처럼 편하게 일을 시키실 수 없었을 것 같았다. 대신에 할머니는 바쁜 어머니가 미치지 못하는 어린 손자들을 살뜰히 챙겨 주시는 우리들의 할머니이자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설음식 중 가장 인기 있는 건 찹쌀떡과 단팥죽이었다. 이 두 가지는 어머니가 일본에 살 때 자주 해 먹던 일본식 음식인데 일본말로 찹쌀떡을 모찌, 단팥죽을 젠자이라고 불렀다. 이 두 가지를 많이 만들었다가 겨우 내내 찹쌀떡은 화롯불이나 석쇠에 구워먹고 단팥죽은 수시 즐겨먹는 달달한 겨울 간식이었다.  


매년 할머니는 설날 음식을 무엇을 얼마나 만들지 어머니와 의논하셨다. 설날 음식은 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조청 만들기가 첫째다. 조은 보리를 고아서 만든 엿이다. 어린 눈으로 몇 년간 조청 만드는 과정봐서인지 아직도 조만드는 장면 선명다. 할머니가 장에 가셔서 보리를 사 오신다. 큰 독 안에 보리를 반독 정도 넣고 물을 며칠 주면 보리가 물을 먹고 싹이 튼다. 싹 이튼 보리(맥아)를 따뜻한 방바닥에 멍석을 펴고 깔아 놓으면 보리 알갱이에 싹이 나는데 이게 질금이다. 이 질금을 가루로 빻아서 가마솥에 넣고 며칠 끓이고 고아서 조청을 만든다. 워낙 며칠간 군불때니 방바닥이 탈 정도로 뜨거워 화상을 입기도 했다. 조청이 중요한 이유는, 조청으로 유과, 강정, 식혜 등 설 날 음식을 만드는데 쓰일 뿐 만 아니라 고추장 만들 때나 그 해 중요한 음식 만들 때 자주 쓰이기 때문이다(설탕은 거의 사용 안 했다).  




    우리 형제들은 할머니가 질금을 만들 준비를 하시면 설날이 다가옴을 안다. 설날 음식을 만들 때 우리들에게 인기 음식은 고구마전과 오징어 튀김이다. 전은 보통 설 하루 전에 할머니가 부엌에서 만드신다. 우리 형제들은 전 부치는 할머니 곁에 슬쩍 가서 고구마전을 들고 나 날름 먹어 치운다. 할머니는 아직 만들어야 할 음식이 산더인데 우리가 자꾸 집어 먹으니 "그만 묵어라. 내일 제사 지내고 묵어라 " 하시며 손사래를 치시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 형제들이 집어먹으러 곁으로 가면 등짝을 리시쫓아내려 하셨지만 살살 때리시니까 물러서지 않고 오징어전의 다리라도 들고 튀었다.





섣달 그믐날(설 날 전날) 밤에는 할머니가 조상들에게 치성을 드리기 위해 부엌 가마솥 안에 촛불을 켜고 정화수를 하얀 대접떠놓고 그 앞에 오래 앉아계셨다. 어린 우리 형제들이 "할매, 조상님들께 뭐라고 빌었노? " 라고 물으면 할머니는, 장난 표정이 가득한 우리들에게 "너희들 모두 안 아프고 잘되라고 빌지. 삼신 할매하고 조상님들께 빌어야 포목점도 잘되고 과수원도 잘 된다. 너거들도 잠만 자지 말고 빌어라. 자면 눈썹 하얗게 된다."라고 하셨다. 와~눈썹이 희게 되면 큰일인데 ...... 진짜인지 의심하며 "할매 거짓말이제" 물어도 할머니는 진짜라며 엄

한 표정을 지셨다.




    새벽에 우릴 깨우는 아버지의 끈질김에 끝내 눈 비비고 일어난다. 차례 음식 차리기 위해 형들은 밤과 과일을 깎고 아버지는 벼루와 붓을 준비해서 조상들 성함을 한지에 쓰서 지방을 만든 후 차례상, 제기, 병풍을 준비하신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부엌에서 차례상 차리느달그락 소리 내며 손놀림이 바쁘다.


  제사상 차리기는 어머니 몫이다. 밥과 소고깃국, 떡국, 돔배기(상어고기찜, 경상도 사투리), 문어, 한과, 산적, 생선전, 부추전, 나물, 고구마전, 오징어튀김, 파전, 조기찜, 통대구찜, 과일, 곶감 등 한 상 가득 차린다. 모두 설날 한복 차림으로 갈아입고 차례상 앞에 서면 아버지가 우리 가문과 족보를 설명하신다. 어린 우리 귀에 족보 얘기가 들어올 리 없고 빨리 차례가 끝나고 먹기를 기다렸다. 아버지가 하시는 대로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내지만 나와 동생들은 절을 하면서 앞 줄에 선 아버지와 형들의 엉덩이를 보며 킥킥거리다가 아버지 눈총을 받기 일쑤였다.


설날 아침엔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먹는다고 했다. 한 살이라도 더 먹고 형이 되고 싶어 떡국을 무조건 먹었다. 떡국은 맨 위에 소고기와 달걀부침 고명을 올리고 김을 뿌려서 떡을 먹고 나중에 밥을 조금 말아서 국물까지 훌훌 마시면 맛이 그만이었다.




   

    날에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세뱃돈을 주신 적이 없다. 옆에 앉으신 어어니가 애들한테 세뱃돈을 좀 주라 하셔도 "집에 먹을게 이리 많은데 또 돈 주고 사 먹을 필요 없다."라고 끝내 안 주신다. 결국 어머니와 할머니가 세뱃돈을 주신다. 아버지는 애들 버릇 나빠진다고 끝끝내 세뱃돈을 주시는 법이 없어서  아버지가 구두쇠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설날은 신나고 재미있는 날이었다. 정월 대보름날까지 설날은 계속되어서 대보름 때까지 신나게 연날리기와 쥐불놀이하느라  정신없이 쏘다녔다. 일가친척들에게 세배도 다니고 우리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아서 세뱃돈이 제법 모이곤 했다.




   

    설날이 지나면 할머니는 정월 대보름에 쓰려고 쌀강정, 콩강정, 땅콩강정, 유과, 약과를 우리가 모르는 곳에 숨겨둔다. 이걸 몰래 찾아서 먹는 게 우리 형제들의 재미였다. 대부분 벽장이나 장독대에 감춰 둔 것을 찾아서 할머니 몰래 조금씩 훔쳐먹는 재미났다. 많이 훔쳐먹으면 할머니가 알게 되니까 모를  정도로 조금씩 훔쳐먹지만 눈치챈 할머니는 곧장 다른 곳으로 감춰버리고 우린 또 그걸 찾으려고 집을 뒤지다가 할머니에게 혼이 나곤 했다. 평소에 할머니는 손자 손녀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시는 게 큰 낙이하셨다. 우리가 먹는 걸 보시면 늘 '마른 논에 물 들어간다' 하시며 즐거워하셨다. 그러나 설날 음식은 예외여서 우리 형제들이 몰래 훔쳐 먹으면 혼내셨다. 어머니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모든 집안 일과 과수원의 음식은 할머니 몫이었다. 그 힘든 시기를 지나며 할머니가 칠순이 되시자 제일 힘든 조청을 만들지 않으셨고 설날 음식 가짓수도 확 줄였다. 그 대신 조청을 사 와서 강정만 만들어 주셨다. 그 마저 만들지 마라고 가족들이 말렸지만 당신이 알아서 하신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모든 것에 당신의 손길이 가야 맘에 들어하셨다.    

 

       



    그 시기에 비해 요즘엔 음식이나 과자가 넘쳐흐른다. 더욱이 그 많은 음식 중에서도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는 사람들의 노력이 대단하지만 과하단 생각도 든다. 티브이 먹방과 SNS 영향이기도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사람들의 식탐과 상업주의는 계속될 것 같다. 사람들이 정말 맛있어하는 것은 어떤 음식일까?


몇 년 전 어느 잡지에서 죽음을 앞둔 분들에 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뭔지 설문 조사한 내용을 게재했다. 그분들이 가장 먹고 싶어 한 음식은 고급 음식점의 비싼 산해진미가 아니었다. 그분들은  '나의 어머니가 만들어 준 그때 그 음식'을 먹고 싶은 음식 1위로 꼽았다. 누구에게나 '그리움과 추억이 배어 있는 음식'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다.


오래전 떠올리면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바신 부모님과 할머니헌신적 사랑에 머리숙여진다. 옛날 설 음식은

부모님이 주시는 땀과 정성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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