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자마자 아내가 고지서 2장을 내밀며, 등짝 스매싱을 날렸다. 속도위반 고지서였다. 둘 다 어린이보호구역 제한속도 30km를 위반했다는 거였다. 운전 습관이 과속하거나 무리하게 하는 건 아니지만, 운전을 세심하게 살펴서 하지 못해 빚어진 결과이다. 물론 진짜 원인은 차량 내비게이션에서 종알대는 여성의 목소리가 성가셔 볼륨을 꺼둔 데 있다. 현대인의 필수인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제대로 따르지 않아 빚은 참사(?)인 셈이다. 현대인의 삼종지도는 ‘어릴 때는 어머니를, 결혼해서는 아내를, 운전할 때는 내비게이션의 안내 여인을’ 믿고 따라야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조선시대 여인들의 삼종지도를 빗댄 유머다.
요즘 뜨거운 MBTI 검사하면 언제나 바뀌지 않는 게 하나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일단 계획하고, 그 계획에 충실히 따르는 J형이라는 거다. 당연히 이런 성향은 등산할 때도 그대로 나타난다. 등산 내비게이션에는 언제나 입력하는 값이 있다. 세 가지다. ‘아침 이른 시간, 목표 좌표 설정, 가능하면 혼자서’는 언제나 포함된다.
‘이른 아침 시간’이 입력된 건 순전히 습관 때문이다. 이른 아침이 지나면 좀처럼 등산 가려고 하지 않는 성향 때문에 입력된 값이다. 어느 날 오후 3~4시에 앞산 한 바퀴를 했다. 아침이 한참 지났는데도 그날은 이상하게 늦은 등산에 나섰다. 앞산 정상에서 바라본 대구의 낙조는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아침 일출 때의 붉은 기운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장관을 연출했다. 서거정이 시 <대구십영>에서 예찬한 ‘침산낙조’의 의미가 한순간에 다가왔다.
숲에 갈 때는 항상 정상을 목표로 설정한다. 당연히 정상까지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코스를 따라 걷는 게 오랜 습관이다. 둘레길 같은 등산로보다는 오르막내리막이 있는 능선길을 좋아해 언제나 같은 길을 걷는다. 그날도 정상을 향해 걷다가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입력된 등산로를 이탈해 7~8부 능선의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숲길이 너무 좋았다. 아름드리 나무와 편안한 숲길이 주는 안락함 때문인 것 같다. 그날 이후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종종 샛길로 빠지는 등산을 한다. 숲의 새로움을 맛볼 수 있어 좋다.
삶에서도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정답을 찾지 못해 조금 방황하는 젊은 MZ세대들은 ‘인생 내비게이션’에 대한 열망을 많은 것 같다. 요즘처럼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시절에는 충분히 이해된다.
천선란 작가는 소설 <이끼숲>에서 “책임감 없는 행복은 불안하고, 행복 없는 책임감은 고통스럽다.”고 했다. 인간의 자유의지에는 반드시 책임감이 따라야 한다. 우리는 지나치게 ‘좋고, 싫음’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 짧은 인생에 좋아하는 것만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못하다. 좋은 게 있으면 싫은 것도, 삶에서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어쩌면 우리 삶에서는 좋은 것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싫지만 해야 하는 게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고 싶어도 멈출 줄 알고 하기 싫어도 능히 할 줄 아는 연습을 하면 인생이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인생이 설정된 내비게이션을 따라가야 한다면,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가 반기를 들 게 분명하다. ‘질식해 죽을 것만 같다’며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게 틀림없다.
삶은 설정된 경로를 때로는 이탈할 때 훨씬 더 짜릿할지도 모른다. 설령 그 경로가 스스로 확신에 차 설정했고, 사회적 지지를 받는다 치더라도 가끔은 경로를 벗어나는 새로운 경험도 필요하다. 숲에서 경로 이탈을 좀 더 자주 해야겠다.